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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전라도(全羅道) 포폄제목(褒貶題目)    
G002+AKS+KSM-XC.0000.0000-20101008.B003a_003_01200_XXX
 
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포폄문서 / 정치·행정-조직·운영-포폄문서
작성주체 발급: 전라도(全羅道)
작성시기 을미3월초2일
형태사항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 현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3 -해남윤씨편 정서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 본 이미지는 원본 소장처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의 협조에 의해 촬영되었음. 본 번역문은 2016년-2017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3 / 18. 포폄제목 / 포폄제목1 / 438 ~439쪽
 
1895년(고종31, 을미) 전라도(全羅道)에 내려진 포폄제목(褒貶題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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褒貶題目 此是甲午令題 而因疎辭 乙未二月十五日用褒也
全州判官申永休 慈諒之人 綜詳其治 上
羅州牧使閔種烈 頹波砥柱 屹無獨存 上
光州牧使李羲性 以若屢績 可惜頹齡 中
綾州牧使趙存斗 匪已騈首 民方拭目 上
南原府使申佐熙 日淺
長興府使李敎奭 未赴任
順天府使白樂倫 日淺
潭陽府使趙重九 雅望所推 從政何有 上
長城府使李秉勳 日淺
茂朱府使李 倬 日淺
礪山府使柳濟寬 濟之以寬 治如其名 上
珍島府使尹錫宰 野旣無靑 心切保赤 上
寶城郡守柳遠奎 罪云未詳 治則有譽 上
益山郡守鄭元成 荷此恩仍 曷以報荅 上
古阜郡守尹 秉 日淺
靈岩郡守南起元 得保危堞 賴有福星 上
靈光郡守尹秉受 老實其人 慈惠之政 上
樂安郡守張敎駿 勿說旣往 佇見來效 上
淳昌郡守朴用元 日淺
錦山郡守李奎文 未赴任
珍山郡守吳榮錫 未赴任
金堤郡守權鳳熙 未赴任
昌平縣令李範學 不歛馬刷 豈云小惠 上
龍潭縣令林正洙 灰刦殘局 焦心撫字 上
臨陂縣令安志承 日淺
萬頃縣令李鐘岳 日淺

金溝縣令鄭海遠 藉日被脅 何至行關
光陽縣監金宇根 日淺
咸悅縣監宋冑憲 優於慈諒 勉哉剛克 中
扶安縣監尹始永 旣撫具剿 寬亦不縱 上
康津縣監李奎夏 冒險乞援 克復是切 上
玉果縣監洪祐奭 剿宜盡力 歛何滋謗 中
沃溝縣監金疇鎬 心實願治 睫近宜察 上
南平縣監李載亮 日淺
興德縣監尹錫禛 不煩不擾 刑賞得中 上
井邑縣監崔在徹 日淺
高敞縣監金星奎 一念嘗膽 衆魁就䤋 上
茂長縣監閔配鎬罷黜未赴任
務安縣監李重益 寬猛互濟 一境安堵 上
求禮縣監趙奎夏 險去夷就 莅民有靦 下
谷城縣監李文榮 事或有疎 文固無害 上
雲峰縣監李義絅 睢陽保障 復見其人
任實縣監黃憲周 未赴任
長水縣監李章鎬 匪則漏網 胥又拔扈 下
鎭安縣監黃寅洙 苟不自樹 何以除莠 中
同福縣監兪致誠 汲去擒魁 輿誦可聽 上
和順縣監閔永奭 巡灾播頌 蠲布騰譽 上
海南 可樻廉雅 宜勉剛果 上
龍安縣監閔進鎬 迨此岌岌 無然泄泄 中
咸平縣監權豊植罷黜
泰仁縣監朴羲成 未赴任
高山縣監張泰秀 日淺
參禮察訪柳然稷 家近久曠 下
獒樹察訪梁柱赫罷黜
靑岩察訪徐性浩 空羣思補 上
乙未三月初二日

포폄제목(褒貶題目).
【이것은 본래 1894년(고종31) 12월 15일에 내려져야 할 제목(題目)이었으나 소사(疎辭)로 인하여 1895년(고종32) 2월 15일에 쓰인 포폄제목(褒貶題目)이다.】

전주판관(全州判官) 신영휴(申永休)는 자애롭고 진실한 사람으로 그 다스림이 치밀하고 자세하였다. 상(上)
나주목사(羅州牧使) 민종렬(閔種烈)은 무너져 내리는 물결 속에서 튼튼한 기둥처럼 우뚝 솟았으나 독선적이지 않았다. 상(上)
광주목사(光州牧使) 이희성(李羲性)은 그가 쌓은 공적으로써 노령이 된 것이 애석하다. 중(中)
능주목사(綾州牧使) 조존두(趙存斗)는 도적을 이미 토벌하여 백성이 바야흐로 눈을 씻고 바라보면서 기대하였다. 상(上)
남원부사(南原府使) 신좌희(申佐熙)는 부임은 했으나 50일이 지나지 않아서 평가할 수 없다.1)
장흥부사(長興府使) 이교석(李敎奭)은 부임하지 않았다.
순천부사(順天府使) 백락윤(白樂倫)은 부임은 했으나 50일이 지나지 않아서 평가할 수 없다.
담양부사(潭陽府使) 조중구(趙重九)는 추진하는 것을 올바르게 바라보고서 그것에 따라 다스리고 있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상(上)
장성부사(長城府使) 이병훈(李秉勳)은 부임은 했으나 50일이 지나지 않아서 평가할 수 없다.
무주부사(茂朱府使) 이탁(李倬)은 부임은 했으나 50일이 지나지 않아서 평가할 수 없다.
여산부사(礪山府使) 류제관(柳濟寬)은 백성들을 관대하게 구제하였고, 다스리는데도 그의 명성과 같이 하였다. 상(上)
진도부사(珍島府使) 윤석재(尹錫宰)는 들판에는 이미 푸르름이 없는 겨울이었으나 마음은 백성들을 갓난아이를 보호하듯 간절하였다. 상(上)
보성군수(寶城郡守) 류원규(柳遠奎)는 죄가 있다고는 말하나 자세하게 알 수는 없고, 다스림에는 명예가 있게 하였다. 상(上)
익산군수(益山郡守) 정원성(鄭元成)은 은혜를 거듭 입었으니 어찌 보답하지 않겠는가? 상(上)
고부군수(古阜郡守) 윤병(尹秉)은 부임은 했으나 50일이 지나지 않아서 평가할 수 없다.
영암군수(靈巖郡守) 남기원(南起元)은 위태로운 성첩을 보수하였고 믿고 맡김에는 복성(福星)2)이 있었다. 상(上)
영광군수(靈光郡守) 윤병수(尹秉受)는 그 사람됨에 노련하고 신실하였으며 자애롭고 은혜롭게 다스렸다. 상(上)
낙안군수(樂安郡守) 장교준(張敎駿)은 이미 지나간 일은 말하지 않았고 머물러 서서 다가오는 효과를 보고자 하였다. 상(上)
순창군수(淳昌郡守) 박용원(朴用元)은 부임은 했으나 50일이 지나지 않아서 평가할 수 없다.
금산군수(錦山郡守) 이규문(李奎文)은 부임하지 않았다.
진산군수(珍山郡守) 오영석(吳榮錫)은 부임하지 않았다.
김제군수(金堤郡守) 권봉희(權鳳熙)는 부임하지 않았다.
창평현령(昌平縣令) 이범학(李範學)은 쇄마비(刷馬費)3)를 많이 거두지 않았으니 어찌 백성에게 베푼 은혜가 작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상(上)
용담현령(龍潭縣令) 임정수(林正洙)는 재해로 폐허가 된 쇠잔(衰殘)한 고을을 마음 졸이면서 어루만지며 잘 돌보았다. 상(上)
임피현령(臨陂縣令) 안지승(安志承)은 부임은 했으나 50일이 지나지 않아서 평가할 수 없다.
만경현령(萬頃縣令) 이종악(李鐘岳)은 부임은 했으나 50일이 지나지 않아서 평가할 수 없다.
금구현령(金溝縣令) 정해원(鄭海遠)은 일정에 쫓기어 재촉 받고 있으니 어찌 관문(關文)을 보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4) 상(上)
광양현감(光陽縣監) 김우근(金宇根)은 부임은 했으나 50일이 지나지 않아서 평가할 수 없다.
함열현감(咸悅縣監) 송주헌(宋冑憲)은 자애롭고 신실한 것에는 넉넉했지만 강건하게 다스리기에는 부족하였다. 중(中)
부안현감(扶安縣監) 윤시영(尹始永)은 이미 백성들이 겪었던 모든 괴롭힘을 위무(慰撫)하였고, 관대함도 방종(放縱)하지 않았다. 상(上)
강진현감(康津縣監) 이규하(李奎夏)는 백성들이 모록(冒錄)하여 더 거두는 것에서 구해주길 원했고, 그런 간절함을 극복해줬다. 상(上)
옥과현감(玉果縣監) 홍우석(洪祐奭)은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을 마땅히 힘써 행하여 없애고자 하였으나 거두는 것에서는 어찌 헐뜯는 소문이 많은 것인가? 중(中)
옥구현감(沃溝縣監) 김주호(金疇鎬)는 마음이 실로 잘 다스리기를 원했고,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마땅히 살폈다. 상(上)
남평현감(南平縣監) 이재량(李載亮)은 부임은 했으나 50일이 지나지 않아서 평가할 수 없다.
흥덕현감(興德縣監) 윤석진(尹錫禛)은 번잡스럽지 않았고 소란스럽지도 않았으며 형벌과 포상에는 중도를 지켰다. 상(上)
정읍현감(井邑縣監) 최재철(崔在徹)은 부임은 했으나 50일이 지나지 않아서 평가할 수 없다.
고창현감(高敞縣監) 김성규(金星奎)는 항상 복수를 생각했고,5) 도적의 우두머리를 붙잡는 성과를 올렸다. 상(上)
무장현감(茂長縣監) 민배호(閔配鎬)는 파출(罷黜)되었으며, 후임은 부임하지 않았다.
무안현감(務安縣監) 이중익(李重益)은 관대함과 엄함을 서로 조화롭게 하여 한 고을이 안심하였다. 상(上)
구례현감(求禮縣監) 조규하(趙奎夏)는 너무 많이 거두어 가서 다스리는 백성이 부끄러워하였다. 하(下)
곡성현감(谷城縣監) 이문영(李文榮)은 일에는 혹 소원(疎遠)함이 있었으나 문장(文章)에는 진실로 나쁜 것이 없었다. 상(上)
운봉현감(雲峰縣監) 이의형(李義絅)은 수양성(睢陽城)6)을 지키듯 잘 보호하였으니 그 사람됨을 다시 보게 되었다. 상(上)
임실현감(任實縣監) 황헌주(黃憲周)는 부임하지 않았다.
장수현감(長水縣監) 이장호(李章鎬)는 비적(匪賊)을 잡지 못하고 있으며, 서리(胥吏)들 또한 횡포가 심하였다. 하(下)
진안현감(鎭安縣監) 황인수(黃寅洙)는 진실로 스스로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어찌하여 해결하려고 하는 것인가? 중(中)
동복현감(同福縣監) 유치성(兪致誠)은 급히 도적의 우두머리를 잡아 제거했으니 많은 사람들에게서 오르내리는 칭찬이 들을 만하다. 상(上)
화순현감(和順縣監) 민영석(閔永奭)은 재해가 돌고 있어도 칭송이 퍼지고 있는데 베필로 내는 세금을 깎아주었으니 명예가 뛰어올랐다. 상(上)
해남현감(海南縣監) 윤홍구(尹弘求)114)114)《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는 윤홍구(尹弘求)가 1894년 7월 19일에 해남현감(海南縣監)으로 부임했다고 기록하였다.
는 재정(財政)에서 청렴하고 맑았으며, 마땅히 굳세고 과감함에 있어서도 힘썼다. 상(上)
용안현감(龍安縣監) 민진호(閔進鎬)는 위급한 상황에 이르러도 아무렇지 않게 좋아하였다. 중(中)
함평현감(咸平縣監) 권풍식(權豊植)은 파출(罷黜)되었다.
태인현감(泰仁縣監) 박희성(朴羲成)은 부임하지 않았다.
고산현감(高山縣監) 장태수(張泰秀)는 부임은 했으나 50일이 지나지 않아서 평가할 수 없다.
삼례찰방(參禮察訪) 류연직(柳然稷)은 집이 가까워 오랫동안 업무를 보지 않았다. 하(下)
오수찰방(獒樹察訪) 양주혁(梁柱赫)은 파출(罷黜)되었다.
청암찰방(靑巖察訪) 서성호(徐性浩)는 부족한 말의 수를 보충하기 위해 노력했다. 상(上)

1895년(고종32) 3월 초 2일에 포폄제목(褒貶題目)이 도착하였다.7)

[주석]

1) 없다.
일천(日淺) :《경국대전(經國大典)》〈이전(吏典)〉포폄조(褒貶條) 세주(細註)에 “京官滿三十日, 外官滿五十日, 方許等第”라고 하여 지방관의 경우 근무일수가 50일이 지난 후에야 등제를 허락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2) 복성(福星)
길한 별이란 뜻으로 목성(木星)을 일컫는 말이다. 목성을 덕성(德星)이라고도 하였다. 음양오행에서는 목(木)을 인(仁)의 마음이 강해 인자하고 후덕하며 측은지심으로 아낌없이 베푸는 성격으로 설명하고 있다.
3) 쇄마비(刷馬費)
관청에서 민간의 말을 빌릴 때 지불하는 비용으로, 그 비용은 민간에서 징수하였다.
4) 행관(行關)
상급 관아에서 동등(同等) 또는 하급 관아로 보내던 공문인 관문(關文)을 보내는 일.
5) 상담(嘗膽)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복수하려고 모든 어려움을 참는 것을 이르며,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준말이다.
6) 수양성(睢陽城)
안녹산(安祿山)의 난 때 장순(張巡)이 군사를 일으켜 여러 차례의 승전을 하고서 수양성(睢陽城)으로 들어가서 태수(太守)와 함께 지키고 있는데, 10만 명의 적군이 와서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으나 수개월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끝내 원군(援軍)이 오지 않아 성이 함락 당하였다.《당서(唐書)》권(卷)192 장순전(張巡傳).
7) 도착하였다.
을미년(乙未年) 삼월(三月) 초이일(初二日)을 기록한 이유는 이때 전라감영(全羅監營)으로부터 해남현감(海南縣監)에게 포폄제목(褒貶題目)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관례상 감영에서는 6월과 12월 15일에 각 관할 수령에게 포폄제목을 배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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