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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 전령(傳令)    
G002+AKS+KSM-XC.0000.0000-20101008.B003a_003_01183_XXX
 
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전령 / 정치·행정-명령-전령
작성주체 수취: 수원부사(水原府使)
작성시기 경술12월초7일
형태사항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 현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3 -해남윤씨편 정서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본 번역문은 2016년-2017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3 / 14. 전령 / 전령3 / 429 ~쪽
 
1790년(정조14) 정조(正祖)가 수원으로 이주한 해남윤씨가를 돌봐주라는 내용으로 수원부사에게 발급한 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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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令水原府使
卿於本府新治 有成里之功 卿家之人 無論移接與京住 旣許通同觀光於本府科試 況尹氏乎 又況海南距隋城 何等絶遠 而以近日錄名 於試券者觀之 有尹持運尹持暹尹持弘尹持哲尹持翼尹持軾尹持常尹持敏等八人姓名 外此眷率之不入於錄名者 亦必有之 然則千里搬運 姑未奠居 可以推知 植木條別錄錢一千兩 特爲劃給 卿其親執董察 或買給家舍 或購給物力 使卽比屋成村 而旬題與來頭科試 雖非挈眷者 明是乃祖之直孫 則幷許赴科事知悉 此傳旨一通謄給主家宜當者
庚戌十二月初七日

전령. 수원부사(水原府使)1)에게
경이 본 부(府)에 새로 정비하여 마을을 만든 공로가 있었기에, 경의 집안사람이면 이주해 왔거나 서울 살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본부의 과시(科試)에 참가하도록 이미 허락했었다. 하물며 윤씨(尹氏)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게다가 해남(海南)과 수성(隋城, 수원)과의 거리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근자에 시권(試券)에 이름을 올린 자들을 보니 윤지운(尹持運), 윤지섬(尹持暹), 윤지홍(尹持弘), 윤지철(尹持哲), 윤지익(尹持翼), 윤지식(尹持軾), 윤지상(尹持常), 윤지민(尹持敏) 등 8인의 성명이 있었고, 이 외의 권솔(眷率) 중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자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천릿길을 옮겨 오느라 아직 거처가 정해지지 않았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식목조(植木條)2)로 따로 등록해 둔 동전 1,000냥3)을 특별히 떼어줄 터이니, 경이 직접 관리하여 집이나 물력(物力) 같은 것을 사 주어서 집들이 즐비하게 마을을 이루도록 하라. 그리고 순제(旬題)4)와 앞으로 치러질 과시(科試)에는 권속을 데려온 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조상5)의 직계 후손이 확실하다면 모두 응시를 허락한다는 것을 잘 알게 하여라. 이 전지(傳旨) 1통을 베껴 적어서 주가(主家)6)에 전해주도록 하라.
경술년(1790, 정조14) 12월 7일7)

[주석]

1) 수원부사(水原府使)
조심태(趙心泰, 1740~1799). 조심태(趙心泰, 1740~1799). 본관 평양(平壤), 자 집중(執仲), 아버지는 통제사 조경(趙儆)이다. 음보로 관직에 진출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참조.
2) 식목조(植木條)
식목(植木)에 드는 비용으로 책정해 놓은 예산. 현륭원 화소(火巢) 공역의 하나로 1789년 가을부터 이루어진 식목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정해득,「정조시대 현륭원 조성과 수원 이읍 연구」, 경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참조.)
3) 동전 1,000냥
1791년 봄철 현륭원 식목공역에 돈 2,000냥을 마련해서 1,632냥 4전 4푼을 사용하고 367냥 5전 6푼이 남았음을 감안하면 매우 큰 액수임을 알 수 있다.(정해득, 위의 논문 참조.)
4) 순제(旬題)
조선시대 지방 향교 유생에게 열흘마다 글 제목을 내어주고 집에서 제술하여 바치게 하던 시험.
5) 그 조상
윤선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6) 주가(主家)
해남윤씨 연동 종가.
7) 7일
이 문서의 내용은『정조실록』에 14년 12월 8일의 기사로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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