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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대 전반 결송입안(決訟立案)    
G002+AKS+KSM-XD.0000.4717-20101008.B001a_001_00092_XXX
 
분류 고문서-증빙류-입안 / 법제-소송·판결·공증-입안
작성주체 발급: 행부윤겸판관(行府尹兼判官) /수취: 만강(萬江)
작성지역 안동부    / 경상북도 안동시   
형태사항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 현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비고 출판정보: 『고전자료총서 82-2 광산김씨 오천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본 번역문은 2014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1 / 4. 입안(계후·노비·토지) / 결송입안6 / 18 ~쪽
 
관에서 사내종 만강에게 발급한 공증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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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頭缺) (1600년대 전반)
 實三子▣…▣等 皆以未年?▣…▣和會分派都明文爲有如乎光岳咸鏡道明川居 奴孝春幷二所生奴加之加屎 一所生 奴奉春奉代二口等乙衿付爲有去等 同奴婢乙 千萬不干人金賢{日+吉}向前朴希天父勳亦買得是如 其家時在▣後 ▣…▣後▣…明卞決給敎▣(味)▣…等 奴萬江招內乙用良奉春奉代等 買得根因推考敎是臥乎在亦 矣父亦 本府居李得秋處買得 幾至十八年之久是白去等同奴婢本意 今日李得秋當問後 矣所持文記相考處決敎味白齊 同日 李得秋 年四十 白等朴希天招內乙用良汝矣身奉春奉代等乙 朴▣(勳)▣…▣奴乙放賣▣▣…之亦京居金▣…▣得營隷▣(院)受斜出使喚▣▣(爲白)如可 矣父生時 京人處負債 同私債價 同奴婢等乙 朴勳處放賣的只白置 眞僞 今日本文記相考分揀施行敎味白齊 同日 元告萬江朴希天更推 白等矣徒等 同奴婢所訟縣付文記乙 明日朝前 現納爲▣(白)▣…▣等彼良中 無文▣…▣齊 同月二十六日 元▣▣▣(告奴萬)江▣…▣更推 白等矣徒等 同奴婢縣付所持文記現納爲在果元告文記一度 隻文記一度等 皆以現納爲去乎相考決給敎味白齊 同日 元告萬江朴希天李得秋 更推白等元告萬江現納文記天啓五年七月日▣…▣金光繼金光實金光輔▣…▣單子禮安縣監着暑▣…▣題音內 文
 記相考 依例健准事 題送是齊 連次 單子內 城主前白活 惶恐仰讀明鑒 伏以矣徒等奴婢 在咸鏡道定平咸興洪原北靑端川吉州明川鏡城富寧等地 祖上傳來收貢爲如可 亂離後段置 甲▣…▣爲乎矣 漏落者?果哛不▣(喩)▣…▣奴漢伊收貢來現 不歸之後 私賤事以立法嚴明乙仍于 久未送人收貢爲有如乎 去年十月分沙? 始?送差奴萬江爲乎矣 遠地人奴婢乙 差奴亦不往來是可向入 乘其間隔 吉州居 許俊立德年奴稱差奴十五餘年 至中間收貢爲如可明川居故奴命▣(得)二所生▣…▣州居驛子朴應祥▣…▣乙 同▣(奴)婢等 不勝侵苦 役托內奴爲遣 此處逃奴等段 變姓名 詐稱孼弟是如爲遣金守元咸興班奴鶴守鶴奉等果 同謀僞造文記 其處奴婢多數盜賣是如爲遣果 所謂金守元段置矣徒祖上傳來婢▣…▣甲午年分 作罪逃亡▣…▣于咸鏡道矣徒等 孼弟稱云僞造文記其矣班奴等乙 多數盜賣爲臥乎所 其爲事狀 極爲
痛駭爲沙餘良 矣徒等 自曾祖觀察使累代獨子以 無他孼屬 衆所共知是去乙 叛奴等亦 何作無據之語 ▣▣盜賊之謀?爲臥乎所 奸狀尤爲▣…▣爲▣買賣時 元財主所居官斜出 自有法典是去乙上項叛奴等盜賣奴婢段 皆是非財主所居官 冒呈法外斜▣(出)是去等 行狀昭著罪?客誅是昆 奴婢所在等良中 差定漏落奴婢及橫奪奴婢等乙 一一還推次以文記持送計料爲乎▣…▣閪告之弊爲乎事 悶▣…▣由分揀文記取納相考 依法傳淮以送爲只爲單子是齊 後錄內 天啓五年七月 禮安縣立案 右立案爲傳淮事 連次 單子據 奴婢現付本文記取納相考爲乎矣萬曆二十四年丙申二月十五日 筆執 長女婿朴繪茂 證 異姓六寸大夫 宣武郞河陽▣…▣▣▣異姓六寸大夫 朝奉大夫 行水春縣監琴應壎 同姓七寸叔 宣武郞 安奇道察訪金堈 異姓七寸叔 通訓大夫行戶曹正郞李永道 各各着名 同生中和會本文內 父母主敎是 癸巳年分 一時下世爲遣 甲午年分繼祖母主又爲別世敎是去乙 三年後 始爲分衿 奴婢田畓 平均分執▣…▣婢己丑年花名▣▣分執爲乎矣 遠地奴婢乙 生産存沒未得詳知乙仍于別爲主張爲旀 依法亦爲分衿爲去乎 後次良中 別有所爲是去等 告官卞正事 文記是齊 後錄內 四男三妹是去等 各其名下衿付節該 長女婿 朴繪茂明川居奴順川孝養非等幾許是旀 次女▣…▣法當二所生婢春代等幾許 長子光繼明川居奴彦乞一所生奴施乃等幾許 次子光實衿 婢加之今一所生奴今同等幾許 次子光輔衿 婢先代二所生奴難守等幾許 季女婿李時明衿 婢先代一所生奴連孫等幾許 季子光岳▣(衿)▣…▣鶴奉 同奴一所生奴岩石 ▣…▣同奴一所生奴花生 婢隱今 奴順陽三連代一所生婢春今鶴連 婢先代奴鶴文二所生奴大奉 奴??奴今同二所生奴加之山 三所生奴加之孫萬連之一所生奴春婢己林幷二所生婢良加屎 婢字俠書加之?▣…▣婢奉代是如施行 他田民幷付文記是置有良厼憑考施行向事合行立案者 行縣監書押是乎等以 詳細相考 明正決給敎味白齊 同日 隻朴希天李得秋元告奴萬江更推 白等朴希天李得秋現納文記萬曆三十七年己▣(酉)五月二十一日字欠未 無書押 白?欠未 連次▣…▣呈所志內 買得粘連文▣…▣給爲只?爲?所志是旀 連▣▣▣(次買得)明文萬曆三十六年戊申五月十二日筆奴婢▣(主)幼學金賢{日+吉}
 着名 加墨 異姓四寸 郭協 同姓妹夫文五信出身金汝尙等 皆以着名 白文成置內 洪原李德允前 右明文爲臥乎事段 遠道奴婢乙 移買於近處▣…▣ 願以咸鏡道吉州▣…▣所生婢於等加屎亦 年少時 出來咸興地 娵夫居生爲如乎 同婢一所生奴奉春年三十一 二所生婢奉代年二十八 貳口良中 楮貨柒千張本 木綿參拾疋丁騮雌馬㱏匹 銀子捌兩等捧上爲遣 同奴婢前後所生幷以 永永放賣爲去乎 後▣(次)同生族中 相爭隅有去▣…▣爲乎事 連次 奴婢主▣…▣六日姓名不書 遠道奴婢 下脫 買於近處願 咸鏡道吉州居婢 於等加屎一所生奴奉春年三十一 二所生婢奉代年二十八 貳口良中 楮貨柒千張本 木綿參拾疋丁?七?禾?騮雌馬缶匹 銀子捌兩等 捧上爲遣洪原居李德▣(允)▣…▣所生幷以 永永放賣 自▣…▣財主以着名的只乎事是良厼相考施行敎書着名 掌隷院僉正主簿書押是旀 同日 證筆具姓名不書 只爲三人皆着名 財主金守隱亦 遠道奴婢乙 移買於近處願 咸鏡道吉州居奴於等加屎一所生奴奉春年三十一 二所生婢▣…▣▣(貳)口良中 楮貨柒千▣▣▣▣▣(張本木綿參)拾匹 丁禾七騮雌馬㱏匹 銀子捌兩等 捧上爲遣洪原
李德允亦中 前後所生幷以 永永放賣文記成置時 矣徒等 訂人以隨參各各着名的只乎事是良厼相考施行敎味白齊僉正主簿書押是旀 連次粘連立案以萬曆三十七年▣…▣掌隷院立案 右立案▣…▣及文記是乎等乙用良放賣眞僞 財主自筆證人等 進來取招爲置 本文取納相考爲乎矣萬曆二十八年庚子十一月初二日 奴婢金?守隱今加屎證????筆執 梁希民等着名 嫡三寸 金賢{日+吉}
 亦中許上文記節該吉州居婢於▣…▣春二所生奴奉代是奴施行 他奴婢幷付文記有置等以葉作粘連退給爲遣合行立案者 院僉正主簿署押是置有良厼 詳細相考決給敎味白齊 同月二十八日 元告奴萬江更推 白等元告元隻各各現納文傳淮丈良中 例爲同着名事是去▣…▣拒逆不着爲乎辭緣推考敎是臥乎在亦班奴?春亦 守元金守隱以變名 五同生和會明文班奴等乙 其奴婢樣以 僞造文記孝養幷所生婢加之加屎末子奴順?衿付是如吉州高德奉鏡城府斜出以 盜賣爲有去乙 同僞▣(造)▣…▣不着爲有旀守元亦 變名▣▣ 京官金賢{日+吉}
 處 嫡三寸稱云許上加于違端 故拒逆不着爲有置相考明卞決給敎味白齊 同日 元告奴萬江 隻李得秋朴希天 更推 白等矣徒等所訟奴婢文記 各一度還授爲去乎相考施行敎味白齊 同日 ▣…▣問更推 白等汝等徒▣…▣丈之有?題音是遣 不爲官署爲有旀 至於買得明文良中置 亦爲本文記據論不冬爲沙餘良粘連證筆侤音丈良中且以不署姓名 只着官署爲有臥乎所 果爲圖出判然爲乎辭緣詳細現告推考▣…▣亦所忘丈良中 不署▣(押)▣…▣明文各人侤音立案等粘連所志丈來爲署押 買得明文段 未及詳察 本文記乙不爲據論 爲有在果侤音證筆不書姓名 只着名成出事段明文內姓名書塡 故不書姓名爲有旀??元告現納▣…▣????法例是乎矣 迷劣之人以 誤察着名 迷劣之所爲是白乎旀元告現納文記內 傳淮決訟法當是乎矣 實爲士大夫四男三妹門中和會分派都文記的實咸鏡道奴婢乙 分衿付爲▣…▣?雜物財?本道本官??亦不書名爲▣…▣元告萬江 上年十一月分 來到前官主時 矣身十五日至囚禁爲有如加 兩邊文記取納相考 則傳淮文記以相訟不當是如 不得接訟 則同年十月內以 本文記持來 亦上京爲有如加 又爲傳淮文記相訟 至爲悶望爲▣…▣▣(年)分 朴判官主坐政之時 漢昌君傍差奴稱號人 同宅奴鶴守及所訟奴奉春等 同謀橫奪設計如加 未及見奪爲有旀元告奴萬江 亦金光繼宅奴稱云 傳淮文記以 橫奪之計 事甚不當是去等 眞僞詳細鑒當明正▣▣敎味白▣ 同日 隻李得秋朴希天▣▣▣▣(詰問更推) ▣▣(白等)汝等徒所訟文記本文記良中 所訟奴婢 前文券據論不冬爲有如乎 立案丈良中哛 金守許上奴婢是如爲乎旀斜出之法 買得後 其年三朔內成出事是去乙 翌年第十五朔沙 成出事 幷以現告推考敎是臥乎在亦金守隱亦 其嫡三寸處許上是如爲有去等矣身知不▣…▣第十五朔成出斜給事段 故父所爲 故矣身亦爲不知是置 眞僞間相考施行敎味白齊 同日 元告奴萬江詰問 更推 白等汝矣現納文記單子良中 題音哛▣▣(是遣)不書日字爲有旀都文記傳淮丈良中 只書咸鏡道奴婢哛姓名衿付是如縣錄爲有去等 必有▣▣是▣(去)等 眞僞乙 詳細現告亦在推考敎▣▣▣(是臥乎)在亦單子內 日字不書緣由段 本縣刑吏文書不審是旀咸鏡道奴婢哛分派都文記衿付事段 遠道奴婢私賤案奴婢 從從收貢不得乙仍于 奴矣上典四男三妹 各各葉丈衿付仍于咸鏡道奴▣…▣有置相考決給敎是白乎旀 前項所訟奴奉春明川
以 來在咸興府 往在庚戌年 號牌私賤成冊良中 奴矣上典光繼名下 主戶以懸錄爲有去等成冊亦爲相考處決是旀 前項所訟婢加之屎夫吉州許奉連交嫁▣▣▣去▣戌年分身故其矣生存本吉居在爲有去果 同婢加之加金同生繼元所生三口乙 班奴守元吉州居金汗龍處 盜賣爲有如加 現露盜賣文記矣身所持爲有如▣▣加之加屎三所生奴愛春 四所生奴愛男等三口乙 咸興衙前金應龍班奴鶴守亦 盜賣爲有如加 去甲辰年分 宅差奴劉敬牌子下來 就訟得決爲有去等守元明吉州盜賣之事乙 顯著僞造文記矣身持音爲有如乎 如是▣▣▣(買得稱)云 僞造顯然爲置相考明卞決給敎味白齊 同月二十九日 元告奴萬江 隻朴希天李得秋更推 白等汝等徒 所訟奴婢加之屎或婢於等加屎是如 各各元隻文記名字各異 同婢父母名及當身幷以名字各異與否乙 庇▣▣除良 詳細現告推考敎是臥乎在亦 奴萬江矣身段明川居宅奴豆應古里四所生婢孝春幷三所生婢加之加屎乙 於等加屎以 變名爲有旀李得秋朴希天矣徒等段 所訟婢於等加屎 亦爲孝春幷所生的實是乎矣 加之加屎以 變名爲有在果 同婢於等加屎所生奴奉春奉代等 當何事是乎矣 本府居在不喩洪原居生之人以 趂時來現不得 同婢孝春幷所生的實是白乎名字各異爲有置相考施行敎味白齊 同日 隻李得秋朴希天更推 白等矣徒等未盡情由元告萬江亦上年十一月分 所▣▣(訟奴)奉春家▣(歸)到 率四五人夜間突入同奴結薄後 言文花名記件持來爲有如乎 翌日眞書花名件記僞造 矣徒等乙 前官主敎是時 累累被囚爲有如加 接訟則矣徒斜出文記元告萬江傳淮文記故決訟不當 元隻皆以退訟於本文記持來相訟亦▣(爲)有如乎 ▣▣(今爲)傳淮文記以相訟 加于違端爲白沙余良 同文記傳淮丈良中 咸鏡道奴婢哛懸錄爲有臥乎所 僞造顯著是白置 眞僞乙良相考明卞決給敎味白齊 同日 元告奴萬江更推 白等矣身未盡情由班奴鶴守所訟婢奉代上典處買得稱云 家內仰役爲白如咸興府居隻李得秋故父德允果 ?谷居奴婢果 相換是如文以成爲白如加 同鶴守亦 逃亡歸到于平安道江界地居生爲如身故?千李德允亦 奴守元果同謀 同守元乙守隱以變名 京居金賢{日+吉}
 當買得是如 圖出掌隷院斜給爲臥乎所 僞造判然爲白沙余良 守元僞造盜賣文記矣身歸到于明吉州不持爲有置 同僞造盜賣文記相考斯速決給敎味白齊 同日 李得秋朴希天更推 白等汝矣招內 官紙筒上元告上年十一月持來文記取考 則慶尙道禮安縣監傳淮文記內 奴奉春奉代名錄的實爲有去等 言文件記是如 或曰眞書僞造文記是如爲辭緣現告推考敎是臥乎在亦 言文花名段 不入紙筒 眞書花名文記紙筒上的實是置 眞僞相考施行敎味白齊 同日 元告奴萬江 隻李得秋朴希天更推 白等矣徒等所訟奴婢乙 別無更問之段 依他依官式爲去乎 斯速決給敎味白齊爲等如 兩邊文記及各人招辭是置有亦相考爲乎矣朴希天所納掌隷院所志內 只爲踏印 不爲着署爲旀 買得文記內 本文記幷給與否段 元不據論爲有乎矣 立案未端良中 財主金守隱嫡三寸金賢{日+吉}
 亦中許上文記內 奴婢幷付是如爲臥乎所 大違法例爲旀 證筆捧招處 不書其名 只爲着名爲有臥乎所 亦爲違法爲旀 凡文記斜出 百日內告狀 期年內斜出 乃是法例是去乙 此則過十五朔然後 矇矓斜出爲有臥乎所 尤爲違格違齊 大槪奴婢許上爲遣金守元稱名者 以其元告奴萬江 上典蘖屬以變名守隱 僞造文記奉春班奴等乙 盜賣於吉州高德奉爲有如加 僞造文記至現爲有臥乎所金守
隱盜賣之狀 明白無疑爲沙余良 元告奴萬江所納傳淮文記段 筆執長女婿朴繪茂等着名 末子光岳衿付和會文記的實爲乎等以 上項訴訟奴婢等乙 元告奴萬江亦中 從文券決給爲遣 合行立案者
   兼府尹行判官[着名]
   奴奉春年四十八己卯生
   婢奉代年四十五壬午生
   同婢所生一所生奴德生年十九▣
   (官印, 方8㎝ 三七個)

…(원문 결락)… 실(實) 셋째 아들 …(원문 결락)…등이 모두 …(원문 결락)… 합의하여 재산을 나눈 도문기(都文記) …(원문 결락)… 광악(光岳)1) 몫으로 함경도 명천(明川)에 사는 노 효춘(孝春)의 양인인 처의 2소생 노 가지가시(加之加屎)의 1소생 노 봉춘(奉春)과 노 봉대(奉代) 2구를 몫으로 주었거늘, 위 노비를 전연 상관이 없는 김현길(金賢{日+吉})에게 지난번 박희천(朴希天)의 아비 박훈(朴勳)이 매입하였습니다. 그 집은 현재 □ 뒤에 있습니다. …(원문 결락)… 분명하게 밝혀 결급해 주십시오. …(원문 결락)… 등 노 만강(萬江)의 초사(招辭)2)에 의거하여 노 봉춘과 봉대 등을 매입하게 근본원인을 추고하셨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본부에 사는 이득추(李得秋)에게서 매입한 지 거의 18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되었습니다. 동 노비를 매입하게 된 본의를 금일 이득추가 질문을 받은 뒤에 가지고 온 문기를 살펴 처결하소서.” 같은 날 이득추(나이 40세)가 아뢰었다. “박희천의 초사에 의거하여 저의 종 봉춘과 봉대 등을 박훈(朴勳) …(원문 결락)… 종을 방매(放賣) …(원문 결락)… 서울에 사는 김(金) …(원문 결락)… 영예(營隷) …(원문 결락)… 입안을 받아 부리고 있다가 저의 아버지 생전에 서울 사람에게 빚을 졌는데, 동 사채값에 대해 동 노비 등을 박훈에게 방매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진위는 금일 본문기를 상고하여 처리해 주십시오.” 같은 날 원고 노 만강과 피고 박희천을 다시 추고하니 아뢰었다. “저희들이 동 노비에 대해 소송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문기를 내일 아침 전에 현납(現納)하겠습니다. …(원문 결락)… 등 저들에게 글이 없는 …(원문 결락)… 해 주십시오.” 같은 달 26일 원 …(원문 결락)… [고 노 만강과 피고 박희천]3)을 다시 추고하니 아뢰었다. “저희들이 동 노비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는 문기를 가지고 와서 현납합니다. 원고 문기 1통, 피고 문기 1통 등을 모두 현납하였으니 살펴 결급해 주십시오.” 같은 날 원고 노 만강과 피고 박희천, 이득추를 다시 추고하니 아뢰었다. “원고 노 만강이 현납한 문기 가운데 ‘천계(天啓) 5년(1625년, 인조 3) 7월 일 …(원문 결락)… 김광계(金光繼)4), 김광실(金光實)5), 김광보(金光輔)6) …(원문 결락)… 단자(單子)7)에 의거하여 예안 현감(禮安縣監)이 착명착압 …(원문 결락)…■…■ 제음(題音)에 「문기를 상고하여 예에 따라 확실하게 할 것」이라고 써서 보냈다. 이어 올린 단자에 「성주께 올리는 발괄[白活].8) 황공하게 우러러 밝으신 성주님께 아룁니다. 저희들의 노비가 함경도 정평(定平)․함흥(咸興), 홍원(洪原), 북청(北靑), 단천(端川), 길주(吉州), 명천(明川), 경성(鏡城), 부령(富寧) 등지에 있는데 조상에게서 전해 받아 공물을 받다가 난리 이후에도 갑(甲) …(원문 결락)… 하되, 누락된 자 뿐만 아니라 …(원문 결락)… 노 한이(漢伊)가 거둔 공물을 와서 바치고 돌아가지 않았는데, 그 뒤에 사천(私賤)에 관한 일로 법을 제정하여 엄격하게 밝혔기 때문에 오래도록 사람을 보내 공물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10월에서야 비로소 차노(差奴) 만강(萬江)을 보냈던 것입니다. 먼 지역에 사는 노비들은 차노가 오래도록 왕래하지 못한다고 여겨 그 틈을 타고 길주(吉州)에 사는 허준(許俊)이 노 덕년(德年)을 세워 차노라고 부른 지 15여 년에 이르렀으며 중간에 공물을 거두었습니다. 명천(明川)에 사는 노 명득(命得)의 2소생 …(원문 결락)… 주(州)에 사는 역자(驛子) 박응상(朴應祥) …(원문 결락)… 을 동 노비들이 그들의 침탈로 인해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내노(內奴)9)로 투탁하였습니다. 이곳에 도망한 노비는 성명을 바꾸고 서얼 아우라고 사칭하고 있습니다. 김수원(金守元)은 함흥에 사는 반노(班奴) 학수(鶴守)․학봉(鶴奉) 등과 함께 문기를 위조할 것을 모의하고 그곳의 노비 여러 명을 훔쳐 팔았습니다. 이른바 김수원도 저희들에 조상에게서 전해 받은 비 …(원문 결락)… 갑오년에 죄를 짓고 …(원문 결락)… 함경도로 도망쳐 저희들의 서얼 아우라고 칭하고 위조한 문기를 가지고 그의 반노들을 다수 훔쳐 팔았으니, 그가 한 짓은 너무도 해괴합니다. 저희들은 증조인 관찰사공(觀察使公) 이후로 여러 대를 독자로 내려와 다른 서얼 친족이 없다는 것은 사람들이 다들 아는 바입니다. 그런데 주인을 배반한 종들이 어찌 근거 없는 말을 하여 도적의 모의를 …(원문 결락)… 그들의 간악함이 더욱 …(원문 결락)… 매매할 때 원래의 재주가 사는 곳의 수령이 입안을 내 주는 것은 본래 법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주인을 배반한 종들이 노비를 도둑질해 판 것은 모두 재주가 사는 곳의 수령이 아니라면 소지를 올린 것에 대해 법을 어기고 입안을 내 준 것이니, 그들의 행적이 분명하게 드러났으니, 그 죄는 죽음으로 다스려야 하고, 노비가 있는 곳에서 누락된 노비와 멋대로 빼앗은 노비를 차정(差定)한 것들을 하나하나 도로 추심하기 위해 본문기를 보낼 계획이었습니다. …(원문 결락)… 함께 고하는 이유인데 …(원문 결락)… 본문기를 가져다가 바치고 살피시고 법에 따라 전준(傳淮)10)하여 보내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후록한 내용에 「천계 5년 7월 예안현 입안. 이 입안은 전준에 관한 일이다. 점련한 단자에 의거하여 노비가 기재된 본문기를 가져다 바쳤기에 상고하니, 만력(萬曆)11) 24년(1596년, 선조 29) 병신 2월 15일 필집(筆執) 장녀서 박회무(朴繪茂)12), 증인 이성6촌대부 선무랑(宣武郞)13) 하양(河陽) …(원문 결락)… 이성 6촌대부 조봉대부(朝奉大夫)14) 행 영춘 현감(永春縣監) 금응훈(琴應壎)15), 동성 7촌숙 선무랑 안기도 찰방(安奇道察訪) 김강(金堈), 이성7촌숙 통훈대부(通訓大夫)16) 행 호조정랑 이영도(李永道)가 각각 착명한 동생(同生) 화회본문(和會本文)에 (부모님께서 계사년(1593년, 선조 26)에 일시에 돌아가셨고, 갑오년(1594년, 선조 27)에 계조모님께서 또 별세하셨거늘 3년 뒤에야 비로소 노비와 전답을 똑같이 나누었다. …(원문 결락)… 노비는 기축년에 이름을 적고 …(원문 결락)… 나누어 가지되, 먼 지역의 노비들은 생산(生産)과 생사 여부를 상세하기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별도로 주관할 사람을 세우고 법에 따라 몫을 나누니, 후일에 이의가 있는 사람이 있으면 관에 고하여 바로잡을 일이다.) 하였다. 그 후록 안에 (4남3녀인데 각각 자신들의 이름 아래 몫을 기재한 내용의 대강이다. 장녀서 박회무 몫: 명천(明川)에 사는 노 순천(順川), 비 효양비(孝養非) 등 몇 명, 차녀 …(원문 결락)… 법당(法當) 2소생비 춘대(春代) 등 몇 명, 장자 광계(光繼) 몫: 명천에 사는 노 언걸(彦乞) 1소생노 시나(施乃) 등 몇 명, 차자 광실(光實) 몫: 비 가지금(加之今) 1소생 노 금동(今同) 등 몇 명, 차자 광보(光輔) 몫: 비 선대(先代) 2소생노 난수(難守) 등 몇 명, 계녀서 이시명(李時明) 몫: 비 선대(先代) 1소생 노 연손(連孫) 등 몇 명, 계자 광악(光岳) 몫: …(원문 결락)… 학봉(鶴奉), 동노의 1소생노 암석(岩石) …(원문 결락)… 동노의 1소생 노 화생(花生), 비 은금(隱今), 노 순양(順陽), 노 삼연대(三連代)의 1소생 비 춘금(春今), 노 학연(鶴連), 비 선대(先代), 노 학문(鶴文) 2소생 노 대봉(大奉), 노 금동(今同) 2소생 노 가지산(加之山), 3소생 노 가지손(加之孫), 비 만연지(萬連之)의 1소생 노 춘(春), 비 기림(己林)의 병산(幷産) 2소생 비 양가시(良加屎). 비(婢) 자를 끼어 썼다. …(원문 결락)… 비 춘대(奉代)이다. 다른 토지와 노비도 함께 기재되어 있는 문기이므로 빙고하여 시행할 일이다. 이에 마땅히 입안한다. 행 현감이 착압하였기 때문에 상세하게 상고하여 공명정대하게 결급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같은 날 피고 박희천과 이득춘, 원고 노 만강을 다시 추고하니 아뢰었다. “피고 박희천과 이득추 등이 현납한 문기에 ‘만력 37년(1609년, 광해 1) 기유 5월 21일 글자가 빠지고 착압이 없고 백□(白□)가 빠졌다. 연달아 …(원문 결락)… 올린 소지에 「매입하여 점련(粘連)한 문기 …(원문 결락)…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연달아 …(원문 결락)…[매득한]17) 명문에 「만력 36년(1608년, 선조 41) 무신 5월 12일 필집 노비주 유학 김현길(金賢{日+吉})이 착명하고 먹을 더하였다. 이성4촌 곽협(郭協), 동성 매부 문오신(文五信), 출신(出身) 김여상(金汝尙) 등이 모두 착명하고 관인을 받지 않고 작성한 백문(白文)에 (홍원(洪原)에 사는 이덕윤(李德允)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을 작성하는 일을 다음과 같다. 먼 지역에 사는 노비를 가가까운 곳의 노비로 이매(移買) …(원문 결락)… 부디 함경도 길주(吉州) …(원문 결락)… 소생 비 어등가시(於等加屎)가 나이 어렸을 때 함경도로 와서 남편을 만나 살았는데, 동비의 1소생 노 봉춘(奉春) 31세, 2소생 비 봉대(奉代) 28세 등 2구에 대해 저화 7천장, 목면 30필, 정류(丁騮) 암컷 말 1필, 은자 8냥을 받고 동 노비의 전후 소생을 모두 영영 방매하니, 후일에 동생 친족 가운데에서 다투어 이의를 제기하는 자가 있거든 …(원문 결락)…할 일이다.)라고 되어 있다. 점련한 노비주 …(원문 결락)… 6일 성명을 쓰지 않았다. 먼 곳의 노비를 근처에서 이매하니, 부디 함경도 길주(吉州)에 사는 비 어등가시의 1소생 노 봉춘 31세, 2소생 비 봉대 28세 등 2구를 저화(楮貨) 7천장, 목면(木綿) 30필, 정류(丁騮) 암컷 말 1필, 은자 8냥 등을 받고 홍원에 사는 이덕윤(李德允)에게 …(원문 결락)… 모두 영영 방매하니, …(원문 결락)… 재주가 착명한 것이 틀림없으니, 살펴 시행할 일입니다. 착명하고 장예원 첨정(掌隷院僉正)과 주부(主簿)가 착압하였다. 같은 날 증인과 필집이 성명을 쓰지 않고 다만 세 사람이 모두 착명하였다. (재주 김수은(金守隱)이 먼 곳에 사는 노비를 근처에서 이매하니 부디 함경도 길주에 사는 비 어등가시의 1소생 노 봉춘 31세, 2소생 비 …(원문 결락)…[봉대 28세] 등 2구를 저화(楮貨) 7천장 …(원문 결락)…[목면(木綿) 30]필, 정화칠류(丁禾七騮) 암컷 말 1필, 은자 8냥 등을 받고 홍원에 사는 이덕윤에게 전후 소생을 모두 영영 방매하는 문기를 작성할 때 저희들이 증인으로 참석하여 각각 착명한 것이 틀림없으니 상고하여 시행하실 일입니다.) 장예원 첨정과 주부가 착압하였다. 점련한 입안에 (만력 37년 …(원문 결락)… 장예원 입안. 이 입안은 …(원문 결락)… 문기이기 때문에 방매한 것의 진위는 재주가 직접 썼으며, 증인들을 나오게 하여 공초를 받았고 본문기를 가져다 바치게 하여 상고하였다. 만력 28년(1608년, 선조 41) 경자 11월 2일 노비 김수은(金守隱), 금가시(今加屎), 증인 …(원문 결락)… 필집 양희민(梁希民) 등이 착명하고 적3촌(嫡三寸) 김현길(金賢{日+吉})에게 바친 문기의 대강이다. 길주에 사는 비 어(於) …(원문 결락)… 춘(春) 2소생 노 봉대이다. 다른 노비도 함께 문기에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엽질[葉作]18)을 점련하여 되돌려 주고 이에 입안한다. 장예원 첨정과 주ㅜ가 착압하였다.)고 되어 있으니, 상세하게 살펴 결급해 주십시오. 같은 달 28일 원고 노 만강을 다시 추고하니 아뢰었다. “원고와 피고가 각각 현납한 전준(傳淮)에 관례적으로 함께 착명하였으니 …(원문 결락)… 거역하고 착명하지 않은 사연을 추고하실 일입니다. 반노(班奴) □춘(□春)이 수원(守元)은 김수은(金守隱)이 바꾼 이름으로 다섯 동생이 화회한 명문에 저의 반노비 등을 그의 노비인양 문기를 위조하였습니다. 비 효양(孝養)의 병산(幷産) 소생 비 가지가시(加之加屎)는 말자 노 순□(順□) 몫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길주에 사는 고덕봉(高德奉)에게 경성부(鏡城府)에서 관인을 찍고 사급(斜給)한 것을 가지고 도둑질해 팔았거늘 동 위조(僞造) …(원문 결락)… 착명하지 않았으며, 노 수원도 이름을 …(원문 결락)… 서울의 관리 김현길(金賢{日+吉})에게는 적3촌에게 바친 것이 더욱 잘못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거역하고 착명하지 않았으니, 살펴 분명하게 밝혀 결급해 주십시오.” 같은 날 원고 노 만강, 피고 이득추와 박희천을 다시 추고하니 아뢰었다. “저희들이 소송한 노비문기 각 1통을 도로 드리니 살펴 시행하실 일입니다.” 같은 날 …(원문 결락)… 다시 추고하니 아뢰었다. “저희들이 …(원문 결락)… 제음(題音)이 없을 뿐만 아니라 관의 착압도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매매명문에도 본문기를 거론하지 않았으며 증인과 필집의 다짐[侤音]에도 서명하지 않고 다만 관의 착압만을 하였습니다. 과연 꾸며 낸 것이 분명한 사연을 상세하게 와서 고하라고 추고 …(원문 결락)… 불망기(不忘記)에도 착압하지 않고 …(원문 결락)… 명문과 각각의 다짐, 입안 등을 점련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소지를 올린 사람이 와서 착압하였는데 매매명문을 미처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본문기를 거론하지 않았거니와 다짐을 작성한 증인과 필집이 성명을 쓰지 않고 착명만 하여 문서를 작성해 낸 일은 명문 가운데 성명을 썼기 때문에 성명을 쓰지 않았다고 하였으며, 원고가 와서 바친 …(원문 결락)… 법례입니다. 미욱하고 용렬한 사람으로 잘못 살펴 착명한 점은 미욱하고 용렬해서 한 일입니다. 원고가 현납한 문기에 전준 결송은 법에 있어 마땅한 것이니, 실로 사대부의 4남 3녀가 문중에서 합의하여 나누어 가진 도문기가 틀림없다면 함경도의 노비를 나누어 기재 …(원문 결락)… 잡물(雜物) …(원문 결락)… 본도의 수령이 착명하지 않고 …(원문 결락)… 원고 노 만강이 작년 11월 전 수령에게 왔을 때 본인이 15일에 갇혔다가 양쪽의 문기를 가져다 바치게 하여 살펴보니, 전준문기로 소송한 것은 타당하지 않아 소송을 계속할 수 없으므로 같은 해 10월 안으로 본문기를 가지고 오라고 하여 상경했는데 또 전준문기를 가지고 소송을 하니 너무도 민망합니다. …(원문 결락)… 년에 박 판관(朴判官)께서 와서 정무를 볼主 때 한창군(漢昌君)19)옆 차노라고 하는 사람이 그 집 노 학수(鶴守)와 소송 노인 봉춘(奉春) 등이 함께 침탈할 것을 모의하다가 미처 빼앗지 못했으며, 원고 노 만강이 김광계(金光繼) 댁의 노라고 하였습니다. 전준문기 때문에 멋대로 빼앗을 계획을 하니 몹시 부당한 일입니다. 진휘를 상세하게 살펴 공명정대하게 처리해 주실 일입니다.” 같은 날 피고 이득추과 박희춘 …(원문 결락)… 아뢰었다. “저희들이 소송한 문기와 본문기에서 소송노비를 전 문기에서 거론하지 않았으니, 입안에서만 김수은이 바친 노비라고 한 것에 대해 관인을 찍어 내려주는 법은 매득한 뒤에 그 해 3달 안으로 작성해 주는 일입니다. 그런데 다음해 15달이 지나서야 문서를 작성해 준 일을 아울러 와서 고한다고 하니 추고하실 일입니다. 김수은이 그의 적3촌에게 바쳤다고 하는데 제가 알지 못하고 …(원문 결락)… 15달 만에 사급입안(斜給立案)을 작성해 낸 일은 돌아가신 부친이 한 일이기 때문에 제가 알지 못합니다. 진위를 살펴 시행하실 일입니다.” 같은 날 원고 노 노강을 힐문하여 다시 추문하니 아뢰었다. 제가 현납한 문기 가운데 단자에 제음 뿐이고 날짜를 쓰지 않았으며, 도문기 전준 가운데에도 다만 함경도 노비만 성명을 기재하였습니다. 반드시 …(원문 결락)… 있거든, 진위를 상세하게 나와 고하라고 추고하였습니다. 단자에 날짜를 쓰지 않은 연유는 본현의 형리(刑吏)가 문서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것이며, 함경도 노비만 나누어 도문기에 몫을 기재한 것은 먼 곳의 노비와 사천안(私賤案) 노비의 경우 종종 공물을 거두지 못하기 때문에 저의 상전인 4남 3녀가 각각 엽질의 문서에 몫을 기재하였습니다. 함경도 노 …(원문 결락)… 살펴 변별하여 결급해 주실 일입니다. 앞의 소송 노 봉춘은 명천 사람으로 함흥부(咸興府)에 와 거주하였습니다. 지난 경술년 호패사천성책(號牌私賤成冊)에 저의 상전인 광계의 이름 아래에 주호(主戶)라고 기록하였으니, 동 성책도 상고하여 처결하실 것입니다. 앞의 소송 비인 가지시(加之屎)의 남편은 길주(吉州)에 사는 허봉련(許奉連)이 혼인을 맺고 …(원문 결락)… 지난 갑술년(甲戌年)에 죽었는데 그는 본래 길주에서 거주하였거니와 동 비 가지(加之)와 가금(加金), 동생 비 계원(繼元)의 소생 3구를 반노 수원(守元)이 길주에 사는 김한룡(金汗龍)에게 도매(盜賣)하였다가 탄로가 나서 도매한 문기를 제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지가시의 3소생 노 애춘(愛春), 4소생 노 애남(愛男) 등 3구를 함흥부의 아전 김응룡(金應龍)에게 반노 학수(鶴守)가 도매하였다가 지난 갑진년(甲辰年)에 댁의 차노(差奴) 유경(劉敬)이 배자(牌子)20)를 가지고 내려와 소송을 하여 승소하였습니다. 노 수원이 길주에서 도매한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낸 문기를 제가 지니고 있었는데 이처럼 …(원문 결락)… [매입한 것이라고] 하니 위조가 분명하게 드러난 점을 살펴 분명하게 밝혀 결급하실 일입니다.” 같은 달 29일 원고 노 만강, 피고 박희천과 이득추를 다시 추고하니 아뢰었다. “저희들이 소송한 노비 가지시(加之屎)가 혹은 비 어등가시(於等加屎)라고 하여 각각의 원고와 피고의 문기에 이름이 다르니, 동 비의 부모 이름과 본인이 모두 이름이 다른지의 여부를 …(원문 결락)… 상세하게 와서 고하라고 추고하셨습니다. 노 만강은 명천에 사는 댁의 노 두응고리(豆應古里)의 4소생 비 효춘(孝春)의 병산 3소생 비 가지가시(加之加屎)를 어등가시(於等加屎)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이득추와 박희천 등은 소송 비 어등가시가 효춘의 병산 소생이 틀림없고 가지가시로 이름을 바꾼 것이며 동 비 어등가시의 소생 노 봉춘과 동대 등은 마땅히 어떤 일로 본부에 거주하게 되었는지 모르며, 홍원(洪原)에 사는 사람으로 제 때에 관에 나오지 못했지만 동 비 효춘의 병산 소생이 확실하며, 이름이 다른 점은 살펴 시행하실 일입니다.” 같은 날 피고 이득추와 박희천을 다시 추고하니 아뢰었다. “저희들이 미진한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원고 만강이 작년 11월에 소송한 노 봉춘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4, 5명을 거느리고 한밤중에 돌입하여 동 노를 결박한 뒤에 노의 이름이 적힌 문서를 가지고 왔다가 다음날 노의 이름을 직접 쓴 문기를 위조하였습니다. 저희들을 전 수령께서 여러차례 가두었다가 계속되는 소송에서는 저희들이 관에서 받은 문기와 원고 만강이 전준한 문기로는 소송이 부당하였으므로 원고와 피고에게 모두 소송을 물리치고 본문기를 가지고 와서 소송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준문기로 소송하는 것은 더욱 잘못된 것입니다. 동 전준문기에 함경도 노비만 기록하였으니 위조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진위를 살펴 결급하실 일입니다.” 같은 날 원고 노 만강을 다시 추고하니 아뢰었다. “저의 미진한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반노 학수가 소송한 비 봉대의 상전에게 매입한 것을 집안에서 부리던 비라고 하다가 함흥부에 사는 피고 이득추의 죽은 아비 덕윤(德允)이 □곡(□谷)에 사는 노비와 서로 바꾼 것이라고 하며 백문을 작성하였다가 동 학수가 도망하여 평안도 강계(江界)에 살다가 죽었습니다. 이덕윤이 노 수원과 함께 모의하여 동 수원을 수은(守隱)이라 이름을 고치고 서울에 사는 김현길(金賢{日+吉})이 매득한 것이라고 하여 장예원에서 입안을 받기를 계획하였습니다. 위조가 분명하여 수원이 위조한 도매문기를 제가 명주와 길주로 돌아갈 때 가지고 가지 않았으니, 동 위조 도매문기를 살펴 ㅈ속히 결급하여 주실 일입니다.” 같은 날 이득추와 박희천을 다시 추고하니 아뢰었다. “저희들의 공초 안에 관지통(官紙筒) 위 원고가 작년 11월에 가지고 온 문기를 가져다 살펴보면 경상도 예안 현감이 전준한 문기에 노 봉춘과 비 봉대의 이름이 기록된 것이 틀림없으니 발기[件記]이며, 혹 직접 쓴 위조문서라고 하는 사연을 관에 나와 고하라고 추고하셨습니다. 노비의 이름을 쓴 것은 지통에 넣지 않고, 직접 노비의 이름을 쓴 것만 지통에 넣은 것이 확실하니 진위를 시행하여 시행하실 일입니다.” 같은 날 원고 노 만강, 척 이득추와 박희천을 다시 추고하니 아뢰었다. “저희들이 소송한 노비에 대해 별도로 다시 질문이 없으니, 다른 예와 관의 규정에 따를 것입니다. 속히 결급하여 주실 일입니다.” 이런 모든 양쪽의 문기와 각각의 초사가 있기에 살펴보았는데, 피고 박희천이 납부한 장예원에 올린 소지에는 관인만 찍혀 있고 착명착압하지 않았으며, 매득문기에는 본문기를 함께 주는 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애초에 거론하지 않고 입안 끝에서 재주 김주은이 적3촌 김현길에게 바친다는 문기 안에 노비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법례와 크게 어긋하는 것이다. 무릇 문기에 대해 입안을 발급할 때에는 백일 안에 소지를 올리고 1년 안에 입안을 받는 것이 법례이거늘, 이번 사안은 15살이 지난 뒤에야 두루뭉술하게 입안을 받았으니 격식에 너무도 어긋났다. 대개 노비를 상전에게 바치고 김수원이라고 이름을 쓴 것은 원고 노 만강이 상전의 서얼 친족이 수은으로 이름을 바꾸고 문기를 위조하여 노 봉춘과 반노비 등을 길주에 사는 고덕봉(高德奉)에게 도매하였으니, 문기를 위조한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김수은이 도매한 정상이 명백하여 의심이 없고, 원고인 노 만강이 제출한 전준문기는 필집이 장녀서인 박회무 등이 착명하고 말자인 광악(光岳)의 몫으로 기재된 화회문기가 틀립없기 때문에 위의 소송 노비 등을 원고인 노 만강에게 문권에 따라 결급하고 이에 입안한다.
겸부윤 행판관【착명】
   노 봉춘 48세, 기묘생(己卯生)
   비 봉대 45세, 임오생(壬午生)
   동비의 소생 1소생 노 덕생(德生) 19세

[주석]

1) 광악(光岳)
광악(光岳):김광악(金光岳, 1591~1648)을 말한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이직(以直), 호는 야일재(野逸齋)로 김해(金垓)의 아들이다. 1618년 생원에 합격하였으며, 병자호란 때 형 김광계(金光繼)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2) 초사(招辭)
관계인에 대한 관에서의 추고(推考)에 대한 진술.[정의:특수용어용례사전.]
3) 고 노 만강과 피고 박희천
입안의 본문에 같은 내용이 반복되므로 유추하여 번역하였다.
4) 김광계(金光繼)
김광계(金光繼):1580~1646.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이지(以志), 호는 매원(梅園)으로 김해(金垓)의 아들이다. 정묘호란(丁卯胡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5) 김광실(金光實)
김광실(金光實):1585~1651.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이건(以建), 호는 계애(溪厓)로 김해(金垓)의 아들이다. 저서로는 󰡔계애유고(溪厓遺稿)󰡕가 전한다.
6) 김광보(金光輔)
김광보(金光輔):1587~1634.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이도(以道), 호는 용문(龍門)으로 김해(金垓)의 아들이다. 1715년 생원에 합격하였으며, 사복시 정(司僕寺正)에 증직되었다.
7) 단자(單子)
소지(所志)의 일종으로, 사대부(士大夫)가 친히 관사(官司)에 올리는 소장이다.
8) 발괄[白活]
관청에 대하여 억울한 사정을 글이나 말로 하소연하는 일. =소지(所志).[정의:특수용어용례사전.]
9) 내노(內奴)
내수사(內需司)에 소속된 노비.[정의:특수용어용례사전.]
10) 전준(傳淮)
교지(敎旨)에 의하여 상으로 내린 관노비나 토지의 세전(世傳)함을 인준하는 것.[정의:특수용어용례사전.]
11) 만력(萬曆)
중국 명(明)나라의 14대 황제인 신종(神宗, 1563~1620)의 연호이다.
12) 박회무(朴繪茂)
1575∼미상.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중식(仲植), 호는 육우당(六友堂)·숭정야로(崇禎野老)로 의금부 도사 녹(漉)의 아들이다.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서 왕이 강화도로 몽진하자 의금부 도사로 왕을 호종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출정하였으나 이미 화의가 성립되어, 통곡하며 되돌아와 두문불출하였다. 영천의 산천서원(山泉書院)에 제향되었다.
13) 선무랑(宣務郞)
조선시대 종6품 문관(文官)의 위계(位階).
14) 조봉대부(朝奉大夫)
조선시대 종4품 문관의 위계.
15) 금응훈(琴應壎)
1540∼1616.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훈지(壎之), 호는 면진재(勉進齋). 아버지는 훈도(訓導) 재(梓)이고 어머니는 김효로(金孝盧)의 딸이다. 1570년(선조 3) 사마시에 합격, 1594년 학행에 의하여 영의정 유성룡 등의 천거를 받아 종묘서 부봉사(宗廟署副奉事)에 제수되었다. 영춘현감과 양천현감 등을 역임하고 1601년 의흥현감에 제수되었으나, 유성룡과 조목의 요청에 따라 사직하고 『퇴계선생문집』 간행실무자로 참여하였다.
16) 통훈대부(通訓大夫)
조선시대 정3품 문관 당하관의 위계.
17) 매득한
입안의 본문에 같은 내용이 반복되므로 유추하여 번역하였다.
18) 엽질[葉作]
관청 문서의 기재부.[정의:이두용례사전.]
19) 한창군(漢昌君)
조유선(趙裕善, 1599∼미상)을 말한다. 자는 이숙(貽叔)이며,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부친은 조국필(趙國弼)이다. 모친은 광해군의 장인 유자신(柳自新)의 딸이다. 1616년(광해군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617년(광해 9) 홍문관 정자, 수찬, 저작, 박사 등 홍문관의 요직을 두루 거친 뒤, 1618년(광해 10) 세자시강원 겸사서를 지냈다. 1621년(광해 13) 홍문관 수찬으로 있으면서 홍문관의 규례를 따라 직접 대면하여 교대하는 절차를 어긴 죄로 파직을 명령 받았다.
20) 배자(牌子)
배지(牌旨)라고도 하는데 궁방(宮房)에서 그 장토(庄土), 어장(漁場), 염분(鹽盆) 기타에서 수입과 이권을 유지, 확보하는데 필요한 일을 위임할 때 위임받는 사람에게 발급하는 위임장.[정의:이두용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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