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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소모사(召募使) 전령(傳令)    
G002+AKS+KSM-XC.0000.0000-20101008.B002a_002_00340_XXX
 
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전령 / 정치·행정-명령-전령
작성주체 발급: 소모사(召募使) /수취: 동두민(洞頭民)
작성시기 을미1월25일
형태사항 크기: 31×66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 부안 우반 부안김씨  / 현소장처 : 부안 우반 부안김씨  
비고 출판정보 : 영인본: 『고문서집성 2 -부안 부안김씨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 정서본: 『고전자료총서 83-3 부안김씨 우반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3) 역주본: 『고문서역주총서 2: 부안 부안김씨 우반고문서』(한국학중앙연구원, 2017)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2 / 3. 첩관통보류 / (2) 전령 / 전령4 / 418 ~쪽
 
1895년(고종32) 소모사(召募使)가 사형당한 김기서(金奇瑞)의 조카를 침해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부안 우반리 동두민(洞頭民)에게 내린 전령(傳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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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傳令扶安右磻里洞頭民等
 匪魁金奇瑞 自義兵所
 捉上巡營 旣已結果是去乙
 各處守城軍與奇瑞債
 給諸人 種種來侵於其
 三寸侄黃中云者 是豈
 成說乎 如或有此等作
 弊者 各別禁斷 俾爲
 堵
宜當向事
 乙未正月卄五日 在古阜
 召募使[署押]
(官印, 方7㎝ 三個)
전령(傳令). 부안 우반리(右磻里) 동두민(洞頭民) 등에게.
비적 두목 김기서(金奇瑞)1)는 의병소(義兵所)에서 순영(巡營)으로 압송하여 이미 죽였거늘, 각 곳의 수성군(守城軍)2)과 기서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는 사람들이 종종 기서의 조카 황중(黃中)3)이라는 자에게 몰려가 침해를 한다 하니 이게 어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만약 이러한 작폐를 끼치는 자가 있거든 각별히 금지시켜 평안히 지내도록 함이 마땅할 것이다.
을미년(1894, 고종32) 1월 25일 고부(古阜)에서.

소모사(召募使)4) [서압]
[관인: 7×7㎝, 3개]

[주석]

1) 김기서(金奇瑞)
『동학농민혁명 자료총서』의 「양호우선봉일기(兩湖右先鋒日記)」 11월 23일조에 “김기서 등 14놈을 택하여 그 마을 앞에서 결과하였다.[二十三日晴…金奇瑞…等十四漢 該洞前結顆]”라는 기사가 확인된다.
2) 수성군(守城軍)
고을을 방어하기 위해 아전과 민간인들을 중심으로 임시 구성한 군사들을 말한다.
3) 황중(黃中)
황중은 부안김씨 김상술(金常述)의 자(字)이다. 이 문서에서는 김기서의 조카가 된다고 하였으나 김기서에 대한 내용은 부안김씨 족보에서 찾을 수 없다.
4) 소모사(召募使)
소모관(召募官)을 말한다. 소모관은 조선시대 병란이 발발했을 때 그 지역의 향병(鄕兵)을 모집하기 위하여 국왕이 임시로 임명하던 관리이다. 조선 후기, 특히 동학농민전쟁 때 많이 임명되었다. 백낙중(白樂中)·임두학(林斗鶴)·이장규(李章珪)·이규진(李奎鎭) 등이 호남소모관에 임명된 것이 그 예이다. 중앙에서 파견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주로 그 지방의 지방관리나 유력한 인물을 소모관으로 임명하는 예가 많았다. 소모관은 향병 소모 외에도 적정(敵情)의 탐지, 적의 귀순권유, 나아가서는 전투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한편, 한말 의병전쟁 때에는 각 의병진에서 군사를 증모하기 위하여 유망한 인물들을 소모관·소모사(召募使)로 임명, 각처로 파견하는 예도 있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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