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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년 윤유겸(尹唯謙) 백패(白牌)    
G002+AKS+KSM-XA.1617.1111-20101008.B003a_003_00045_XXX
 
분류 고문서-교령류-백패 / 정치·행정-과거-백패
작성주체 발급: 국왕:광해군(國王:光海君) /수취: 윤유겸(尹唯謙)  
작성지역 한양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작성시기 1617년 / 만력45년12월16일   
형태사항 크기: 96×42.7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인장서명 科擧之寶 1개(10×10, 적색, 정방형)
소장정보 원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 현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3 -해남윤씨편 정서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본 번역문은 2016년-2017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3 / 1. 교지류 / 가. 교지 / 교지45 / 6 ~쪽
 
1617년(광해9) 유학 윤유겸(尹唯謙)이 진사시에 입격(入格)하여 발급받은 증서.
   1617년 12월 16일에 유학 윤유겸이 진사시에 3등 제6인으로 입격하여 발급한 문서이다. 조선시대에는 생원진사시 입격자에게 백색 종이에 입격등급을 상세히 기입한 뒤 어보를 찍은 증서 즉 백패를 발급하였다.
 
1617년 12월 16일에 유학 윤유겸이 진사시에 3등 제6인으로 입격하여 발급받은 증서
내용 및 특징
   1617년(光海君9) 12월 16일에 幼學 尹唯謙이 進士試에 三等 第六人으로 入格하여 발급받은 白牌이다. 白牌는 小科(生員∙進士)에 合格한 사람에게 주던 證書이다. 소과에 합격한 경우에는 入格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으며, 대과의 경우에는 及第라는 말을 썼다. 小科의 合格人員은 1등 5名, 2등 25名, 3등 70名으로 하여 모두 100名을 合格시켰는데, 試驗 結果에 대한 論議가 끝나면 合格者를 成績순으로 종이에 적어서 國王에게 올리는 동시에 合格者의 名單을 試驗 應試者들에게 發表하고, 吉日을 택하여 殿庭에서 放榜儀라는 儀式을 베풀었다. 東向에는 生員, 西向에는 進士가 배열하여 國王에게 四拜를 올린 후 白牌와 酒果를 받았다. 白牌는 흰 종이에 먹으로 官名, 姓名, 科別, 成績等級이 적혀 있다.
『古文書集成 3 : 海南尹氏篇 影印本』,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3
            『古文書集成 3 : 海南尹氏篇 正書本』,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6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조선시대 임명관련 교지의 문서형식」, 유지영, 『古文書硏究』 30, 2007
1차집필자: 곽낙현, 2차집필자: 김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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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
幼學尹唯謙進士三等第六人入格者
萬曆四十五年十二月十六日

교지

유학(幼學) 윤유겸(尹唯謙)1)은 진사(進士) 3등 제6인으로 입격(入格)2)함.

만력 45년 12월 16일

[인장: 과거지보(科擧之寶) 1개, 10×10㎝, 적색, 정방형]

[주석]

1) 윤유겸(尹唯謙)
윤유겸(尹唯謙, 생몰년 미상)의 본관은 해남(海南), 당시 거주지는 해남군(海南郡)이었다.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였지만 유생으로서 언로를 막는 기자헌을 처벌해달라는 상소문, 1618년에는 대론(大論)을 담당한 사람들을 모함하는 죄를 지었다는 명목으로 곽영(郭瓔)을 폐출해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렸다. 1618년의 상소문으로 공초(供招)를 받고, 위리안치(圍籬安置) 되었다. 그거 진사에 합격한 이 시험은 증광시로, 소과(小科)의 합격인원이 1등 5명, 2등 25명, 3등 70인이 원칙이었으므로 그는 전국 36등으로 합격한 셈이다.
2) 입격(入格)
조선시대 소과(小科) 합격에는 입격(入格)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대과(大科)의 합격은 급제(及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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