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자료센터

  • Open API
  • 사이트맵
  • 이용안내
  • 열린마당

한국고문서자료관

통합검색

  • 상세검색
  • 문자입력기

디렉토리분류

닫기

1600년 김홍원에게 내린 국왕의 명령서    
G002+AKS+KSM-XA.1600.1111-20101008.B002a_002_00105_XXX
 
분류 고문서-교령류-유지 / 국왕·왕실-교령-유지
작성주체 발급: 승정원(承政院) /수취: 김홍원(金弘遠)
작성지역 한성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작성시기 1600년 / 만력28년4월초6일   
형태사항 크기: 53×49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 부안 우반 부안김씨  / 현소장처 : 부안 우반 부안김씨  
비고 출판정보 : 영인본: 『고문서집성 2 -부안 부안김씨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 정서본: 『고전자료총서 83-3 부안김씨 우반고문서』有旨1, 18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3) / 본 이미지는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제공한 것으로 저작권이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있음. 역주본: 『고문서역주총서 2: 부안 부안김씨 우반고문서』(한국학중앙연구원, 2017)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2 / 1. 교령류 / (4) 유지 / 유지1 / 53 ~쪽
 
1600년(선조33)에 국왕이 금산군수 김홍원에게 옷감을 내리면서 발급한 유지
 
자료로딩...
닫기



 今見御史書啓 爾爲國誠深 莅民才長 賦役平均 民不見吏 流亡還集 田野盡闢 不以自己私事及民 極爲可嘉 玆賜表裡一襲 爾其領受事
 旨

 萬曆二十八年四月初六日
 (承政院印, 方8㎝ 三個)
 (皮封) 錦山郡守金弘遠開坼
‘지금 어사의 서계(書啓)1)를 보니, 네가 나라를 위하는 정성이 깊어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 재능을 발휘함에 부역을 균등히 하여 백성들이 관리를 보지 못하고2), 유망한 자들이 다시 모여 들판을 전부 개간하였다. 이를 자기의 사사로운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해택이 백성에게 미치게 하였으니 극히 가상하다. 이에 옷의 겉감과 안감 한 벌을 내리니, 너는 잘 수령할 것이다.’ 라는 명령임. 만력 28년 4월 초6일. [관인: 승정원인(承政院印), 8×8㎝, 3개] [피봉] 금산(錦山) 군수 김홍원(金弘遠: 1571~1645)3)은 열어볼 것.

[주석]

1) 서계(書啓) 출처: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암행어사와 같은 봉명관(奉命官)의 복명서(復命書)
2) 백성들이 관리를 보지 못하고
백성들이 관리를 보지 못하고[民不見吏] : 《후한서(後漢書)》 〈순리열전(循吏列傳)〉에 유총(劉寵)이 회계 태수(會稽太守)를 역임하고 떠날 때 백성들이 전송하면서 “다른 태수 때에는 관리들이 백성을 갈취하는 일이 밤이 되도록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개들이 밤새도록 짖어 대었고 백성들이 안정을 취할 수 없었는데, 명부께서 부임하신 뒤로는 개들도 밤에 짖지 않고 백성들도 관리를 볼 수 없었다.[他守時吏發求民閒 至夜不絶 或狗吠竟夕 民不得安 自明府下車以來 狗不夜吠 民不見吏]”라고 찬양한 고사가 전한다.
3) 김홍원(金弘遠: 1571~1645)
김명열(金命說: 1613~?)의 아버지. 1591년(선조24)에 문과 초시에 합격했고, 정유재란 때 공을 세워 당상관에 올랐다. 이후 금산군수 및 원주목사를 역임하였다. 목면 10동(同)을 지불하고 우반동 지역의 땅을 사들여 손자 김번(金璠: 1639~1689)이 이 지역에 자리 잡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소

역대인물정보보기
인물관계정보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