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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개천군수(价川郡守) 유성원(柳聲遠) 조회(照會)    
G002+AKS+KSM-XC.1906.0000-20101008.B038a_058_00121_XXX
 
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조회 / 정치·행정-명령-조회
작성주체 발급: 개천군(价川郡) /수취: 덕천군(德川郡)
작성지역 개천군    / 평안남도 개천시   
작성시기 1906년 / 광무10년10월6일   
형태사항 크기: 30×17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한글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산 부곡 진주유씨 경성당  / 현소장처 : 안산 부곡 진주유씨 경성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58 -안산 진주유씨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58 / 3. 첩관통보류 / (3) 조회 / 조회3 / 99 ~쪽
 
1906년(光武10)에 价川郡守 柳遠聲이 德川郡守에게 발급한 照會.
 
주제
   1906년(光武10) 10월 6일에 价川郡守 柳遠聲이 자신의 관할하에 있는 죄인이 덕천군으로 도망가자 德川郡守에게 이들을 붙잡아서 압송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발급한 照會이다. 죄인은 李奉의 아내와 金召史의 아들 金炳斗이다. 이봉은 처음에 金召史가 자신의 아내를 유인해서 다른 곳으로 보낸 것이라고 고소하였다. 이에 김조이를 잡아가두고 그녀의 아들 金炳斗에게 찾아오라고 시켰는데 김병두가 이씨의 아내와 덕천군으로 도망쳐버린 것이다.

용어
   照會는 무엇을 묻거나 알리기 위해 보내는 공문을 말한다.

인물
   帽山 柳遠聲(1851~1906)은 아버지 柳霶과 어머니 高靈申氏 사이에서 태어나, 1847년(高宗11) 增廣 會試에서 생원에 입격했다. 그 후 1900년 明成皇后 山陵都監 郞廳을 시작으로 1906년 平安道 价川郡守, 孟山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지명
   평안남도 북부에 위치한 价川은 1413년(太宗13)에 개천군이 되었고, 1895년(高宗32) 평양부 관할이 되었다가 1914년 府郡制 폐합 때 內南面이 順川郡에 편입되었다. 1941년에는 개천면이 개천읍으로 승격되었고 1991년 1월 다시 시로 승격되었다.
김소희 / 작성일:200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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