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자료센터

  • Open API
  • 사이트맵
  • 이용안내
  • 열린마당

한국고문서자료관

통합검색

  • 상세검색
  • 문자입력기

디렉토리분류

닫기

1588년 김홍원(金弘遠) 백패(白牌)    
G002+AKS+KSM-XA.1588.1111-20101008.B002a_002_00084_XXX
 
분류 고문서-교령류-백패 / 정치·행정-과거-백패
작성주체 발급: 예조(禮曹) /수취: 김홍원(金弘遠)
작성지역 한성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작성시기 1588년 / 만력16년3월25일   
형태사항 크기: 97×40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 부안 우반 부안김씨  / 현소장처 : 부안 우반 부안김씨  
비고 출판정보 : 영인본: 『고문서집성 2 -부안 부안김씨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 정서본: 『고전자료총서 83-3 부안김씨 우반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3) / 본 이미지는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제공한 것으로 저작권이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있음. 역주본: 『고문서역주총서 2: 부안 부안김씨 우반고문서』(한국학중앙연구원, 2017)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2 / 1. 교령류 / (2) 홍패·백패 / 홍패·백패2 / 42 ~쪽
 
1588년(선조21) 김홍원이 진사시에 3등 제57인으로 입격하고 받은 문서
 
자료로딩...
닫기




敎旨
 幼學金{沃/土}進士三等第五十七人入格
 者
 
 萬曆十六年三月 日
 (「科擧之寶」 方10㎝ 一個)
교지

유학 김홍원(金弘遠:1571~1645)1)은 진사(進士) 3등 제57인으로 입격(入格)함.

만력 16년 3월 일

[관인: 과거지인(科擧之印), 10×10㎝, 1개]

[주석]

1) 김홍원(金弘遠:1571~1645)
1571년(선조 4)∼1645년(인조 23).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이중(而重), 호는 해옹(海翁)이다. 본관은 부안(扶安)으로, 전라북도 부안(扶安)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증 호조참판(贈戶曹參判) 김경순(金景順)이다. 1588년(선조 21)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곡(義穀) 100여 석을 선유사(宣諭使) 윤승훈(尹承勳)를 통해, 선조(宣祖)의 행재소 용만(龍灣)으로 보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에는, 변산(邊山)에서 피난하여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 의병을 모아, 황신(黃愼)과 함께 적을 순창(淳昌)까지 추격하여 살상하였다. 왜란이 끝난 뒤에 선문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으로 녹훈(錄勳)되고 나주목사(羅州牧使)에 제수(除授)되었다. 1599년에는(선조 32) 금산군수(錦山郡守)로 표창되었고, 1607년(선조 40)에는 원주목사(原州牧使)에서 탄핵받았다. 1615년(광해군 7) 나주목사(羅州牧使), 1617년(광해군 9) 담양부사(潭陽府使), 이어서 1624년(인조 2)에는 회양부사(淮陽府使)에 옮겨졌고, 1627년(인조 5)에는 담양부사(潭陽府使)가 되어, 금성산성(金城山城)을 지켰다. 1636년(인조 14)의 병자호란에는 현감(縣監) 이홍발 등과 여산(礪山)에서 창의를 도모하였지만, 화의(和議)가 성립되자 부안(扶安)의 변산 바닷가에 정자를 짓고, 스스로 해옹(海翁)이라 칭하며 시문을 즐기다가 1645년(인조 23)에 죽었다. 《광해군일기》 및 《인조실록》 에 "문재(文才)나 무재(武才)가 없는 사람인데 오직 권세 있는 사람을 아첨하여 섬겨 외람되게도 높은 품계에 올랐다"고 매우 상반되는 기록도 있다. 사후에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다.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소

역대인물정보보기
인물관계정보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