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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 관(官) 다짐(侤音)    
G002+AKS+KSM-XD.0000.0000-20101008.B003a_003_01192_XXX
 
분류 고문서-증빙류-다짐 / 법제-소송·판결·공증-다짐
작성주체 발급: 관(官) /수취: 윤덕찬(尹德贊)
작성시기 임인9월16일
형태사항 크기: 25.3×133 / 점련,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점련자료 임인년 관(官) 다짐(侤音)
소장정보 원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 현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3 -해남윤씨편 정서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본 번역문은 2016년-2017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3 / 15. 다짐 / 다짐7 / 433 ~쪽
 
1782년(정조6, 임인) 윤덕찬(尹德贊)의 선산에 지파(支派)인 윤굉(尹{忄+宏}) 등이 이장하여 벌어진 소송에 대해 원고(原告) 윤덕찬(尹德贊)이 관에 올린 다짐
 
주제
   윤굉 등은 가문의 지파인데 조부의 묘산을 옮기려 먼 곳에서 운구하여 先山 側下의 側下에 장사 지내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곳은 바로 先墓倒葬의 곳이었다. 가문이 이런 사실을 듣고 산에 모두 모여 여러 날 장례를 금지하자 이 울부짖으며 애걸하였다. 이에 똑같은 자손이므로 옳다 그르다 의논이 있었다. 의 선조 때 이미 도장의 일이 있기 때문에 또한 지금 이곳에 도장하려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門中 간에 옳다 그르다는 다툼의 단서를 만들어 관에 송사를 하게 이르렀다.

인물
   윤굉(1728~1793)은 尹德熙(1685~1766)의 제 4남이다.
/ 작성일:200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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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日 狀頭海南花山尹德贊年六十五
白等同宗{忄+宏} 祖父私葬處 卽矣先山倒葬之側下也 {忄+宏} 之營葬時 矣身不叅 禁葬之論是白遣 矣從弟德曄來到是白乎乃 以倒葬論之 則矣身數三代倒葬 決非常論是白遣 以義理言之 則雖有先祖遺戒 憑藉先代輪次過葬於先墓塚後事極不當是白乎矣矣身諸族或可或否 而門長旣己許與 登時不禁之事 敢生起鬧 以至於官卞之境 五朔後起訟果爲稽忽是白乎等以 如是納招爲白去乎相考處之敎事
行官(押) 白

같은 날, 장두(狀頭)1) 해남 화산(花山)에 사는 윤덕찬(尹德贊) 나이 65세.
아룁니다. 저의 동종(同宗)인 윤굉이 그의 조부를 사사로이 장사지낸 곳이 바로 저의 선산의 도장한 곳 바로 옆의 아래쪽입니다. 굉이 영장(營葬)할 때 장사를 금지하는 논의에 참여하지 못하였고, 저의 종제(從弟) 덕화(德曄)가 갔었습니다. 도장(倒葬)으로 말하면 저의 서너 대(代)를 뒤집는 도장이니 결코 일반적인 의논이 아니고, 의리로 말하면 비록 선조의 유계(遺戒)와 참고할 문적이 있더라도 선대에서 차례대로 써놓은 묘 뒤에 시일이 지나 묘를 쓰는 것은 매우 부당합니다. 저희 친족들이 왈가왈부했고, 문장(門長)은 이미 허락을 하였습니다. 때를 기다리고자 금지하지 않았는데, 감히 소란을 일으켜 관에서 변별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5개월이 지난 뒤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과연 지체하고 소홀히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초사(招辭)를 바치니 잘 살피셔서 처치하실 일입니다.
아룀
행관(行官) [착압]

[주석]

1) 장두(狀頭)
연명하여 소장(訴狀)을 올릴 적에 첫머리에 이름을 쓴 사람으로, 소두(疏頭)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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