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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7년 윤숭희(尹崇希) 고목(告目)    
G002+AKS+KSM-XC.1657.4792-20101008.B001a_001_00243_003
 
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고목 / 정치·행정-보고-고목
작성주체 발급: 윤숭희(尹崇希) /수취: 관(官)
작성지역 재산현    / 경상북도 봉화군 재산면   
작성시기 1657년 / 정유1월14일   
형태사항 점련,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점련자료 1657년 응남(應男) 소지(所志)
1657년 응남(應男) 소지(所志)
이철쇠(李鐵金) 초사(招辭)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 현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비고 출판정보: 『고전자료총서 82-2 광산김씨 오천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본 번역문은 2014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1 / 7. 소지류 / 고목80 / 123 ~쪽
 
예안관에 토지소유권 착오 정정관련 쟁송에 대한 고목과 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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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目
他無奇事爲白齊 節當日付送奴口內 本縣後谷
弗莊洞員田地乙 矣身次知樣以矣身了立旨持來
捉上 官前 作訟設計爲白良置矣身段同▣
田無一庫半作 幸有甲戌打量時矣名以打量作
是昆全不干涉哛不喩大槩甲戌打量其時
段置矣身山谷無主田乙公然作食事以設心於
打量不喩同後谷人物皆是他官流來之人等以
須末不知重多卜數乙流民之名以懸錄不當是如
爲白遣一鄕公論矣身其時指尋監考隨行
爲白如乎矣右以威力打量爲有乎等以年年良中
其田地作者等 皆是愚氓是去乙 重多卜數其矣
名懸付於作正 則須末不知之人對答爲難乙仍于 矣奴
名懸付 年年作正對答爲白如可 今年段 其矣時執名以
家座上 府 時懸付爲有置時執等以推捉
前作訟事幷以詮次告課
向敎是事
(一六五七)
丁酉正月十四日才山縣尹崇希
丙申

고목(告目)
별다른 일은 없습니다. 이번에 당일로 부쳐 보내신 노(奴)의 말에, ‘본 현(縣) 후곡리(後谷里)의 불장동원(弗莊洞員)의 밭을 제가 차지할 양으로 제가 입지(立旨)를 가지고 왔고, 응남(應男)을1) 잡아다가 관아에 보내서 소송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곳에 밭이 한 필지도 없습니다. 요행히 갑술년(1634 인조12) 양전 때에 제 이름으로 측량했을 뿐이고 전혀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갑술년에 양전했던 그때에도 저는 산골에 주인 없는 밭을 공공연히 경작할 계획을 세우고 측량을 한 것이 아닙니다. 이 후곡리(後谷里) 사람들이 모두 다른 읍에서 흘러온 사람이었으므로 어떻게 될지 몰라서 많은 부수(負數)2)의 땅을 유민(流民)의 이름으로 달아 놓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온 마을의 공론(公論)에 따라 제가 그때 감고관(監考官)을 안내하고 수행했습니다. 위와 같이 하여 위력(威力)을 가지고 측량을 했던 것입니다. 해마다 그 밭을 경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무식한 자들이었습니다. 많은 부수의 땅을 그들의 이름으로 정전(正田)3)으로 적어 놓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이 세금을 내기 어려울 것이었습니다. 저희 노(奴)의 이름으로 적어 놓고 매년 정전(正田)으로 하여 세금을 내다가, 금년은 가호(家戶)를 조사하여 부(府)에 올릴 때 그의 현재 점유한 사람의 이름으로 적어 놓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땅을 점유한 사람들이 그를 관아에 잡아가서 소송을 한 사안도 함께 차례로 보고합니다.

정유년(1657 효종8) 1월 14일, 재산면(才山面) 현내리(縣內里) 윤숭희(尹崇希).

정유년(1657 효종8) 9월 초3일.
동선면(東先面)에 사는 이철쇠(李鐵金) 나이28.
아룁니다.‘네가 올린 소장(訴狀)에 의거하여 예안(禮安)의 노(奴) 응남(應男)을 잡아와서 한 곳에서 심문했다. 또 양쪽에서 납부한 입지(立旨)를 살펴보니, 너는 장인 정언부(鄭彦夫)의 밭인 오랫동안 묵히고 거칠어진 곳을 경작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밭은 또한 갑술년(1634 인조12) 양전 때에 주인 없는 밭이었으므로, 그때 감고관(監考官)이었던 윤숭희(尹崇希)에게 그곳을 가리켜 측량을 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응남의 상전 역시 자신의 물건이라면서 법에 따라 응당 찾아 가지려하였다. 이에 고목(告目)을 보니, 그의 상전에게 돌려주라고 하고 있다. 이로써 보면 이 땅은 실제 정언부의 물건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밭을 돌려주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다시 간사한 꾀를 내어 또 소장(訴狀)을 올려서 트집을 잡는 폐단이 있으면 법에 따라 처치하실 것입니다.
백(白)【수촌】
사(使)【착압】

[주석]

1) 응남(應男)을
광산이씨 문중의 노(奴)의 이름이다. 이 문장에서는 누구를 잡아다가 관으로 보냈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번역문에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점련되어 있는 ‘1657년(효종 8) 이철쇠(李鐵金) 초사(招辭)’를 참고하여 이름을 첨가하였다.
2) 부수(負數)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수확량 기준으로 토지를 측량하는 결부법(結負法)에 따라 측량한 토지의 면적 액수이다.
3) 정전(正田)
조선시대의 농경지 가운데 휴한(休閑) 혹은 진황(陳荒)시키지 않고 해마다 경작하는 상경전(常耕田)을 지칭하는 법제적 용어이다. [정의:고문헌용어용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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