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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평안남도 수조관(收租官) 원용규(元用奎) 조회(照會)    
G002+AKS+KSM-XC.1906.0000-20101008.B038a_058_00124_XXX
 
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조회 / 정치·행정-명령-조회
작성주체 발급: 평안남도수조관(平安南道收租官) /수취: 개천군(价川郡)
작성지역 평안남도 / 평안남도   
작성시기 1906년 / 광무10년9월29일   
형태사항 크기: 31×38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한글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산 부곡 진주유씨 경성당  / 현소장처 : 안산 부곡 진주유씨 경성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58 -안산 진주유씨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58 / 3. 첩관통보류 / (3) 조회 / 조회6 / 102 ~쪽
 
1906년(光武10)에 元用奎가 价川郡守 柳遠聲에게 발급한 照會.
 
주제
   1906년(光武10) 9월 29일에 平安南道收租官 元用奎가 개천군의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嚴杜玄을 파견한다는 뜻으로 价川郡守 柳遠聲에게 발급한 照會이다. 개천군에서 납부해야 할 양은 전년에 미납된 각 驛屯土에 대한 세금과 올해 납부해야 할 賭租 및 秋收穀이다.

용어
   收租官은 宮房의 추수를 보러 가는 벼슬로 추수를 보고 田地의 세를 거두어들이기 위해 파견되었다. 照會는 무엇을 묻거나 알리기 위해 보내는 공문을 말한다.

인물
   帽山 柳遠聲(1851~1906)은 아버지 柳霶과 어머니 高靈申氏 사이에서 태어나, 1847년(高宗11) 增廣 會試에서 생원에 입격했다. 그 후 1900년 明成皇后 山陵都監 郞廳을 시작으로 1906년 平安道 价川郡守, 孟山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지명
   평안남도 북부에 위치한 价川은 1413년(太宗13)에 개천군이 되었고, 1895년(高宗32) 평양부 관할이 되었다가 1914년 府郡制 폐합 때 內南面이 順川郡에 편입되었다. 1941년에는 개천면이 개천읍으로 승격되었고 1991년 1월 다시 시로 승격되었다.
김소희 / 작성일:200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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