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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전라도(全羅道) 전령(傳令)    
G002+AKS+KSM-XC.1897.0000-20101008.B003a_003_01185_XXX
 
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전령 / 정치·행정-명령-전령
작성주체 발급: 전라도(全羅道)
작성시기 1897년 / 정유2월   
형태사항 크기: 22.8×161.5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 현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3 -해남윤씨편 정서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본 번역문은 2016년-2017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3 / 14. 전령 / 전령5 / 430 ~431쪽
 
1897년(고종36) 암행어사 이승욱(李承旭)의 감결(甘結) 내용을 고시하는 전령 초본(抄本)
 
주제
   1897년(고종36) 전라도에 파견된 암행어사가 내린 12조목의 甘結이다. 당시 어려운 정국을 앞부분에서 기술한 후 시국이 안정되기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12조목으로 나누어 호남의 부패한 吏習에 대한 경고, 개화기의 신분간의 갈등, 농민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주둔한 군병의 作弊 금지 등 당시 호남 일대의 정황에 대해 조목조목 기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1번째 대목에는 곡창지대인 호남 일대에 開港地가 생긴 이후 미곡이 대량으로 유출된다고 언급하면서 각별히 몰래 盜賣함을 중죄로 다스릴 것이라고 하였다. 마지막 부분은 추신으로, 암행어사를 따르는 人員이라고 가칭하면서 마을에 들어와 폐해를 끼치는 자가 있으면 親押과 馬牌의 유무를 확인하고 현장에서 즉시 결박하여 신속히 보고하라고 당부하였다.
/ 작성일:200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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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酉二月 日 (甘結移牒)
卽到暗行御史甘結內 本道人物殷庶 土地膏沃 名碩背出 風俗可觀 素稱國家根本之地 而挽近以來 土利人才 漸不如古 邑獘民瘼 益就難醫 公私俱匱 吏民並瘁 重之以守宰之卜定 橫歛編戶 絶支保之望 轉運之無名加賦 而稅民多勒抑之寃 蕩還之復起 閭里興嗷 物稅之刱立 市廛垂絶 由是而東匪乘時 藉托一呼 八路響應 苟究其源 寧不通惋 道以鄕曲書生愚昧沒覺 而不意虛名上欺 還御慶運宮之夜 首膺按南之命 攬轡轅湖 慨然有證請之思 然學膚才短 辭不達意 無以罄萬斛之懷緖 略以數語 攄盡衷赤 凡我湖南大小民人 各守其分 各安其業 崇吾正道 取彼利用 參古酌今審其識勢處 而厲親君死長義 出有折衝禦侮之氣 上毋負聖上宵旰之至意 下以副先賢用變之達權 是所區區之望也

一 湖南累經擾刦 四民失所 從前慰撫宣諭 非不申複 而勅歸虛文 竟無實 效 人心渙散 餘悖尙存 言念及此豈不痛恨 玆首發飭 廣加收拾 凡 我士民 各安其心 以守其業事
一. 東擾姑息 餘孽尙存 異敎幷行 悖類假托 曰是曰非 民訛日滋 當此時 若不歸一 函定方向 則甲午之擾 又必接踵而起矣令到之日 須各惕念 毋喪本意 至有稱藉侵凌蔑法犯科之端 則大者照會各館 小者按法懲辨 期於窮治事
一 湖南吏習多詐 幸國之灾 軍需之虛張僞錄 灾結之濫執加報 己極痛惋 而若甲午以前 蕩逋之朝飭 寔出於慰民心之本意 而奸吏寅緣作奸 多有 以六月以前之已捧而不納者 六月以後之已捧而乾沒者 執以爲一切民逋 利歸於私 害貽於國 此等奸獘 言之痛心 令到各邑 一一査簿 從實報來是矣 若有憑私不遵 玩愒時日 則該守令斷當啓簿 奸吏之不遵者 次第重繩 以肅國網事
一 經擾以後 各分頹喪 往往以民誣官 以奴叛主 以賤凌貴 謂以開化之世 其有各分云 誠覺寒心 盖開化云者 物開化民之謂也 捨尊卑貴賤之分 則民俗不正 上下紊亂 安有開化之名乎 試觀天下列國大勢 君臣之分 貴賤之義 何嘗一半分異於我耶 捨此則國無爲國 民不爲民矣 此天地不 易之正理也 但我國專尙門地 崇先世之遺骨 流 獘轉甚 至有兩班 則不必相人之諺 誠可笑也 此習不得不變革者 而至 於尊卑貴賤等級之分 如天壤之不可易 鵠蟲之不相侔明矣 從今以後 若 有稱托開化犯分逾等者 一一嚴勘以杜後獘事
一 傾軋之習 無處不有 而未有甚於湖南 非徒在吏爲此 至於士民亦同 一 套排異己 巧言行誣 眩幻公論 黨惡害正 誠以昨春事言之 鄭海南錫珍 之橫死 出於吏輩之勒構 奇松沙宇萬之被誣緣於邪黨之煽動 此輩奸究 之習 從可類推 自今以後 或有被誣良善者 這這嚴勘事
一 湖南風氣 以倖囑爲伎倆 今於新式公正之下 往往有浮雜之習正供之圖 劃 巡檢之圖差 以至浦稅市稅都將監色等名目 無往非法禁所關 而行賂 圖囑 吾見亦多矣 此等害國病民之習 不得不嚴禁事
一 新式中關係民瘼者 雖曰稍革 以今見之 舊瘼纔除 新獘又生誠以三政 言之 還米以社還移劃者 不無文簿之弄奸軍錢以戶布施行者 不無戶監 之循私 正供之以錢代納者 不無濫捧之作獘 以至守宰焉尙有貪墨之風 吏奴焉尙多侵漁之習 若有査察禁戢 實非朝家革瘼之本意 其各惕念事
乙未以後 頒布新式 志切利民 以至于今 有因循未改者 有欲改而反生 獘瘼者 令煩政苛 吏嬉民訕 其治國安民 自有倫綱之大者倫綱明 則國 治民安 倫綱不明 則國危民亂 安有法式文具 損益爲治亂之本意者乎 今之曰舊曰新 不過法式文具 而非倫綱之大者 則爲守宰者曉此義 舊規之 無害者不必盡除 新式之難便者 不必苛强 叅酌幷行 務盡便民事
一 崇儒重道 設校選校 自有先王美規是去乙 夫何士無見識 人不讀書 以 校院依歸之所 變作酒食鬪鬨之場 所謂大出派小出派破落之輩 諂事官 長 阿附權吏 變怪百出 而問其名 則齋儒也校任也 五百年鄒魯之邦 忽 焉爲外國之侵迫 而不得自振者 厥由何在 往事勿說 來者可追 先自校 宮 選有淵源正直繩墨嚴正之士 各其邑 卑辭厚禮 延爲校任 別正條約 敦尙儒術 該郡守職務勤慢亦觀於此 以爲藵貶事
一 駐陣之在外 專爲亂民之煽禍 亂民稍息 兵威無施 乃反侵虐平民 攘奪 其財産 從淫其妻妾 如此惡習 聽聞藉藉 此豈非將官不團束之過歟 從 今以後 這這査覈 若有如前貽獘之端 大隊以下 斷當論啓正罪事
一 湖南雖是穀鄕 而一自浦海開港之後 每日米船之在外 不下數千石 以 有限之谷 入無窮之海 億萬生靈 莫不嗷嗷 不得不嚴防 以活此方無告 之民是在果 沿海各口這這令飭 若有潛出盜賣之獘 斷用重律事
此亦中派送耳目之際 原有親押馬牌 若或假稱從員 出沒閭里 雖錢一 分飯一盂 非義侵索 則卽自該洞 檢其押牌之有無 登時結縛 捉囚該郡 迅卽報來 以待按法處辨是遣 藉謂的確▣...▣ 此等作獘隨現飛報事

정유년(1897, 광무1) 2월 일
바로 도착한 암행어사도(暗行御史道)1)의 감결(甘結)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본 도(道)는 인구가 많고 토지가 비옥한 곳이다. 명석한 인물이 배출되고 풍속이 볼 만 하여 본래 국가의 근본이 되는 땅이라고 일컬어져 왔다. 근래 땅의 생산과 인물의 재주가 점점 예전만 못하게 되고, 고을의 병폐와 민생의 피폐가 갈수록 치료하기 어렵게 되어 공사(公私)가 함께 고갈되고 이민(吏民)이 모두 고달프다. 수령은 복정(卜定)2)을 과하게 부과하여 편호(編戶)에게서 함부로 거둘어 들이니 지탱해 나갈 희망이 끊어지고, 세곡의 운반에 명목도 없이 부세(賦稅)를 더하니 세민(稅民)은 억눌린 원한이 많아진다. 탕감한 환곡이 다시 생겨남에 여리(閭里)에 원망 소리 일어나며, 물세(物稅)를 새로 만듦에 시전(市廛)이 거의 끊길 지경이다. 이런 까닭으로 동비(東匪)3)가 일어났을 때 하나의 외침에 팔도가 호응한 것이니, 그 근원을 따져보면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나는 시골의 서생으로서 우매하고 무지하나, 뜻하지 않은 허명(虛名)으로 임금을 속이게 되어 경운궁(慶運宮)으로 환어(還御)하시던 밤 맨 먼저 안남(按南)4)에 제수한다는 명을 받았다. 호남으로 가는 수레의 고삐를 잡고 감개한 마음으로 천하를 깨끗이 하리라는 뜻을 품었으나5), 학문이 얕고 재주가 짧아 뜻을 제대로 글로 표현하지도 못한다. 만곡(萬斛)의 소회를 다할 도리 없어 간략히 몇 마디 말로 충심을 피력한다.
호남의 대소민인(大小民人)은 각기 자신의 분수를 지키고 생업을 편안히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바른 도를 숭상하고 저들의 편리한 기구를 취하며, 고금(古今)을 참작하고 기미와 형편을 살피라. 임금을 친애하고 관장(官長)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의리를 다지고 절충(折衝)과 어모(禦侮)6)의 기상을 내어, 위로는 성상께서 소간(宵旰)7)하시는 지극한 뜻을 저버리지 말 것이며 아래로는 선현(先賢)께서 변칙(變則)을 쓰시는 달권(達權)8)에 부응하라. 이것이 구구(區區)한 나의 소망이다.

후(後)

하나. 호남은 여러 차례 혼란과 침탈을 겪어 사방의 백성들이 살 곳을 잃었다. 종전의 위무(慰撫)와 선유(宣諭)는 반복되지 않을 수 없으니, 칙문(勅文)이 허문(虛文)이 되어버리고 끝내 실효가 없어 인심은 흩어지고 여폐가 상존한다. 말이 여기에 이르니 어찌 통한치 않으리오. 이에 맨 먼저 신칙하여 널리 수습(收拾)할 터이니 무릇 우리 사민(士民)들은 각기 그 마음을 편안히 하여 각자의 업을 지킬 일이다.

하나. 동학의 소요가 우선 멈추었으나 잔당이 아직도 남아있고 이교(異敎)까지 병행(竝行)한다. 불량한 무리가 여기에 가탁(假托)하여 옳으니 그르니 떠들어대니 백성들의 요언(妖言)이 날로 심해진다. 이런 시기에 모두 하나로 합쳐서 빨리 방향을 정하지 않는다면 갑오년의 소요가 반드시 또 뒤이어 일어날 것이다. 이 명령이 도착하면 각기 척념(惕念)해야 할 것이로되, 본뜻을 잃지 말라. 명령을 빙자하여 남을 침해하고 능욕하거나 법을 업신여기고 어기는 일이 생긴다면, 큰 건은 각관(各館)에 조회(照會)9)하고 작은 건은 수령이 징치하고 변별할 것이니 철저히 다스릴 것을 다짐할 일이다.

하나. 호남 하급관리의 습성이 속임수가 많아 나라의 재앙을 다행으로 여기고 군수물품을 허위로 늘려 적으며 재결(災結)10)을 넘치게 잡고 과장하여 보고한다 하니 매우 안타깝다. 갑오년 이전 조정에서 탕포(蕩逋)11)의 신칙을 내린 것은 그야말로 백성을 위로하는 본의에서 나온 것이나 간리(奸吏)들은 기회로 삼아 작간(作奸) 하였다. 6월 이전 이미 (백성에게) 받아 놓고도 (나라에) 상납하지 않은 것과 6월 이후 이미 받아서 건몰(乾沒)한 것을 모두 민포(民逋)12)로 잡는 경우가 다수 발생해 이익은 사인(私人)에게 돌아가고 나라에는 해악을 끼쳤다.13) 이러한 간악한 폐단은 언급만 해도 마음이 아프다. 이 영(令)이 도착한 각 고을은 일일이 장부를 조사하여 실제대로 보고할 것이로되, 만약 사적인 이유로 준행하지 않고 게으름 피우며 세월만 보낸다면 따르지 않는 간사한 이속(吏屬)들을 하나씩 엄히 다스려 나라의 기강을 엄숙히 할 것이다.

하나. 소요를 겪은 이후 각각의 분수가 무너져, 백성이 관을 속이고 종이 주인을 배반하며 천인이 귀인을 깔보는 일이 자주 있는데, 이것을 개화(開化)된 세상이라 말하니 참으로 한심하다. 대개 개화라고 하는 것은 물개화민(物開化民)14)을 말한다. 존비귀천(尊卑貴賤)의 분간을 버리면 백성의 풍속이 바르지 않게 되어 상하가 문란해지니 어찌 개화의 명분이 있겠는가. 천하 열국의 대세를 살펴본다 한들 군신의 분간, 귀천의 의리가 우리와 다른 것이 조금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이것들을 버린다면 나라는 나라가 되지 못하고 백성은 백성이 되지 못한다. 이는 천지의 바꿀 수 없는 올바른 이치이다. 다만 우리나라가 오로지 문벌만 중요시하고 선대의 유골만 숭상하며 그 폐단이 갈수록 심해져 양반이면 관상도 볼 필요도 없다는 속담까지 생기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진실로 가소로운 일이다. 이런 습속은 부득불 변혁해야 하는 것이나, 존비귀천 등급의 분간은 천지를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천리를 나는 고니와 땅을 기는 벌레가 서로 동등할 수 없는 것처럼 분명하다. 지금 이후로 만약 개화를 칭탁하여 분수를 범하고 계급을 넘어서는 자는 하나하나 엄히 문초하여 훗날의 폐단을 막을 것이다.

하나. 경알(傾軋)15)의 습속은 없는 곳이 없으나, 호남보다 심한 곳은 아직 없다. 아전들 뿐 아니라 사민(士民)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과 다르면 배척하고 교묘한 말로 속임수를 쓰며 공론을 어지럽히며 악인과 무리 짓고 바른 이를 해친다. 작년 봄 해남군수16)정석진(鄭錫珍)17)이 횡사한 것도 아전 무리가 억지로 얽은 것 때문이다.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18)이 무고를 당한 것도 삿된 무리들의 선동에 기인한 것이니, 이 무리들의 간귀(奸宄)한 습성을 유추할 수 있다. 이후에 무고당하는 선량한 이가 생기면 낱낱이 엄격하게 심리하여 처리할 일이다.

하나. 호남의 풍속은 불법청탁을 능력으로 여긴다. 지금 공정한 새 법제 하에서도 왕왕 부잡한 습성이 남아서, 정당한 세금의 할당을 도모하거나 순검으로 차출되고자 할 때 심지어 포세(浦稅)19), 시세(市稅)20)에 이르기까지, 도장(都將)이며 감색(監色) 등의 명목으로 법금(法禁)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고 뇌물을 써서 청탁하는 것을 내가 많이 보았다. 이런 것들은 나라를 해롭게 하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습속이니 부득불 엄금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 새 법제 중에 민폐에 관계되는 것은 비록 그 폐단을 조금씩 고쳐간다고는 해도, 현 세태를 보아하니 구폐가 겨우 제거되면 새로운 폐단이 다시 생겨난다. 삼정(三政)21)을 보면, 환곡을 사환(社還)22)으로 옮긴 것은 문부(文簿)의 농간(弄奸)이 없지 않고, 군전(軍錢)을 호포(戶布)로 시행한 것은 호적의 감리(監吏)가 사사로움을 좇는 일이 없지 않으며, 정공(正供)23)을 돈으로 대납하게 한 것은 남징(濫徵)의 작폐가 없지 않다. 아직도 고을 수령은 탐묵(貪墨)하는 습속이, 아전과 관노는 침어(侵漁)24)하는 버릇이 남아 있다. 이를 사찰하고 엄히 금하는 것은 진실로 조정에서 폐단을 혁신하는 본뜻이 아닐 것이니 각기 척념할 일이다.

하나. 을미년 이후 세 법제를 반포한 것은 백성을 이롭게 하려는 뜻이 간절함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미루며 고치지 않은 것도 있고 개선하려 했다가 도리어 폐단이 생긴 것도 있다. 명령은 번다하고 다스림은 가혹하며 관리는 희롱하고 백성은 비방한다. 치국안민(治國安民)을 하는 데에는 삼강오륜이라는 큰 일이 있다. 삼강오륜이 밝으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백성이 편안하며, 삼강오륜이 밝지 못하면 나라가 위태롭고 백성이 어지럽다. 어찌 법식의 문구(文具)를 덜고 더하는 것이 난을 다스리는 본뜻이 되겠는가. 지금 구식이니 신식이니 하는 것은 법식 문구에 불과하고 삼강오륜의 큰 일이 아니니, 고을 원 된 자들은 이 뜻을 깨우쳐 옛 법규라도 무해한 것은 굳이 없애지 말고 신식이라도 편치 않은 것은 억지로 강요할 필요가 없다. 참작하여 병행해서 백성을 편히 하는데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하나. 선비를 숭상하고 도를 중히 하며 향교를 세우고 교생을 선발하는 것은 선왕 때부터 있어왔던 아름다운 법이다. 그런데 어떤 무식한 선비가 책은 읽지 않고 교원(敎院)을 의지처로 삼아 먹고 마시고 다투는 장소로 만들었단 말인가. 이른바 대출파(大出派)니 소출파(小出派)니 하는 파락호 무리가 관장에 아첨하는 것을 일삼고 힘 있는 아전에게 아부하여 각양각색의 변괴(變怪)를 만들면서도, 그 명색을 물으면 ‘재유(齋儒)’요, ‘교임(校任)’이요 답한다. 500년 추로지방(鄒魯之邦)25)이 갑자기 외국의 침입을 받았으나 스스로 떨쳐낼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지나간 일을 말하지 않고도 앞으로 올 일을 가히 짐작할 수 있으니 향교부터 먼저 근본이 정직하고 법도에 엄정한 선비를 선발해야 할 것이다. 각 고을에서는 비사후례(卑辭厚禮)26)로 교임을 맞아 오되 조약을 따로 정하여 유술(儒術)을 두텁게 숭상하라.
해당 군수가 직무에 근면한지 태만한지는 이것에서도 볼 수 있으니 포폄(褒貶)의 근거로 삼을 것이다.

하나. 군진이 외곽에 주둔하는 것은 애오라지 난민(亂民)이 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난민이 조금 잠잠해져서 군대의 위세도 부릴 곳이 없는데, 도리어 평민을 침학하여 그 재산을 약탈하고 그 처첩과 음란한 일을 벌인다. 이 같은 악습이 귀에 자자하게 들려오니 이 어찌 장교와 관장이 단속 못한 허물이 아니겠는가. 지금 이후로 낱낱이 조사하여 여전히 폐를 끼치는 단서가 있다면 대대(大隊) 이하로 단연코 논계(論啓)27)하여 죄를 줄 것이다.

하나. 호남이 비록 곡창(穀倉)지대이나 한번 항구와 바다를 개항한 이후 매일 항구 밖에 쌀을 배가 있는데 거기 실린 곡식이 수천 석이 넘는다. 유한한 곡식이 무한한 바다로 들어가니 억만의 생명이 모두가 걱정하고 한탄한다. 부득불 엄히 막아서 여기 무고한 백성을 살려야 하니, 연해 각 포구마다 낱낱이 명령을 내려 단단히 경계하라. 만약 몰래 쌀을 내어 도매(盜賣)하는 폐단이 있다면 반드시 무거운 형률(刑律)을 쓸 것이다.

하나. 이번 어사를 파송할 때 원래 임금께서 서압하신 마패가 있었다. 혹여 어사의 수행원을 가칭하여 여항에 출몰하며 돈 한 푼 밥 한 그릇이라도 사리에 맞지 않게 토색하는 일이 생기거든 즉각 해당 동(洞)에서 서압 마패의 유무를 검사하고, 그 즉시 결박하여 해당 군(郡)에 잡아 가두고 신속히 보고하여 법에 따른 처분을 기다리도록 하라. ▣…▣ 이런 종류의 작폐는 나타내는 대로 급히 보고해야 할 것이다.

[주석]

1) 암행어사또(暗行御史道)
이 감결은『동학농민혁명자료총서』5권「수록(隨錄)」에 ‘감결(甘結)’ 이라는 기사명으로 전사되어 있다. 전사된 내용에 따르면 암행어사는 완산이씨 이승욱(李承旭)이다.
2) 복정(卜定)
조선시대 별공(別貢)이 있을 때 감영 등이 민호(民戶)를 임의로 정하여 부과하던 조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참조.
3) 동비(東匪)
동학군.
4) 안남(按南)
본디 호남을 안찰(按察)한다는 의미로 전라 감사를 지칭한다. 이 문서에서는 암행어사임을 앞에서 밝혔고 여러 사료에서 전라도 어사로 지칭되므로 암행어사를 가리킨다.
5) 품었으나
고삐를 잡고~뜻을 품었으나:『후한서(後漢書)』「당고열전(黨錮列傳)」범방전(范滂傳)에 나오는 “登車攬轡慨然有澄淸天下之志”를 변용한 말이다. 후한 환제(桓帝) 때 기주(冀州)에 탐관오리와 기근, 민란까지 일어나자 범방(范滂)을 파견했다. 범방이 마차에 올라 고삐를 잡으며 천하를 맑게 만들겠다는 뜻을 보인 고사에 자신의 처지와 호남의 상황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6) 절충(折衝)과 어모(禦侮)
조선시대 무관 품계인 절충장군과 어모장군을 뜻한다.
7) 소간(宵旰)
소의간식(宵衣旰食)의 줄임말.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해가 진 뒤에야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임금이 침식을 잊고 정사(政事)에 힘쓰는 것을 말한다.
8) 달권(達權)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알맞게 일을 잘 처리함.
9) 조회(照會)
조회(照會) :「공문유별급식양」에 규정된 조회의 정의는 대등관(對等官)에게 왕복(往復)하는 공문으로, 반드시 회답을 요구하는 문서를 가리킨다. 명대(明代)부터 공문의 명칭으로 사용하였는데 아편전쟁 이후 외교문서의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김건우,「한국 근대 공문서의 형성과 변화에 관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6. 참조)
10) 재결(災結)
재해(災害)가 있거나 없거나에 상관없이 재해 등에 대비하여 각 고을에 주어진 급재 결수(給災結數)를 말함.『한국고전용어사전』참조.
11) 탕포(蕩逋)
포흠(逋欠)을 탕감한다는 의미. 즉 조세를 납부하지 못해 생긴 결손액을 탕감해 준다는 의미이다.
12) 민포(民逋)
민간에서 환곡을 쓰고 갚지 못해 포흠이 난 것을 말한다. 이포(吏逋)는 아전의 포흠이다.
13) 끼쳤다.
환곡의 폐단 중 대표적인 것이 아전의 포흠을 민간의 포흠인 것처럼 하여 조정의 탕감 혜택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백성은 실제로 모두 봉납했으니 탕감의 혜택을 보지 못했고, 나라는 조세를 거두지 못했으니 해가 되었으며, 실제 이득을 본 것은 아전들이 되는 것이다.
14) 물개화민(物開化民)
개물화민(開物化民)의 오기(誤記)로 추정된다. 매천 황현의 설명에 따르면 ‘개(開)’라는 것은『주역』(계사상, 繫辭上)에서 말하는 ‘만물의 도리를 깨달아 일을 성취시킨다’는 ‘개물성무(開物成務)’의 뜻으로 물질문명의 중요성을 제시하는 것이며, ‘화(化)’라는 것은『예기』(학기, 學記)에서 말하는 ‘백성을 교화시켜 한 시대의 풍속을 이룬다’는 ‘화민성속(化民成俗)’의 뜻으로 사회질서의 변화이다.(『한국유학의 탐구』, 1999. 6. 10., 서울대학교출판부)
15) 경알(傾軋)
서로간에 질투하여 꾀를 내 다른 사람을 모함에 빠트림. 주로 정치적인 갈등을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함.『한국고전용어사전』참조.
16) 해남군수
1895년(고종32) 전국의 행정구역 개편 때 해남현은 나주부(羅州府) 해남군으로 승격되었고 1896년에는 다시 전라남도 해남군으로 개편되었다.
17) 정석진(鄭錫珍)
갑오년 나주 등지에서 도통장(都統將)으로서 동학군과 대치하였고, 1895년과 1896년 해남군수에 제수된 인물이다.(『승정원일기』고종 32년 11월 29일 기사, 고종 33년 3월 29일 기사 참조.)
18) 기우만(奇宇萬, 1846~1916)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손자로 장성(長城) 출생이다. 왕후 시해와 단발령 시행에 의병을 일으키는 등 위정척사를 실천하였다.
19) 포세(浦稅)
조선시대 후기 포구로 드나드는 화물에 부과하던 세금.
20) 시세(市稅)
시장에 부과하는 세금. 광무3년 칙령 15호에는 감리서(監理署)의 봉급과 경비를 해당 항만, 시장에서 거두는 세금으로 충당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다.
21) 삼정(三政)
18, 19세기 조선에서 재정의 주종을 이루던 세 가지 수취(收取)의 경영.『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참조.
22) 사환(社還)
조선 시대 고종 32년(1895) 환곡(還穀)을 고친 이름. 사환조례(社還條例)에 의하여 민간에서 직영하게 함.『한국고전용어사전』참조.
23) 정공(正供)
정당한 부담이라는 뜻으로, 부세(賦稅)・방물(方物)을 일컫는 말.『한국고전용어사전』참조.
24) 침어(侵漁)
백성을 괴롭히고 못살게 굼. 마치 고기잡고 사냥하듯이 백성에게 가렴주구를 행한다는 뜻에서 침어라고 하였음.『한국고전용어사전』참조.
25) 추로지방(鄒魯之邦)
추(鄒)는 맹자의 나라고 노(魯)는 공자의 나라이므로, 공맹의 나라 즉 유교의 가르침을 따라 예절과 학문을 숭상하는 나라라는 의미이다.
26) 비사후례(卑辭厚禮)
겸손한 언사와 후한 예물.
27) 논계(論啓)
대간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신하들의 잘못을 논박하여 보고함.『한국고전용어사전』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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