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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7년 남평현감(南平縣監) 관(關)    
G002+AKS+KSM-XC.1647.4617-20101008.B003a_003_00281_002
 
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관 / 정치·행정-명령-관
작성주체 발급: 남평관(南平官) /수취: 해남관(海南官)
작성지역 전라도 남평현    /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작성시기 1647년 / 순치4년11월21일   
형태사항 크기: 65.5×850.8 / 점련, 8장 / 종이 / 한자,이두
인장서명 海南縣印 13개(6×6, 적색, 정방형)
南平縣印 3개(5×5, 적색, 정방형)
關 1개(7×5, 흑색, 장방형)
서명(개) 착관:8 / 서압:8
점련자료 1647년 이생원댁 노 석경(石京) 소지(所志)
1648년 승 자운(自云) 소지(所志)
1649년 승 자운(自雲) 소지(所志)
1651년 승 자운(自云) 소지(所志)
1652년 승 자운(自云) 소지(所志)
1652년 승 자운(自云) 소지(所志)
1649년 승 자운(自雲) 소지(所志)
소장정보 원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 현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3 -해남윤씨편 정서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본 번역문은 2016년-2017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3 / 7. 소지류 / 가. 소지(입지) / 소지(입지)14-1 / 85 ~쪽
 
1647년(인조25) 남평현감(南平縣監)이 관할 현 거주 이소(李韶)와 해남현 거주 윤경담(尹景談) 사이에서 발생한 논 소유권 다툼과 관련, 이소의 화회문기(和會文記) 내용을 확인하고 이 사실을 해남현감에게 알리는 내용의 관(關).
   남평현감남평현이소의 호노 석경이 올린 소지의 내용에 의거하여 ‘1635년(인조13) 3월 21일 작성된 화회문기 중의 녹산면 구성방축내원 2작(作) 논 9마지기를 이소가 깃득한 것이 확실함’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을 해남현감에게 알리기 위하여 1647년(인조25) 11월 21일에 문서를 발급한 것이다.
 
1647년(인조25) 11월 21일에 남평현감이 남평현이소가 외가로부터 상속받은 논의 소유권을 증명해주는 내용으로 해남현감에게 보낸 문서
내용 및 특징
   南平縣監南平縣李韶가 외가로부터 상속받은 논의 소유권과 관계된 문서들을 살펴보고서 사실임을 확인한 뒤, 1647년(인조25) 11월 21일에 해남현감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는 문서이다.
   1647년(인조25) 11월에 남평현이소의 호노 石京남평현감에게 소지를 올렸다. 그 내용을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海南縣 彔山面 舊城防築內員 소재 논 9마지기는 상전댁이 외가로부터 상속받은 것으로, 올해 봄에 상전이 내려가서 씨를 뿌리고 왔다. 그런데 그 논을 海南縣에 사는 尹景談이 상전 이소의 문중양반에게서 사들였다고 하면서 禾穀과 함께 관아에 소지를 올려 논을 빼앗을 계획을 세우는 등 횡포를 일삼았다. 이에 따라 관련 문서들을 해남관에 보내어 사실관계를 증명해야 하나, 적지 않은 문서들을 먼 곳에 보내기 어려웠다. 그러므로 가까운 남평관에 관련 문서들을 모두 제출하면서 간략하게 문서를 베껴 쓰고 관인을 찍어 해남관移文을 발급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남평현감석경소지 내용에 의거하여 관련 문서들을 살펴본 뒤, ‘1635년(인조13) 3월 21일 작성된 和會文記 중의 녹산면 구성방축내원 2作 논 9마지기를 이소가 깃득한 것이 확실함’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을 해남현감에게 알리기 위하여 을 발급한 것이다.
   본 문서는 여러 건의 관련 문서들과 함께 있는데, 승 자운1652년(효종3) 8월과 1월, 1651년(효종2) 8월에 해남현감에게 각각 올린 소지 3건 다음에 점련되어 있다. 본 문서 다음에는 1647년(인조25) 11월에 남평이생원댁 奴 石京해남현감에게 올린 소지, 승 자운해남현감에게 1649년(인조27) 1월에 올린 소지 2건, 1648년(인조26) 4월에 올린 소지 1건, 총 4건이 차례로 점련되어 있다.
『古文書集成 3 : 海南尹氏篇 影印本』,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3
            『古文書集成 3 : 海南尹氏篇 正書本』,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6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韓國法制史攷』, 朴秉濠, 法文社, 1983
김봉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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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平縣監相考事縣居幼學李韶石京
所志內矣上典海南彔山舊城防築內畓九斗落
只亦奴矣上典外邊衿得是乎等以今年春上典下去
推尋給種子爲有如乎節海南尹景談稱號者亦
同畓庫乙奴矣上典門中兩班良中買得稱云禾穀
添飾呈官㥘奪設計爲旀同文記持來云云多率
族黨憑籍橫侵使農所奴子不得安接同文記下送就
卞事是乎矣不少文記遠地勢難投送是置文記相考
傳書踏印移文成給爲只爲所志是置有亦相考
爲乎矣崇禎八年三月二十一日其矣和會文記
山面舊城防築內
二作畓九斗落衿得的實爲去乎相考
施行事合行移關請
照驗施行須至

海南縣
順治四年十一月卄一日
相考
行縣監[署押] [關][南平縣印]

남평현감(南平縣監)이 상고(相考)하는 일입니다. 남평현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이소(李韶)의 사내종 석경(石京) 명의로 올린 소지(所志)에 “해남 녹산(彔山) 구성방축(舊城防築) 내 논 9마지기는 제 상전이 외가에서 상속받은 논입니다. 하여 금년 봄에 상전께서 내려가시어 추심하고 종자(種子)를 주고 왔습니다. 이 때 해남인(海南人) 윤경담(尹景談)이라는 이가 해당 논을 제 상전 문중 양반에게서 샀다면서 거짓으로 말을 만들어 관가에 정소(呈訴)하여 벼와 함께 모두 빼앗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동(同) 문기(文記)1)를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데려온 여러 명의 자기 족속들을 믿고 함부로 침범하여 농소(農所)의 종들로 하여금 편히 지낼 수 없게 하니, 동 문기를 내려 보내어 관정에 나아가 변별할 일이지만 적잖은 문기를 먼 곳으로 보내기는 어렵습니다. 하오니 동 문기를 상고(相考)하시고 옮겨 적은 후 관인(官印)을 찍어 이문(移文)2)을 발급해 주시도록 소지를 올립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상고해 보니, 숭정(崇禎) 8년(1635) 3월 21일자 이소의 화회문기(和會文記) 중 ‘녹산면(彔山面) 구성방축(舊城防築) 내 2작(作)3) 논 9마지기를 상속받은 것이 확실하오니 상고하여 시행하십시오. 절차대로 관(關)4)을 보내니 이 문서에 비추어 시행하되 관(關)대로 시행하기 바랍니다.5)
위 관을 해남현(海南縣)에 보냄.
순치(順治) 4년(1647) 11월 21일
상고(相考)에 관한 일.
행현감(行縣監) [서압][관(關)][남평현인(南平縣印)]

[주석]

1) 문기(文記)
이소(李韶)의 상속문기를 지칭한다.
2) 이문(移文)
본문은 ‘전서답인이문성급(傳書踏印移文成給)’이다.
3) 작(作)
작은 여러 의미로 사용된다. 특히 토지 기록 시 어느 부분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양안 상의 지번(地番) 뒤에 쓰일 경우는 동일 지번 내 필지의 번호로 볼 수 있다. 지번 앞에 사용된 경우는 원(員), 평(坪)과 같은 행정구역 명칭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해당 토지에 대해 양안 상의 정보 없이 위치만 기록하고 있으므로 정확한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우나, 여러 고문서 용례를 참고하여 ‘2개의 필지로 구성된’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4) 관(關)
동급관서 사이에 주고받거나 상급관서가 하급관서에 보내는 문서로서『경국대전』의 규정은 1품에서 6품아문 사이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5) 바랍니다.
원문은 ‘合行移關請 照驗施行須至關者’로 관(關)의 투식어로, 번역은 문보미의「조선시대 關에 대한 연구」의 견해를 따랐다.(문보미,「조선시대 關에 대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9. 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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