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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평안남도 수조관(收租官) 원용규(元用奎) 조회(照會)    
G002+AKS+KSM-XC.1906.0000-20101008.B038a_058_00127_XXX
 
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조회 / 정치·행정-명령-조회
작성주체 발급: 평안남도수조관(平安南道收租官) /수취: 개천군(价川郡)
작성지역 평안남도 / 평안남도   
작성시기 1906년 / 광무10년11월19일   
형태사항 크기: 30×40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한글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산 부곡 진주유씨 경성당  / 현소장처 : 안산 부곡 진주유씨 경성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58 -안산 진주유씨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58 / 3. 첩관통보류 / (3) 조회 / 조회9 / 105 ~쪽
 
1906년(光武10)에 平安南道收租官 元用奎가 价川郡守 柳遠聲에게 발급한 照會.
 
주제
   1906년(光武10) 11월 19일에 平安南道收租官 元用奎가 經理院에서 발급했던 訓辭에 의거해서 价川郡守 柳遠聲에게 보낸 照會이다. 훈사는 ‘각 郡의 관할 하에 있는 公土에 대한 신구세액을 淸勘하도록 해당 군수에게 지시하라’는 뜻으로 원용규에게 발급된 것이다. 이에 원용규는 价川郡守에게 ‘각 派員에게 公土의 경작상태를 엄밀히 조사해서 세금을 督捧하라’는 지시를 내리도록 하였다.

용어
   收租官은 宮房의 추수를 보러 가는 벼슬로 추수를 보고 田地의 세를 거두어들이기 위해 파견된 관직이다.

인물
   帽山 柳遠聲(1851~1906)은 아버지 柳霶과 어머니 高靈申氏 사이에서 태어나, 1847년(高宗11) 增廣 會試에서 생원에 입격했다. 그 후 1900년 明成皇后 山陵都監 郞廳을 시작으로 1906년 平安道 价川郡守, 孟山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김소희 / 작성일:200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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