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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 입하면 면임 첩정    
G002+AKS+KSM-XC.0000.4580-20101008.B002a_002_00341_XXX
 
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첩정 / 정치·행정-보고-첩정
작성주체 발급: 입하면임(立下面任) /수취: 부안현(扶安縣)
작성지역 전라도 부안현 입하면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작성시기 기축8월22일
형태사항 크기: 33×45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 부안 우반 부안김씨  / 현소장처 : 부안 우반 부안김씨  
비고 출판정보 : 영인본: 『고문서집성 2 -부안 부안김씨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 정서본: 『고전자료총서 83-3 부안김씨 우반고문서』牒呈1, 20~1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3) / 본 이미지는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제공한 것으로 저작권이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있음. 역주본: 『고문서역주총서 2: 부안 부안김씨 우반고문서』(한국학중앙연구원, 2017)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2 / 3. 첩관통보류 / (3) 첩정 / 첩정1 / 419 ~쪽
 
기축년 입하면 풍헌(風憲)이 객사 수리에 쓰일 대나무의 벌목 문제를 보고하는 내용으로 부안현감에게 올리는 첩정(牒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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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下面任爲文報事 卽到 傳令
用良客舍修理所用外竹二負 本
愚蟠里金班竹田刈取運納次 數
日前 使同里里任諧往申飭是遣
限日運致次 往于金班家催促是乎則
金班侮視官令 藉其豪惡 多率家
丁 巨逆防刈分叱除良 該里里任 亦爲附
同 恃其村班 不遵官令 以面任私力 另
無外竹刈納之道 別般處分緣由牒報
臥乎事合行牒呈 伏請
照驗施行 須至牒帖者
牒呈
城主
己丑八月二十二日風憲宋〔着名〕
文報
(官印 長方形 一個)
입하면(立下面) 면임(面任)1)이 글월로 보고하는 일입니다. 얼마 전 받은 전령(傳令)의 지시에 따라 객사 수리에 쓰일 외죽(外竹) 2짐을 본 면 우반리(愚蟠里) 김씨(金氏) 양반2) 소유의 대밭에서 베어내 바치기 위하여 수일 전 우반리 이임(里任)3)과 함께 가서 타일러 두었습니다. 오늘이 기한일이라 대나무를 운송하기 위해 김씨 양반 집에 가 재촉하였더니, 위 김씨 양반이 관가의 명령을 얕보고는 자신의 못된 세력을 바탕으로 집에서 부리는 일꾼 여럿을 거느리고 관명을 거역하며 대나무 벌목을 막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해당 마을의 이임(里任)조차 그들에 동조하여 제 마을 양반만 믿고 관의 명령은 따르지 않아 면임인 저 개인의 힘으로는 대나무를 잘라 바칠 별 방법이 없사오니 특별히 처분해 주십시오. 이상의 연유(緣由)를 첩정(牒呈)4)으로 보고합니다. 절차대로 첩정을 올리니 이 문서에 비추어 시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첩정을 송달하도록 할 것.5)우(右) 첩정(牒呈) 성주(城主)6) 기축년 8월 22일 풍헌(風憲) 송(宋) [착명] 문보(文報)7) [관인: 1개]

[주석]

1) 면임(面任)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면임(面任) : 조선시대 지방 행정에서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는 각 면 단위에 차정된 직임으로서 권농관(勸農官), 감고(監考) 등을 말한다. 권농관에는 풍헌(風憲)·권농감고(勸農監考)·방외감(方外監) 등이 있는데 이 문서의 발급자인 면임은 풍헌의 직을 맡고 있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2) 우반리(愚蟠里) 김씨(金氏) 양반
우반동 부안김씨(扶安金氏). 부안김씨는 1678년경에 우반리로 이주하였다.(정구복, 「技安金氏의 家系와 그 古文書의 特徵」, 『고문서집성2: 부안 부안김씨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따라서 본 문서의 작성년인 기축년은 1709, 1769, 1829, 1889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3) 이임(理任)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이임(理任) : 최말단 행정 단위인 리의 각종 행정을 담당하였던 자, 또는 그 직을 말하는데 이정(里正)·이장(里長) 등이 있었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4) 첩정(牒呈)
첩정(牒呈) : 《경국대전주해후집(經國大典註解後集)》에 “牒이란 기록하여 베낀 글이며 呈은 뜻을 펴 윗사람에게 이르게 하는 것이니 즉 하급 관사가 상급 관사에 올리는 문서이다.[牒以箚寫書也, 呈謂布意達於尊者也, 卽下司呈上司之文.]”라고 하였다.(《경국대전주해후집(經國大典註解後集)》 〈이전(吏典), 취재(取才)〉조) 또한 향촌사회 조직의 행정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이 고을의 수령에게 의견을 전달할 때도 사용한 문서 양식이다.(김완호, 「조선시대 牒呈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1. 1면.)
5) 반드시 첩정을 송달하도록 할 것
수지첩정자(須至牒呈者) : ‘須至牒呈者’를 《고사신서(攷事新書)》에서는 ‘須要送牒呈也’로 풀이하였다.(《고사신서(攷事新書)》 〈첩정식(牒呈式)〉) 또 ‘須至’는 청(淸) 적호(翟灝)의 《통속편(通俗編)》에서 ‘今公文習爲定式’이며 그 의미는 ‘戒之曰無至, 勸之曰須至’라고 설명하였으므로 ‘~해야 한다.’ 혹은 ‘~하도록 하라.’의 뜻으로 해석하였다.(《통속편(通俗編)》 〈정치(政治)〉)
6) 우첩정 성주(右牒呈 城主)
우첩정 성주(右牒呈 城主) : ‘이 첩정을 성주에게 보냅니다.’의 의미. 성주는 지방 수령으로 이 첩정의 수취자인 부안 현감을 일컫는다.
7) 문보(文報)
문보(文報) : 첩정 서식 중 ‘방서(傍書)’ 부분으로 문서의 발급사유를 나타낸다. 문보는 임란 이후 면리조직과 향교·서원의 행정 실무자가 수령에게 보내는 문서로도 사용되었다. 즉 수령에게 공적인 사안을 전달하는 문서로 통용되었으나 향촌사회의 행정 실무자들은 국가 제도적으로 관료조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사용한 문보는 첩정처럼 공식적인 문서로 인정받지 못하였다.(김완호, 앞의 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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