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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동임(洞任), 각리민인(各里民人) 전령(傳令)    
G002+AKS+KSM-XC.1901.0000-20101008.B002a_002_00339_XXX
 
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전령 / 정치·행정-명령-전령
작성주체 발급: 동임,각리민인(洞任,各里民人)
작성시기 1901년 / 신축1월26일   
형태사항 크기: 23×62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 부안 우반 부안김씨  / 현소장처 : 부안 우반 부안김씨  
비고 출판정보 : 영인본: 『고문서집성 2 -부안 부안김씨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 정서본: 『고전자료총서 83-3 부안김씨 우반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3) / 본 이미지는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제공한 것으로 저작권이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있음. 역주본: 『고문서역주총서 2: 부안 부안김씨 우반고문서』(한국학중앙연구원, 2017)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2 / 3. 첩관통보류 / (2) 전령 / 전령3 / 416 ~417쪽
 
1901년(광무5) 부안현감이 김상술(金常述)의 산송(山訟)과 관련하여 투장(偸葬)한 이를 색출하라는 내용으로 우동리(愚東里)의 동임과 부근 각 리(里)의 백성에게 내린 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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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令 立下愚東里 尊洞任及附近各里民人等
卽者愚東里金常述等呈狀 內以爲民之六
代祖妣山在於本里後麓守護數百年一
無雜塚矣不意去年臘月良中不知何
許漢乘夜偸葬於主脈上不盈尺之地豈
有如許無據之習乎所謂偸塚之漢四散
搜覓終無現捉故緣由仰訴特爲令飭
於山下附近里民人等處使之掘移亦爲寘
凡人之葬親露其姓名與山主訟其訟從
理妥辨可也而遐鄕愚氓不知此例葬親
匿名之訴課日還至言念及此不覺駭
瞠此等弊習不可不摘發懲治乃已故玆
傳令汝矣洞頭民以此措辭揭榜令到十
日內指名馳報以爲從理聽決之地爲旀且偸
葬者言之必是近洞人也亦不無不知之理
惕念搜探以報是矣如是令飭之後若或
漫漶擧行不善操飭之責當有捉懲
之道俾卽擧行無致後悔之地宜當事
辛丑正月二十六日

(官印 方4㎝ 一個)
전령(傳令). 입하면(立下面) 우동리(愚東里) 존동임(尊洞任) 및 부근 각 리(里) 백성들에게.
방금 우동리의 김상술(金常述:1828~1894)1) 등이 올린 소장(訴狀)에 “본 우동리 뒷산 기슭에 있는 저희 6대조 할머니의 묘소를 지켜온 지 수백 년 동안 잡인의 무덤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난 해 12월 갑자기 누군지 알 수 없는 놈이 주맥(主脈) 위에서 한 자(尺)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밤을 틈타 몰래 무덤을 만들었으니 어떻게 이런 터무니없는 짓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른바 도둑 무덤을 쓴 이를 사방으로 찾아보았으나 끝내 나타나지 않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유로 사또께 우러러 호소하오니, 산 아래 부근 마을 백성들에게 특별히 경계하는 명령을 내리시어 도둑 무덤을 파내어 옮길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대개 사람들이 어버이를 장사지낼 때에는 자기의 성명을 드러내야 하고, 산주인과 송사를 벌일 땐 이치에 따라 온당함을 판별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시골 마을의 어리석은 백성이 이런 법식을 알지 못하여 이름을 숨기고 어버이를 매장했다는 송사가 날마다 돌아온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으며 이러한 폐습은 불가불 적발하여 징치하고야 말 것이다.
이에 너희 동의 두민(頭民)에게 전령을 내리니 이 내용으로 방문(榜文)을 써 내걸고, 명령이 도착한 지 10일 내로 범인의 이름을 지목해 신속히 보고하여 이치에 따라 소송을 진행하고 판결할 수 있도록 하라. 또 투장(偸葬)한 자로 말하자면, 필시 부근 동네의 사람일 테니 모를 이치가 없으니 삼가 명심하여 찾아내 보고하라. 이와 같이 명령을 내려 경계한 후에도 태만하게 처리한다면 잘 단속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응당 잡아다 징계하는 조처가 있을 것이니, 즉시 거행하여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일이다.
신축년(1901, 광무5) 1월 26일

관(官) [관인: 2.5×2.5㎝, 1개]
[관인: 4×4㎝, 3개]

[주석]

1) 김상술(金常述)
자(字)는 황중(黃中)이고 호(號)는 낙헌(樂軒)이다. 7대조 김번(金璠)의 대에 우반동으로 이거하였다. 부친은 낙환(洛煥), 모친은 함양박씨(咸陽朴氏)이고 배필은 울산김씨(蔚山金氏)이다.(『부안김씨지평공파세보(扶安金氏持平公派世譜)』, 지선재, 1998. 상권 24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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