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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현(海南縣) 사보초(査報草)    
G002+AKS+KSM-XC.0000.4682-20101008.B003a_003_01199_XXX
 
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보장 / 정치·행정-보고-보장
작성주체 발급: 해남현(海南縣)
작성지역 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작성시기 ▣술1월28일
형태사항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 현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3 -해남윤씨편 정서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 본 이미지는 원본 소장처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의 협조에 의해 촬영되었음. 본 번역문은 2016년-2017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3 / 17. 보장 / 보장4 / 437 ~438쪽
 
1634년(인조12)에 윤의미(尹義美)를 윤선언(尹善言)의 후사로 세운다는 증서를 해남윤씨 집안에서 제출받기 위해 조사한 결과를 전라도 순찰사에게 보고한 첩보를 전재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추가로 기록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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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査報草海南縣
▣(甲)戌正月二十八日 故學生尹▣▣元氏事知奴丁回年二十七
▣…▣(白等)禮曹啓下 關據使關乙用良汝矣上典尹義美
▣…▣(繼後)立案現納亦推問敎是臥乎在亦戶口現納爲齊
▣▣(上典)主亦壬申年分義美繼後次呈禮曹立案乙 去丙子
▣變亂時 奴矣內上典元氏段 先爲陸路以下來爲白遣
同立案及其他文券幷以上典異姓族下名不知生員主亦
同立案等持是遣 水路乘船下來爲白如可 中路逢變亂
其他久遠文記等乙 盡爲閪失爲白遣族下生員主段 脫身
來到海南上典主家同居爲白如可 重病仍爲身死爲白有臥
同立案現納不得爲去乎相考施行敎事
同日同家婢忠今年三十二
白等禮曹啓下 關據使關乙用良汝矣上典尹義美繼後
現納推問敎是臥乎在亦上典主亦 去壬申年分呈
受立案之後 同立案乙 去乙亥年良中 家中染病大熾 避
寓下來海南之際 上典主亦同立案及其他文券等乙 忘置爲遣
不爲持來爲有如可 追後奴子等下來時 同文券等持來爲白如可
中路閪失爲白有乎等乙以 入納不得爲白去乎相考施行敎向事
同日 尹門公證人康津幼學尹善五年四十九
白等啓下禮曹關據使關內學生尹 妻元氏呈狀內 所擧
尹義美繼後立案 似當爲先取考 故捉致其事知奴子示之 則其父書
在於鄕家 未及持來云 且義美之弟禮美 潛奪義美之子爾厚
爲己子之事 以禮美爲欺父 則今禮美旣死之後 不可究問於其
父 況父子間不爲相證 法例當然 無已則當問於尹家一族中公證之人
明査實狀牒報 以爲啓聞之地 亦爲有置右良辭緣 詳細現
告 亦推問敎是臥乎在亦矣身尹參議▣▣ 雖是同姓八寸之親
他矣事乙 豈盡詳知 惟只尹
▣▣之以其子義美許爲其兄尹▣▣繼後 而善言家不曾呈出立案事果 義美死後長子爾久
繼承家事果 爾久死後 以義美次子爾厚之第三子
爾久繼後 以奉小宗累代家廟事果 益大旣爲小宗
奉祀之後 爾厚之身空閑 故尹▣▣之子禮美 懇請於其父
義美之次爾厚 爲其繼後事果 爲此繼後時 尹▣▣
之爲書許於禮美事果 今此元氏首奴招內同立案乙 丙
子之變 在南陽避亂時閪失云 此不過奴主同聲之計
而立案本不呈出事段 一門所共知 而元氏乙亥春 自
南陽下來海南丙子之亂 與尹參議一家 同船避于
康津等地 海島事乙 無人不知是去等 此等事段 一鄕
一門之所共明知常談乙仍于矣身段置詳聞詳知爲
在果 其他事段 知不得爲去乎相考報使施行
敎味爲等如招辭是置有亦元氏事知奴丁回招內
段 同立案 丙子之變 上典異姓族則 自南陽水路持來
爲如可 中路閪失是如爲乎矣 同奴非但年少迷劣 所招
多不明白是去乙 更推事知奴子 則婢忠今來現招內 上典
乙亥年染病避寓下來時 忘未持來乙仍于追乎奴子等持
白如可 中路閪失是如爲臥乎所 奴婢招辭各異
是旀 公證人尹善五招內 元氏段 當初本無立案呈出事
是如 條陳納段 如是明白是乎等以幷以査報有乎
旀 元關監封上使爲臥乎事
如右牒報書目題曰 尹氏門族豈但尹善五一人
而已 他人招致更爲詳査以報爲旀元氏所謂尹▣▣
發明書簡 推得監封上使云云 本縣當更問於
善昌
爲名之人 移文靈岩推捉 而尙未到 使家且遞云
似至遲滯也 不言某言某事之是非 而只令更
査 所謂諺簡不在該曹問目中 非使家所可與 而必令
推送 其意盖在不好也 新來者若又如此 則未
知如何也 須須曲通 切勿擧論 問目外事爲可 而公事
之例法亦當如是也 尹善昌則欲對曰 自少多病 耳聾
口吃 而至今年滿七十 尤何與於人事論人是非乎 惟只伏見
尹善五所招諸條 則一一皆是門族老少鄕中上下所共明
知 所共常談 矣身所知所聞 毫無異同 亦無加減 何
敢嫌於雷同 更贅虛僞之辭云云
此紙 皆未馳啓之辭 而若先入於人之耳目
則雖無敵國 必有煩言 況多敵 國乎 必須
秘而愼之

…(원문 결락)…조사한 보초(報草). 해남현.

▣(갑)술년(1634, 인조12) 정월 28일 고(故) 학생 윤▣▣의 처 원씨(元氏)의 사지노(事知奴) 정회(丁回). 나이 27세.

▣▣(아룁니다.) 예조(禮曹)에서 계하한 관문과 순찰사의 관문 내용에, 너의 상전 윤의미(尹義美)를 ▣▣(후계로 세우는) 입안(立案)을 현납(現納)하라고 추문하시니, 호구(戶口)를 현납하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상전)님이 임신년에 의미(義美)의 후계를 잇기 위해 예조에 바친 입안은, 지난 병자년의 변란 때, 저의 안채 상전님인 원씨가 먼저 육로를 통해 내려왔고, 해당 입안 및 기타 문권(文券)은 모두 상전의 이성(異姓) 조카로 이름은 모르는 생원님이 해당 입안 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수로로 배를 타고 내려오다가 중도에 변란을 만나 기타 오래된 문기(文記) 등을 모두 잃어 버렸고, 해당 조카 생원님은 탈출하여 해남의 상전님 집에 도착하여 함께 지내다가 중병으로 그대로 죽어버렸으므로, 해당 입안을 현납할 수 없습니다. 상고하여 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날, 같은 집의 여종 충금(忠今). 나이 32세.

아룁니다. 예조에서 계하한 관문(關文)과 순찰사의 관문(關文) 내용에 의거하여, 너의 상전 윤의미(尹義美)를 후계로 세우는 입안(立案)을 현납하라고 추문하셨습니다. 상전님이 지난 임신년에 예조에 바쳐서 입안을 받은 후에, 해당 입안을 지난 을해년에 집안에 전염병이 크게 돌아서 피우(避寓)하여 해남으로 내려올 적에 상전님이 해당 입안 및 기타 문권 등을 잊어버리고 가져오지 못하였으며, 추후에 종들이 내려올 때 해당 문권 등을 지니고 오다가, 도중에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현납하지 못하겠습니다. 상고하여 조치해 주십시오.

같은 날. 윤씨 문중의 공증인(公證人)으로, 강진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윤선오(尹善五). 나이 49세.

아룁니다. 예조에 계하한 관문과 순찰사의 관문 내용에, “고(故) 학생 윤▣의 처 원씨의 정장(呈狀)에서 거론한 윤의미(尹義美)를 후사로 세우는 입안을 마땅히 먼저 가져다가 살펴보아야 할 듯하다.”라고 하였으므로, “그 사지노자(事知奴子)를 잡아다가 보였더니, 그 아비의 편지가 시골집에 있는데 미처 지니고 오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또 의미의 아우 예미(禮美)가 몰래 의미의 아들 이후(爾厚)를 뺏어서 자기 자식으로 삼은 일은 예미가 아비를 속인 것으로 여겼으니, 이제 예미는 이미 죽은 뒤라 그 아비에게 캐물을 수도 없습니다. 더구나 부자간에 서로 증인이 되지 못하는 것은 법례 상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도 그만둘 수 없다면, 마땅히 윤가 일족 중에서 공증할 사람에게 물어서 실상을 밝게 조사하여 첩보하여, 계문(啓聞)하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위와 같이 진술한 사연을 상세하게 현고(現告)하라고 추문하시기에 말씀드립니다.
저와 윤참의 ▣▣는 비록 동성 8촌 친척이지만, 그의 집안일을 어찌 모두 자세히 알 수 있겠습니까? 단지 윤▣▣가 그 아들 의미를 그 형 윤▣▣의 후사로 허락하였으나, 선언(善言)의 집에서는 입안을 제출하지 않았던 사실, 의미의 사후에 장자 이구(爾久)가 집안일을 계승한 사실, 이구의 사후에 의미의 둘째아들 이후(爾厚)의 셋째 아들 익대(益大)를 이구의 후사로 삼아 소종(小宗)의 누대 가묘(家廟)의 제사를 받들게 한 사실, 익대가 소종의 봉사손(奉祀孫)이 되고 나서, 이후의 신세가 쓸쓸하게 되었으므로, 윤▣▣의 아들 예미(禮美)가 그 아비에게 간청하여 의미의 둘째 아들 이후를 그 후사로 삼게 한 사실, 이 후사를 삼을 때 윤▣▣가 편지를 써서 예미에게 허락해 준 사실, 이번에 이 원씨의 수노(首奴)가 진술한 내용 중에 해당 입안을 병자년의 변란 때 남양으로 피난할 때 잃어버렸다고 하는데, 이는 종의 주인과 한 목소리를 내려는 계책에 불과할 뿐, 입안은 본래 제출하지 않았다는 사실 등은 온 가문이 다 아는 바입니다. 원씨가 을해년 봄에 남양에서 해남으로 내려왔다가, 병자년의 난리 때 윤참의 일가와 더불어 해남(海南), 강진(康津) 등 지역의 섬으로 함께 배를 타고 피난하였던 일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온 고을, 온 가문에서 모두 분명하게 알고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희들도 상세히 듣고 상세히 알고 있습니다. 그 나머지 일은 알지 못하오니, 상고하여 순찰사에게 보고하여 조치하십시오.

이런 뜻으로 진술을 하였습니다. 원씨의 사지노(事知奴) 정회의 진술에서는 해당 입안은 병자년의 변란 때 상전의 이성 친족이 남양의 수로를 통해 지니고 왔다가, 중도에 잃어버렸다고 하였는데, 해당 종은 비단 연소하고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진술한 바도 분명치 못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다시 사지노자(事知奴子)를 추문하니, 여종 충금(忠今)이 와서 직접 진술하기를, 그 상전이 을해년에 전염병으로 피우(避寓)하여 내려올 때 잊어버리고 미처 지니고 오지 못했으므로, 추후에 종 등이 지니고 오다가 중도에 잃어버렸다고 하였습니다. 노비들의 진술이 각각 다르며, 공증인 윤선오의 진술에서는 원씨가 당초에 본래 입안을 제출한 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조목조목 진술한 것이 이처럼 명백하므로 모두 아울러 조사하여 보고하오며, 원래의 관문은 단단히 봉하여 위로 올립니다.

위와 같이 첩보(牒報)하였더니, 서목(書目)의 제(題)에
“윤씨의 문족(門族)이 어찌 비단 윤선오 한 사람 뿐이겠는가? 타인을 불러서 다시 자세히 조사하여 보고할 것이며, 원씨가 이른바 윤▣▣의 변명과 관련한 서간은 찾아내어 단단히 봉하여 위로 올리라. 운운.”
이라고 하였다.
본 현에서는 당연히 다시 윤선창(尹善昌)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 묻고자 영암(靈岩)에 공문을 보내 잡아 오게 하였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사또께서 또 체차된다고 하니, 아무래도 지체될 듯하다.
어떤 말, 어떤 일과 관련된 시비라고 말해주지도 않고 단지 다시 조사하라고 하였으며, 이른바 언간(諺簡)은 해조(該曹)의 문목 중에 들어있지 않아 사또가 관여할 바가 아닌데도 반드시 찾아 보내라고 명하는 것을 보면, 그 심기가 아마도 좋지 않은 듯하다. 새로 부임해 오는 자가 만약 또 이런 식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제발 부디 둘러대기만 하고 문목(問目) 외의 일은 절대 거론하지 않는 것이 좋겠으며, 공무의 관행으로 볼 때도 또한 마땅히 이와 같이해야 할 것이다.
윤선창의 경우는,
“어려서부터 병이 많아 귀가 먹고 말을 더듬었는데, 지금 나이 70세가 된 마당에 더더욱 무엇 때문에 남의 일에 관여하여 남의 시비를 논하겠습니까? 다만 삼가 윤선오가 진술한 여러 조항을 보건대, 하나하나가 모두 문중의 노소, 고을의 상하가 모두 분명하게 아는 바이자, 함께 일상적으로 말하던 바로서, 제가 알고 있고 들었던 바와 조금도 차이가 없으며, 또한 가감도 없습니다. 어찌 감히 뇌동한다는 의혹을 꺼려서 다시 거짓된 말을 덧붙이겠습니까? 운운.”
이라고 대답하게 하려고 한다.

이 종이는 모두 치계(馳啓)하지 않은 내용으로서, 만약 다른 사람의 이목에 먼저 들어가게 되면 적국이 없더라도 필시 번거로운 말이 있게 될 것인데, 하물며 적국이 많은 경우이겠는가? 반드시 비밀로 하고 조심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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