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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 전라도(全羅道) 포폄제목(褒貶題目)    
G002+AKS+KSM-XC.0000.0000-20101008.B003a_003_01201_XXX
 
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포폄문서 / 정치·행정-조직·운영-포폄문서
작성주체 발급: 전라도(全羅道)
작성시기 신묘추동
형태사항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 현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3 -해남윤씨편 정서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 본 이미지는 원본 소장처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의 협조에 의해 촬영되었음. 본 번역문은 2016년-2017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3 / 18. 포폄제목 / 포폄제목2 / 439 ~441쪽
 
1891년(고종28, 신묘) 전라도(全羅道)에 내려진 포폄제목(褒貶題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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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卯秋冬等褒貶題目
全州判官閔致駿 忠厚規模 公平剞決 上
羅州牧使尹相翊 未赴任
光州牧使閔璿鎬 若絲理紊 如刀發硎 上
綾州牧使徐完淳 移於同省 推以前續 上
南原府使閔種烈 事無遺察 民多受惠 上
長興府使金升集 謬例盡袪 廉威益著 上
順天府使元禹常 弛張有術 緩急可恃 上
潭陽府使尹濟翼 老愈勵精 事幾就緖 上
長城府使金瀗秀 簿牒無滯 復屐俱當 上
茂朱府使閔致純 政聲已播 黎情方切 上
礪山府使南惟熙 勤可濟事 惠又及民 上
珍島府使李命憲 知有條理 何憂句當 上
寶城郡守沈能弼 一念在玆 群情如彼 上
益山郡守申永休 嶠驗已熟 湖治方銳 上

古阜郡守徐綺輔 獘敗到劇 牽補爲急 上
靈岩郡守趙範九 薄試外郡 庶務中窾 上
靈光郡守閔致憲 政最恤隱 惠澤蠲結 上
樂安郡守金演夏 實心做去 輿誦播來 上
淳昌郡守尹秉觀 老鍊爲治 終始成規 上
錦山郡守吳錫泳 邑浼稍完 政亦方便 上
珍山郡守李承紀 局殘獘痼 莅新計勞 上
金堤郡守宋秉弼 移玩接壤 治當慣俗 上
昌平縣令韓應周 樸實是稹 事務可就 上
龍潭縣令李是鎰 衰不妨務 終或收效 上
臨陂縣令趙爰夏 以若通鍊 何爲淹屈 上
萬頃縣令任燦鎬 債胡相持 政固不懈 中
金溝縣令金命洙 盤錯之地 筭劃有人 上
光陽縣監閔致悅 日淺
咸悅縣監金炳洙 所蘊優如 合試大處 上
扶安縣監尹成求 采石名區 皀盖賢侯 上
康津縣監閔昌鎬 官旣新莅 民皆厚望 上
玉果縣監南廷獻 愷悌其範 綜明爲政 上
沃溝縣監李時宇 惟恐害民 不欲從衆 上
南平縣監鄭東箕 規矩是循 悃愊無華 上
興德縣監朴寅和 乃能盡職 所以有譽 上
井邑縣監李 僖 處官如家 理事不漏 上
高敞縣監洪祐奭 實效所及 群愛可見 上
茂長縣監趙命鎬 才優製錦 惠洽挾纊 上
務安縣監閔泳學 屢典良規 暮境小縣 上
求禮縣監李熙九 頗有才藝 可推治法 上
谷城縣監李熙夏 政多恪擧 民自寧溢 上
雲峰縣監閔泳哲 下車屬耳 闔境拭目 上
任實縣監閔泳大 實績旣擾 輿論愈蔚 上
長水縣監李同和 朱紱始到 皓首猶健 上
鎭安縣監金鳳佑 治漸嫺熟 規又謹約 上
同福縣監洪鍾奫 本以實務 衆不忍欺 上
和順縣監李重翼 本室殘局 一心愛民 上
興陽縣監閔泳壽 深恤窮蔀 咸願展苽 上
海南縣監 弗不及歛 役已告竣 上
龍安縣監白樂善 誠深報効 志切剸理 上
咸平縣監金澤秀 行何政來 有此惜去 上
泰仁縣監閔恒植 唱名恩仍 濟民良手 上
高山縣監李鳳寧 知所先務 圖乃相孚 上
參禮察訪崔 雄 遇事生風 上
獒樹察訪金秉燾 儒雅其人
靑岩察訪金永澤 兼務亦勤 上
景陽察訪李暻浩 曠由實故 上
碧沙察訪金興柱 馬無玄黃 上
濟原察訪具本淳 惟廉是務 上
肇慶廟令李章鎬 潦到可悶 上

鄭基晩 白首潛郞 上
慶基殿令南敬熙 克愼克勤 上
參奉柳永佑 何處供職 上

1891(고종28) 추등(秋等) 및 동등(冬等) 포폄제목(褒貶題目)

전주판관(全州判官) 민치준(閔致駿)은 충성심이 넘쳐 본보기가 되며 공평하게 결정하고 판결하였다. 상(上)
나주목사(羅州牧使) 윤상익(尹相翊)은 부임하지 않았다.
광주목사(光州牧使) 민선호(閔璿鎬)는 실과 같이 이치가 번성하며, 칼과 같이 날카롭다. 상(上)
능주목사(綾州牧使) 서완순(徐完淳)은 같은 전라도(全羅道) 고을로부터 옮겨와서 이전의 일을 이어서 잘 추진하였다. 상(上)
남원부사(南原府使) 민종렬(閔種烈)은 일을 빠짐없이 살피며 백성이 많은 은혜를 받았다. 상(上)
장흥부사(長興府使) 김승집(金升集)은 잘못된 규례를 모두 없애버렸고, 청렴함과 위엄이 더욱 드러났다. 상(上)
순천부사(順天府使) 원우상(元禹常)은 관대함과 엄격함에 재주가 있고 일의 느림과 빠름에도 믿을 만 하였다. 상(上)
담양부사(潭陽府使) 윤재익(尹濟翼)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성의껏 힘썼고, 일도 얼마만큼 잘 풀렸다. 상(上)
장성부사(長城府使) 김헌수(金瀗秀)는 관청의 장부와 문서에 지체됨이 없게 하였고 모든 일에 능수능란하였다.1) 상(上)
무주부사(茂朱府使) 민치순(閔致純)은 선정(善政)의 소리가 이미 전해져서 민중의 정성이 바야흐로 간절할 것이다. 상(上)
여산부사(礪山府使) 남유희(南惟熙)는 근면하여 일을 잘 구제할 수 있었고, 은혜 또한 백성에게까지 미쳤다. 상(上)
진도부사(珍島府使) 이명헌(李命憲)은 아는 것에 조리가 있으니 맡은 바의 일에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상(上)
보성군수(寶城郡守) 심능필(沈能弼)은 항상 현재를 생각하였고, 민심도 그와 같았다. 상(上)
익산군수(益山郡守) 신영휴(申永休)는 힘든 경험에 이미 숙련되어 있어서 호남(湖南)의 다스림에도 바야흐로 민첩할 것이다. 상(上)
고부군수(古阜郡守) 서기보(徐綺輔)는 폐단이 고을에 이미 심해졌으나 끌어다 보태어 폐단을 해결하는 것을 급선무로 하였다. 상(上)
영암군수(靈巖郡守) 조범구(趙範九)는 다른 군(郡)에서 가볍게 치르는 시험에 차출되었어도 거의 업무는 규칙에 맞게 하였다. 상(上)
영광군수(靈光郡守) 민치헌(閔致憲)은 다스림에 백성의 고통을 긍휼이 여기는 것을 우선시 하였고, 결세(結稅)를 덜어주는 혜택을 베풀었다. 상(上)
낙안군수(樂安郡守) 김연하(金演夏)는 진심으로 일을 잘 실행해 나가서 많은 사람들의 칭송이 퍼져 왔다. 상(上)
순창군수(淳昌郡守) 윤병관(尹秉觀)은 노련하게 잘 다스렸으며 마지막과 처음에도 규범을 이루었다. 상(上)
금산군수(錦山郡守) 오석영(吳錫泳)은 고을의 손상된 명예를 점점 완전하게 했으니 다스림 또한 바야흐로 편해지게 할 것이다. 상(上)
진도군수(珍山郡守) 이승기(李承紀)는 쇠잔(衰殘)한 고을에 폐단이 극심함에도 다스리는 고을을 위해 새롭게 수고로워 할 것을 생각하였다. 상(上)
김제군수(金堤郡守) 송병필(宋秉弼)은 경계 지역까지 자애로움을 옮겼으며 다스림도 마땅히 풍속을 꾀 뚫었다. 상(上)
창평현령(昌平縣令) 한응주(韓應周)는 순박하고 진실한 것으로 가득 찼으며 사무(事務)도 가히 좋다. 상(上)
용담현령(龍潭縣令) 이시일(李是鎰)은 노쇠함이 업무를 방해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혹 효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상(上)
임피현령(臨陂縣令) 조원하(趙爰夏)는 그의 통하고 익힘으로 무엇이 막히고 눌리겠는가? 상(上)
만경현령(萬頃縣令) 임찬호(任燦鎬)는 채무를 어찌하여 고집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다스림에는 진실로 게으르지 않았다. 중(中)
금구현령(金溝縣令) 김명수(金命洙)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적재적소의 사람을 계획하였다. 상(上)
광양현감(光陽縣監) 민치열(閔致悅)은 부임은 했으나 50일이 지나지 않아서 평가할 수 없다.
함열현감(咸悅縣監) 김병수(金炳洙)는 관대함이 넉넉하여 합시(合試)에도 크게 대처하였다. 상(上)
부안현감(扶安縣監) 윤성구(尹成求)는 이름난 구역에서 돌을 캐었고, 수령2)이 어질고 아름다웠다. 상(上)
강진현감(康津縣監) 민창호(閔昌鎬)는 수령이 이미 새롭게 부임했으니 백성 모두가 두터운 은혜를 바라고 있다. 상(上)
옥과현감(玉果縣監) 남정헌(南廷獻)은 그 모범됨이 화락(和樂)한 군자이고, 자세하고 밝게 다스렸다. 상(上)
옥구현감(沃溝縣監) 이시우(李時宇)는 오직 백성을 해치는 것을 염려하여 무리를 따르려고 하지 않았다. 상(上)
남평현감(南平縣監) 정동기(鄭東箕)는 규칙에 따르고 진실하고 정성을 다함에 화려하지 않았다. 상(上)
흥덕현감(興德縣監) 박인화(朴寅和)는 능력을 직책에 모두 소진하였기에 명예가 드날린 이유가 되었다. 상(上)
정읍현감(井邑縣監) 이희(李僖)는 관에서 거처함이 집에서 하는 것과 같았고, 이치 있는 일에 있어서도 새지 않았다.
고창현감(高敞縣監) 홍우석(洪祐奭)은 실효가 끼친 것으로 군중을 사랑했음으로 볼 수 있었다. 상(上)
무장현감(茂長縣監) 조명호(趙命鎬)는 재주가 뛰어난 고을 수령3)으로 은혜가 임금의 깊은 은혜와도 합치되었다.4) 상(上)
무안현감(務安縣監) 민영학(閔泳學)은 고을 수령5)으로 어진 가르침이 경계의 작은 현에도 미쳤다. 상(上)
구례현감(求禮縣監) 이희구(李熙九)는 자못 재주와 기예가 있어 가히 미루어 법에 따라 잘 다스렸다. 상(上)
곡성현감(谷城縣監) 이희하(李熙夏)는 다스림에 신중하게 거행하는 것이 많았고, 백성들이 스스로 평안해 하는 것이 넘쳤다. 상(上)
운봉현감(雲峰縣監) 민영철(閔泳哲)은 수레에서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어찌 경내에서 두 눈을 비비며 바라보고 기대하지 않겠는가? 상(上)
임실현감(任實縣監) 민영대(閔泳大)는 실적이 이미 뛰어나서 여론도 더욱 성하다. 상(上)
장수현감(長水縣監) 이동화(李同和)는 수령6)이 비로소 도착하였으니 노인들도 오히려 건장해질 것이다. 상(上)
진안현감(鎭安縣監) 김봉우(金鳳佑)는 다스림이 점점 익숙해졌고, 규범을 적용함에도 신중하였다. 상(上)
동복현감(同福縣監) 홍종윤(洪鍾奫)은 본래의 실무로 이서(吏胥)의 무리가 그를 속일 수 없었다. 상(上)
화순현감(和順縣監) 이중익(李重翼)은 본래 읍이 쇠잔(衰殘)한 고을이었으나 한 마음으로 백성을 아꼈다. 상(上)
흥양현감(興陽縣監) 민영수(閔泳壽)는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7)을 깊이 긍휼히 여겼고, 모두가 임기가 연장8)되기를 바랬다.
해남현감(海南縣監) 이용중(李容中)9)은 더 많이 걷지 않고서도 역(役)이 이미 완공되었음을 알려왔다. 상(上)
용안현감(龍安縣監) 백락선(白樂善)은 진실로 깊이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였으며 뜻도 잘 다스리고자 하는 것이 간절하였다. 상(上)
함평현감(咸平縣監) 김택수(金澤秀)는 행동하는 것에 있어 어찌 다스림에 오지 않겠으며 떠날 때 백성이 애석해 함이 있었다. 상(上)
태인현감(泰仁縣監) 민항식(閔恒植)은 이름을 날리고 은혜가 그대로 머물러 있이 백성을 구제하는데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였다. 상(上)
고산현감(高山縣監) 이봉령(李鳳寧)은 먼저 해야 할 업무를 알았고, 도모하면 곧 성실히 서로 믿는 것이 있었다. 상(上)
삼례찰방(參禮察訪) 최웅(崔雄)은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기개 있게 일을 처리하나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10) 상(上)
오수찰방(獒樹察訪) 김병도(金秉燾)는 유생이어서 그 사람됨이 올바르다. 상(上)
청암찰방(靑巖察訪) 김영택(金永澤)은 업무를 겸했어도 근면하였다. 상(上)
경양찰방(景陽察訪) 이경호(李暻浩)는 휴가로 오랫동안 업무를 보지 않았지만 실제 연고가 있었다. 상(上)
벽사찰방(碧沙察訪) 김흥주(金興柱)는 말에 결점이 없었다. 상(上)
제원찰방(濟原察訪) 구본순(具本淳)은 오직 청렴함을 주요 업무로 생각했다. 상(上)
조경묘령(肇慶廟令) 이장호(李章鎬)는 나이가 들어서 염려된다. 상(上)
조경묘령(肇慶廟令) 정기만(鄭基晩)은 나이가 들었으나 아직 때를 만나지 못했다.11) 상(上)
경기전령(慶基殿令) 남경희(南敬熙)는 지극히 신중하고 지극히 근면하였다. 상(上)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 류영우(柳永佑)는 어느 곳에서나 직무에 힘썼다. 상(上)

[주석]

1) 이극구당(履屐俱當)
마른 날에는 신으로 신고, 비오는 날에는 나막신으로 신는다는 뜻으로, 모든 일을 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음의 비유함을 뜻한다.
2) 흡개(皀蓋)
흑색의 수레 덮개라는 뜻으로, 지방 장관을 가리킨다.《후한서(後漢書)》〈여복지상(輿服志上)〉
3) 제금(製錦)
비단을 마름질한다는 뜻으로 고을을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양공(襄公) 31년조에, 정(鄭)나라 자피(子皮)가 나이 어린 윤하(尹何)를 고을 수령으로 삼으려고 하자, 자산(子産)이 윤하는 아직 나이가 어리고 정치가 미숙하여 안 된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그대에게 아름다운 비단이 있다면 남들로 하여금 그것으로 마름질하는 법을 배우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子有美錦, 不使人學製焉.)”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4) 협광(挾纊)
아랫사람을 보살펴주는 윗사람의 배려를 비유하는 말이다. 초(楚)나라가 소(蕭)를 칠적에 군사들이 추위에 떨고 있자, 초왕(楚王)이 친히 순찰하며 위로해 주니, 군사들 모두가 마치 솜옷을 껴입은 것처럼(挾纊) 느끼면서 사기가 충천했다는 고사가 있다.《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선공(宣公) 12년조(年條).
5) 누전(屢典)
고을 수령을 가리킨다.
6) 주불(朱紱)
인장에 다는 붉은색의 인끈으로 관복과 벼슬길을 의미한다.
7) 궁부(窮蔀)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을 가리킨다.
8) 전고(展苽)
임기를 연기한다는 의미이다.
9) 이용중(李容中)
1891년(고종28) 당시 해남현감은 이용중(李容中, 1841∼1919)이었다.
10) 우사생풍(遇事生風)
일 또는 바람을 만난다는 뜻으로, 본래는 젊은 기백과 정의감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차츰 변질되어 시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11) 잠낭(潛郞)
재능이 있으면서도 불우하게 오랫동안 낮은 관직에 묻혀 있는 것을 말한다. 한(漢) 나라 안사(顔駟)가 문제(文帝) 때 낭(朗)이 되어 경제(景帝)를 거쳐 무제(武帝) 때까지 승진하지 못하고 낭서(郞署)에서 늙었던 고사에서 유래한다.《문선(文選)》사현부(思玄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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