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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평안남도 수조관(收租官) 원용규(元用奎) 조회(照會)    
G002+AKS+KSM-XC.1906.0000-20101008.B038a_058_00128_XXX
 
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조회 / 정치·행정-명령-조회
작성주체 발급: 평안남도수조관(平安南道收租官) /수취: 개천군(价川郡)
작성지역 평안남도 / 평안남도   
작성시기 1906년 / 광무10년12월8일   
형태사항 크기: 30×20.5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한글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산 부곡 진주유씨 경성당  / 현소장처 : 안산 부곡 진주유씨 경성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58 -안산 진주유씨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58 / 3. 첩관통보류 / (3) 조회 / 조회10 / 106 ~쪽
 
1906년(光武10)에 元用奎가 柳遠聲에게 발급한 照會.
 
주제
   1906년(光武10) 11월 8일에 平安南道收租官 元用奎가 收租派員인 車秉洪의 보고에 의거해서 价川郡守 柳遠聲에게 발급한 照會이다. 차병홍은 개천군에 있는 각 공토에 대한 세곡을 조사하는 일이 金用善 등의 방해로 지체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에 원용규가 价川郡守에게 김용선 등을 엄금하며 아울러 차병홍에게 看坪하고 收納하는 일을 전담하도록 해서 속히 淸勘해 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인물
   帽山 柳遠聲(1851~1906)은 아버지 柳霶과 어머니 高靈申氏 사이에서 태어나, 1847년(高宗11) 增廣 會試에서 생원에 입격했다. 그 후 1900년 明成皇后 山陵都監 郞廳을 시작으로 1906년 平安道 价川郡守, 孟山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지명
   평안남도 북부에 위치한 价川은 1413년(太宗13)에 개천군이 되었고, 1895년(高宗32) 평양부 관할이 되었다가 1914년 府郡制 폐합 때 內南面이 順川郡에 편입되었다. 1941년에는 개천면이 개천읍으로 승격되었고 1991년 1월 다시 시로 승격되었다.
김소희 / 작성일:200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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