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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관(官) 다짐(侤音)    
G002+AKS+KSM-XD.0000.0000-20101008.B003a_003_01193_XXX
 
분류 고문서-증빙류-다짐 / 법제-소송·판결·공증-다짐
작성주체 발급: 관(官) /수취: 손중억(孫重億)
작성시기 임술11월초9일
추정시기 임술년
형태사항 크기: 28×49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 현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3 -해남윤씨편 정서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본 번역문은 2016년-2017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3 / 15. 다짐 / 다짐8 / 433 ~쪽
 
임술년 묵지동리(墨只洞里)의 존임(尊任)을 맡은 손중억(孫重億)이 낙창군방(洛昌君房)의 점산(占山)을 책임지고 관리하겠다는 다짐
 
주제
   유학 손중억이 묵지동 里尊任으로 낙창군방 점산을 책임지고 간수하는 임무를 맡기로 관과 약속하고 있다. 산의 나무를 벌채하기 위해 혹 누가 침범하는 폐단이 있을 때에는 금지해야 할 것이오. 만약 이 사실을 관에서 공식적으로 한 후에 간수를 잘 못하게 되면 손중억에게 책임을 묻더라도 이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이다. 땔감이나 건축을 위해 무단으로 벌채가 행해지고 있었는데 이를 마을의 직임을 맡고 있는 자로 하여금 책임을 주어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용어
   幼學은 조선시대 士族으로 아직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지칭한다.

비고
   본 자료는 고음을 하고 있는 본인의 수결과 관의 관인이 1개 있다.
/ 작성일:200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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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戌十一月初九日 墨只洞里尊任幼學孫重億年五十三
白等矣身所掌里內良中 自洛昌君房占山置標爲有在果 日後或有某人是乃 侵犯之獘是白良置矣身次知禁所爲乎矣 如是納招之後 如有不能看守 則矣身處當推敎事
官(押) (手決)
(官印, 方6㎝ 五個)

임술년 11월 9일, 묵지동리(墨只洞里)1) 존임(尊任) 유학(幼學) 손중억(孫重億) 나이 53세.
아룁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마을 안에 낙창군방(洛昌君房)2)에서 묏자리를 잡아 표적을 묻어둔[占山置標] 곳이 있습니다. 훗날 혹 누군가 침범하는 폐단이 있을지라도 제가 담당[次知]하여 금하되, 이와 같이 초사를 바친 뒤 만일 잘 지키지 못하는 일이 있으면 저에게 응당 추고하실 일입니다.
아룀 [착명]
관 [착압]

[주석]

1) 묵지동리(墨只洞里)
개성부(開城府) 서면(西面) 묵지동이다. 해남윤씨 고문서에 같은 임술년 11월에 낙창군방의 사내종 이뢰가 개성부에 있는 산소 자리에 대해 입지(立旨)를 성급해주기를 청한 소지가 있다.
2) 낙창군방(洛昌君房)
낙창군은 이탱(李樘, ?~1761)이다. 1724년(경종4) 경종이 죽었을 때 수릉관(守陵官)의 직책을 맡았으며, 그 공으로 1726년(영조2)에 가자(加資)되었고, 낙창군(洛昌君)에 봉하여졌다.(『민족문화대백과』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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