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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
안처순
안창국
안숙
안극효
  안기(安璣, 1451∼1497)     
안기(安璣)는 능성현령(綾城縣令) 임옥산(林玉山)의 딸과 혼인하여 5남 3녀를 두었는데, 그들은 장수현감인 處經, 생원 處權, 진사 處常, 處健·處順 등으로서, 모두 등과하여 이름을 떨쳤다. 1472년(성종 3)에 생원이 되고, 그뒤 과거에 급제하여 成均館典籍에 제수되고 南學敎授를 겸직하였다. 儒家의 가풍을 확립하여 후세에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47세의 나이로 죽었는데 남원 흑성산(黑城山)에 안치되었다.
 
  안처순(安處順, 1492∼1534)     
남원의 순흥안씨는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직계 자손으로서 15세기 말 - 16세기 안처순(安處順, 1492,성종 23∼1534,중종 29)의 아버지 安璣(1451∼1497)가 妻家인 兆陽林氏를 따라 호남에 정착함에 따라 그 경제적 기반이 형성되었다.
 
  안창국(安昌國, ?∼?)     
安昌國은 자는 彦升, 호는 매담(梅潭)이다. 조부는 안처순(安處順), 아버지는 竹巖 安瑑이다. 一齋 李恒(1499∼576)의 문인이다. 才行으로 천거되어 察訪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많은 자금을 써서 의병을 도와서 그 공으로 남원 楡川祠에 제향되었다.
 
  안숙(安璛, 1680-1754)  
자가 子柔, 호가 송암(松巖)이다. 어려서부터 뜻이 크고 도량이 넓었다. 아들 극효가 문과, 그것도 장원으로 급제하자, ‘誠孝傳家 盡忠報國’이라는 8자를 친히 써 주었을 정도로 효과 충 등 유교적 가풍을 이어가는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남들이 등과하면 등과별급이라 하여 일정한 재산을 분재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안극효(安克孝, 1699-?)   
그는 영조 17년(1741) 신유년 식년시 甲科 제 1인, 즉 壯元으로 합격하여 성균관전적 사헌헌부감찰 병조좌랑 병조정랑 태안군수 사헌부 지평 등의 관직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