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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무안부재판소(務安府裁判所) 전령(傳令)    
G002+AKS+KSM-XC.1906.4684-20101008.B003a_003_01184_XXX
 
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전령 / 정치·행정-명령-전령
작성주체 발급: 무안부재판소(務安府裁判所) /수취: 진도군도면맹골도죽도곽도두민등(珍島郡島面孟骨島竹島藿島頭民等)
작성지역 무안부    / 전라남도 무안군   
작성시기 1906년 / 광무10년10월18일   
형태사항 크기: 28×73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 현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3 -해남윤씨편 정서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본 번역문은 2016년-2017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3 / 14. 전령 / 전령4 / 429 ~430쪽
 
1906년(광무10) 무안부(務安府) 재판소에서 해남윤씨가와의 도세(賭稅) 분쟁 해결과 관련하여 맹골도(孟骨島), 죽도(竹島), 곽도(藿島) 두민들에게 발급한 전령
 
주제
   1906년(고종43) 10월 18일 務安府裁判所에서 해남 尹氏家에 賭稅를 거부하는 맹골도, 죽도 곽도 세 섬의 頭民(대표)에게 내린 전령이다. 진도군 鳥島面에 위치한 이 세 섬은 해남 蓮洞에 거주하는 윤정현의 島庄으로, 4백여 년 동안 전해 내려온 것이라는 전제하고, 섬 주민들이 信號所 소장 일본인 長藤億之助가 죽도에 등대를 건축하는 것을 기회로 삼아 납세를 거부하고, 감리서 巡檢까지 내쫓는 등 官의 명령까지 따르지 않는 문제를 발생시켰다고 엄중 경고하였다. 외교 문제까지 야기시킨 상황이었지만, 세 섬에서 頭民의 대표로 李允擧와 李根赫을 뽑아 원래 납부하기로 정해진 賭稅와 작년에 납부하지 않는 稅까지 납부하기로 다짐(侤音)을 올리기에 우선 용서하겠으니, 다시는 죄를 저지르지 말라고 끝을 맺고 있다.
/ 작성일:200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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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令珍島郡島面孟骨島竹島藿島頭民等處
夫依賴外人則在法罔赦요 背却舊主則於義所悖라 海南郡蓮洞尹定鉉家庄土가 在於汝矣島中야 十四代永傳之舊物也요 四百年原定之賭稅也라 夫何昨年四月以來로汝矣島莠民悖類가 藉勢於日人之建築燈臺야 欲侵所有之物權고 頑拒年例之賭稅야 府郡題辦을 恬然冷視고 監署巡檢을 無難毆送니 此乃蔑法之氓이요 悖義之漢이라 奉承政府之訓飭야 遂與理事로 交涉談辦야 派送理事廳巡査矣터니 長藤信號所長도 乃解島民之非理와 尹氏之極寃고 至於汝矣島民도 自知其罪고 願改其過야 定送三島頭民之代表李允擧李根赫야 每年原定賭稅牟十八石 藿二百五十束 乾魚一百五十尾 全鰒三十串 魚油七斗 南草代錢五兩을 幷昨年未納條야 卽爲辦納之意로 自服納侤이다온 盖么麽島民이 欲奪屢代世傳之庄土고 遂惹兩國交際之葛藤니 究厥悖習에 固當依律勘處이나 一以恕其蠢愚고 一以第觀來頭야 玆以傳令니 惕念擧行야 更勿抵罪가 宜當事
光武十年十月十八日
務安府裁判所[務安府裁判所判事之章][務安府裁判所印]

전령. 진도군 조도면(鳥島面) 맹골도(孟骨島), 죽도(竹島), 곽도(藿島) 두민(頭民)1)등에게2)

대저 외인(外人)에게 의탁하면 법에 용서를 받을 수 없고, 옛 주인을 배반하는 것은 의(義)에 어긋난다. 해남군 연동(蓮洞)의 윤정현(尹定鉉, 1882~1950)3)가의 장토(庄土)는 너희 섬 중에 있는데, 14대(代) 동안 길이 전해진 오래된 물건이요, 400년 전부터 이미 도세(賭稅)4)를 정하여 납부해 왔다. 어찌하여 작년 4월 이래로 너희 섬의 불량한 무리들이 등대(燈臺)를 건축하는 일인(日人)들 세력에 기대어 소유(所有)의 물권(物權)을 침해하려 하고, 매년 내기로 되어있는 도세 납부를 완강히 거부하는가. 부군(府郡)의 처분과 판결을 태연히 무시하고 감서(監署)5)순검(巡檢)6)을 무난히 구타해 보내니, 이들이야말로 법을 멸시하는 백성이요 의리를 망치는 놈들이다.
정부(政府)의 훈칙(訓飭)을 받들어 결국 이사(理事)와 교섭, 담판하여 이사청(理事廳)7)순사(巡査)8)를 파송했더니, 장등(長藤) 신호소장(信號所長)9)도 도민(島民)의 비리(非理)와 윤씨의 원통함을 이해하였다. 심지어 너희 도민들도 스스로 자기 죄를 알고 허물을 고치기 원하여 세 도의 두민 대표로 이윤거(李允擧), 이근혁(李根赫), ▣▣▣을 뽑아 보내어 원래 정해진 도세인 보리 80섬, 미역 250뭇, 건어 150마리, 전복 30꿰미, 어유(魚油) 7말, 담뱃값 5냥을 작년 미납분과 함께 즉시 판납(辦納)한다는 뜻으로 자복하는 다짐을 바쳤다.
하찮은 섬 백성들이 누대에 걸쳐 전해 내려오는 장토를 빼앗고자 양국(兩國) 교제에 갈등까지 야기했으니 그 패습(悖習)을 생각하면 응당 형률에 따라 처리해야 할 것이나, 한편으로는 그 어리석음을 용서하고 또 한 편으로는 앞으로 두고 보겠다는 뜻으로 전령(傳令)하니,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거행하여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광무(光武) 10년(1906, 고종43) 10월 19일
무안부재판소(務安府裁判所) [무안부재판소판사지장(務安府裁判所判事之章)]
[무안부재판소인(務安府裁判所印)]

[주석]

1) 두민(頭民)
동(洞) 혹은 리(里)의 대소사를 책임지는 자로, 주민들이 선출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수령이 임명하는 사례도 있었다.(송만오,「조선 후기 두민에 관한 몇 가지 검토」,『대동사학』4, 2005. 참조)
2) 등에게
이 문서와 연관된 ‘1905년 8월 유학 윤관하(尹觀夏) 등 소지 초’는 섬 주민들이 죽도에 등대 건축, 관리를 위해 들어온 일본인과 결탁하여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자 근대적 토지 소유권의 필요성을 느껴 입지(立旨)를 신청하는 내용이다. 이 문서는 그 이듬해에 발급된 것으로, 해남윤씨가의 대응이 사법적으로 실현되었음을 보여준다.(김현영,「전근대 해남윤씨가의 맹골도 지배와 주민들의 세공 회피」,『고문서연구』39호, 2011. 참조)
3) 윤정현(尹定鉉, 1882~1950)
자는 치린(稚麟), 호는 수당(守堂)이여, 배필은 광주이씨(廣州李氏)로 병응(秉應)의 여식이다.
4) 도세(賭稅)
도세(賭稅) :『한국고전용어사전』‘도지(賭地)’ 참조.
5) 감서(監署)
감리서(監理署). 대한제국 시기 개항장(開港場), 개시장(開市場)의 행정과 대와관계 사무를 관장하던 관서인데, 개국 505년 8월 10일 칙령(勅令) 52호에 의해 개항장의 경무관(警務官)은 감리서의 지휘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각사등록 근대편』「사법품보(司法稟報)」‘보고서 제41호’ 참조) 그러므로 경무청 소속의 순검이 감서 순검으로 표현된 것이다.
6) 순검(巡檢)
순검(巡檢) :『조선 말기의 경찰 관직으로 갑오경장 때 신식 경찰제도가 실시되면서 설치되었다. 1894년(고종 31) 7월 14일 종전의 좌우포도청을 합쳐서 경무청을 신설하였는데, 경무청은 내무아문에 속하였고 서울의 경찰사무를 맡아보았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참조.
7) 이사청(理事廳)
일제가 각 지방에 설치한 통감부(統監府)의 지방 기관.
8) 순사(巡査)
순검(巡檢)의 이칭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순검(巡檢)’ 참조.
9) 장등(長藤) 신호소장(信號所長)
신호소(信號所) 소장 나카후지를 지칭한다. 순종 3년(1910)에는 선박 신호소에 관한 칙령이 반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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