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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9년 무안수세군관(務安收稅軍官) 서목(書目)    
G002+AKS+KSM-XC.1719.4682-20101008.B003a_003_01165_XXX
 
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서목 / 정치·행정-보고-서목
작성주체 발급: 군관(軍官) /수취: 경리청(經理廳)
작성지역 전라도 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작성시기 1719년 / 기해정월   
형태사항 크기: 39.6×46.1 / 낱장, 1장 / 종이 / 한자,이두
인장서명 經理廳印 1개(8×8, 적색, 정방형)
서명(개) 착명:1 / 서압:1
소장정보 원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 현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3 -해남윤씨편 정서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본 번역문은 2016년-2017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3 / 12. 서목 / 서목1 / 423 ~쪽
 
1719년(숙종45) 무안수세군관(務安收稅軍官)이 경리청(經理廳)에 함평, 나주, 영암, 해남, 무안 등지에서 세금을 걷는 일에 관한 내용을 보고한 서목
   1719년 1월, 무안수세군관함평, 나주, 영암, 해남의 세금을 걷는 와중의 제반 사항을 경리청에 보고를 온린 문서이다. 이에 대해 경리청은 29일에 처결을 적어 다시 내려보냈다.
 
1719년무안수세군관이 경리청에 보낸 첩정에 그 요지를 적어 첨부한 문서
내용 및 특징
   1719년 1월,務安收稅軍官經理廳에 보낸 牒呈에 그 요지를 적어 첨부한 문서이다. 첩정은 하급기관이 상급기관에 보고하는 문서로서, 그 요지를 적은 書目이라는 문서를 함께 첨부한다. 이를 접수한 상급기관은 처결내용을 그 書目에 적어 다시 내려보낸다. 經理廳은 조선시대 北漢山城을 관리하던 관청이다. 보고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咸平∙羅州∙靈巖∙海南 등 4고을에 대해서는 수세한 후 稅船에 添載하라는 뜻을 분부하였음. ② 전염병이 도는 務安에 대해서는 타작 상황을 직접 살펴보고 石數를 보고할 예정임. ③ 水災로 논 7마지기를 잃어버린 海南 花一面金必信에 대해서는 다른 논으로 대납할 것을 엄중히 분부하였으나 이행하지 못하므로 붙잡아다 여러 차례 治罪한 뒤 그 논의 本價 50냥을 겨우 받아서 올려보냄. ④ 김필신의 답의 本文記는 도로 내어줘야 하니 이에 대해 論題를 적어서 내려보내 줄 것. 이라 하였다. 이에 대해 經理廳에서는 1월 29일에 ' 本價를 받은 후 本文記를 내려보낼 것'이라 처결하였다.

자료적 가치
   1719년經理廳의 재원 조달 양상의 일면을 엿 볼 수 있는 자료이다.
『古文書集成 3 : 海南尹氏篇 影印本』,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3
            『古文書集成 3 : 海南尹氏篇 正書本』,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6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1차 집필자 : 김동석, 2차 집필자 : 명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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務安收稅軍官書目
咸平羅州靈岩海南等四邑段依例收稅後稅船添載之意各
其官良中申明分付是乎旀務安段小人親自收穫家家積納之後
染疾大熾閭村不安乙仍于擇其乾淨處親往打作故時未畢
是乎等以石數段待畢打卽爲照數牒報爲齊海南花
一面
金必信容字畓七斗落只所耕三十九卜三束庫段去上
年大水漂溢時破筒成川全無畓形將未免廢棄處是乎
等以其矣處他畓代納之意嚴加分爲乎則渠亦本以貧漢他
無相代之畓是如乙仍于累次捉來治罪後同畓本價錢文
拾兩艱難徵捧上爲去乎捧上敎是遣必信本文
等還爲出給而論題下送事幷以緣由手本爲臥乎
己亥正月 日收稅軍官[着名]

[題辭]捧上本文記下送向事
己亥正月卄九日
經理廳[署押] (官印, 方8㎝ 一個)

무안(務安) 수세군관(收稅軍官) 서목(書目) 공(空)1)
함평(咸平), 나주(羅州), 영암(靈岩), 해남(海南) 등 네 고을은 규례에 따라 수세(收稅)한 후 첨재(添載)2)하라고 각 관(官)에 거듭 분부하였으며, 무안(務安)은 제가 직접 수확하여 집집마다 납부한 후부터 전염병이 크게 번져 마을이 편치 않았기 때문에 전염병이 번지지 않은 깨끗한 곳을 골라 직접 가서 타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때맞춰 타작을 마치지 못하였으므로 섬수[石數]는 타작을 마치기를 기다려 즉시 수를 맞추어 보고할 것입니다. 해남 화일면(花一面)3) 김필신(金必信)의 용(容)자 논 7마지기 경작량이 39부(卜) 3속(束)인 곳은 작년에 큰물이 넘쳤을 때, 통(筒)4)이 깨져 내를 이루어 논의 형태가 완전히 없어져서 폐기되기를 면치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곳의 다른 논에서 대신 납부하라는 내용으로 엄하게 분부하니, 그는 본래 가난한 놈이라 달리 대신할 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여러 차례 잡아와서 죄를 다스린 후, 동(同) 논의 본가(本價) 전문(錢文) 50냥을 간신히 징수하여 받아서 보내니 받으시고, 동(同) 필신의 논의 본문기(本文記) 등을 도로 내어 줄 것이니 논제(論題)를 내려 보내주십시오. 연유를 갖추어 수본(手本)5)을 올립니다.
기해년(1719) 1월 일 수세군관 상(尙)[착명]

경리청(經理廳)6) [착압] [경리청인(經理廳印)]

<제사(題辭)>
받은 후에 본문기를 내려 보내라. 기해년 1월 29일.

[주석]

1) 공(空)
문서를 접수한 경리청(經理廳)에서 작성한 것으로서 이하는 공백이라는 의미이다.
2) 첨재(添載)
규정된 적재량 이외의 양을 더 싣는 것을 말함.
3) 화일면(花一面)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花山面) 지역.
4) 통(筒)
흐르는 물의 힘을 이용하여 물을 퍼 올리게 만든 관개 시설.
5) 수본(手本)
담당 관원이 상급 관서나 관계 관서에 보고하거나 청원하는 문서.
6) 경리청(經理廳)
조선시대 북한산성의 관리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관서.『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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