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자료센터

  • Open API
  • 사이트맵
  • 이용안내
  • 열린마당

한국고문서자료관

통합검색

  • 상세검색
  • 문자입력기

디렉토리분류

닫기

1480년 김효로(金孝盧) 예조계후입안(禮曹繼後立案)    
G002+AKS+KSM-XD.1480.1111-20101008.B001a_001_00087_XXX
 
분류 고문서-증빙류-입후성문 / 사회-가족·친족-양자문서
작성주체 발급: 예조(禮曹) /수취: 황씨(黃氏)
작성지역 한성부    /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480년 / 성화16년 ▣(8)월 초2   
형태사항 크기: 85.8×69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인장서명 11개(적색, 정방형)
서명(개) 서압:6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 현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비고 영인정보『조선전기고문서집성-15세기편』(정구복 외 편, 국사편찬위원회, 1997)정서본『경북지방고문서집성』(이수건 편, 영남대학교 출판부, 1981)『고문서집성 1: 광산김씨 오천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조선전기고문서집성-15세기편』(정구복 외 편, 국사편찬위원회, 1997)『朝鮮初期 古文書 吏讀文 譯註』(朴盛鍾,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본 번역문은 2014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1 / 4. 입안(계후·노비·토지) / 계후입안1 / 13 ~쪽
 
1480년 김효지 처 황씨가 신청한 입양을 허락해주는 문서
   1480년김효지(金孝之)의 처 황씨는 죽은 남편의 소망에 따라 형의 손자를 입양하고자 이를 청원하는 문서를 예조에 올렸다. 예조에서는 이 입양에 대해 양가가 모두 합의한 것인지를 조사한 후 이를 허락하는 문서를 황씨에게 내려주었다. 조선시대의 입양제도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문서이나, 손자뻘 되는 친척을 아들로 입양한다는 점에서 조선후기의 가족질서와는 배치되는 풍속을 보여주고 있다.
 
1480년(성종11)金孝盧를 종조부 金孝之의 繼後子로 인정한다는 예조의 공증 문서.
내용 및 특징
   成化16년(1480) 8월 초2일 예조에서는 金孝盧를 종조부 金孝之의 繼後子로 인정한다는 立案을 내렸다. 이는 죽은 김효지의 처 黃氏가 올린 所志로 시작된 행정절차이다. 황씨는 처첩 모두에게서 자식을 낳지 못한 채 사망한 남편의 바람에 따라 질자인 金淮의 둘째 아들 김효로를 계후자로 삼고자 한다는 뜻으로 소지를 올렸다. 김효로의 어머니 盧氏도 같은 내용으로 소지를 올렸는데, 김회 역시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라 그 처가 이 문서를 작성하였다. 예조에서는 이들이 살고 있는 慶尙道觀察使에게 사실조사를 요청하였고, 경상도관찰사는 다시 관할 지방관인 安東都護府使에게 조사를 명하였다. 이에 따라 안동도호부사는 사망한 생가, 양가의 父 대신 母에게 公緘을 보내 答通을 받았다. 그 내용은 앞의 소지와 다를 바가 없어, 이러한 내용으로 관찰사에게 牒呈을 올렸다. 관찰사는 다시 첩정을 粘連한 關文을 예조에 올렸다. 예조에서는 성종에게 啓를 올려 윤허를 얻었다. 右副承旨盧公弼이 담당하여 성화16년 3월 25일에 왕의 허락을 얻었다. 이에 예조에서 몇 달 후 繼後立案을 황씨에게 成給한 것이다.
보물 제1018-3호 광산김씨예안파종가소장고문서-입양,입안문서(光山金氏禮安派宗家所藏古文書-入養․立案文書) 1. 성화십육년팔월초이일 예조입안(成化拾陸年捌月初貳日 禮曹立案)
『경북지방고문서집성』, 이수건 편, 영남대학교 출판부, 1981
            『조선전기고문서집성-15세기편』, 정구복 외 편, 국사편찬위원회, 1997
            『朝鮮初期 古文書 吏讀文 譯註』, 朴盛鍾,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조선시대 입안에 관한 연구」, 최연숙,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5
1차집필자: 박준호, 2차집필자: 권오정
 
자료로딩...
닫기




成化拾陸年捌月初貳禮曹立案
右立案爲▣▣▣ 曹啓目節呈慶尙道禮▣…▣
所志內 家翁亦嫡妾俱無子爲白乎等用良 生前始叱三寸姪金淮次子孝盧矣身
爲良結說噵爲如可 未及繼後身故爲白乎在亦節 家翁願意導良孝盧矣身乙繼後是白良
白去乎行下向事所志是白齊縣監金淮盧氏所志內 家翁同姓三寸叔金孝之亦 嫡妾俱▣▣▣
白乎等用良 生前始叱矣身茂火汝矣次子孝盧繼後爲良結說噵爲如可 未及繼後早死爲白良在乙 ▣▣
孝之黃氏亦 家翁願意以繼後是良結懇說乙仍于 女矣次子孝盧 矣▣▣▣令爲白去乎 依他例行▣
所志爲白乎等 ▣▣行移推考慶尙道觀察使關 連次 安東都護府使朴始亨牒呈內 推▣…▣
五月二十三日 故別侍衛金孝之黃氏公緘答通內 家翁亦嫡妾俱無子爲白乎等用良 得病臨終時 女矣身茂火▣…▣
孝盧矣身乙繼後爲良結 說噵爲如可繼後不得身故爲白良厼 家翁願意皃如 同孝盧矣身乙繼後爲白良結 禮曹呈所▣▣
乎味 答通爲白齊縣監金淮盧氏公緘答通內 家翁同姓三寸叔金孝之黃氏亦 女矣身茂火 說噵爲乎▣▣▣
得病臨終時 嫡妾俱無子爲昆 四寸孫孝盧繼後爲良結 說噵爲如可 未及繼後爲白乎等用良向前孝盧乙 家翁繼後爲▣
乙仍于 女矣次子孝盧矣身乙 出後令爲白良結禮曹所志爲白乎味答通是白齊爲等如 所志公緘答通牒呈爲白有▣
爲白乎矣 大典立後倏 嫡妾俱無子者 告官立同宗支子爲後 註 兩家同命立之 父沒則母告官亦爲白置有良厼向前▣▣
金孝之繼後何如 成化拾陸年參月貳拾伍日 右副承旨盧公弼次如 啓依允敎事爲去有良厼
敎內皃如 繼後爲遣合行立案者
        行正郞    行佐郞(押)
判書(押) 參判(押) 參議(押) 行正郞(押)   佐郞
        行正郞    佐郞(押)
            (官印. 方9cm 十一個)
예조에서 김효지의 처에게 발급한 공증문서

성화(成化)1) 16년(1480년, 성종 11) 8월 2일 예조 입안
이 입안은 계후(繼後)에 관한 일이다. 예조에서 이번에 계목(啓目)2)을 올렸는데, “경상도 예안(禮安)에 …(원문 결락)… [사는 고 김효지(金孝之)의 처 황씨(黃氏)]3)가 소지를 올려 ‘남편이 적처와 첩에게 모두 아들이 없기 때문에 생전에 처음부터 3촌 조카인 김회(金淮)의 차자 효로(孝盧)를 …(원문 결락)… [계후]4)하고자 하다가 미처 계후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번에 남편의 바람대로 효로를 계후시키기를 바라오니, 분부를 내려주십시오.’라고 청하였습니다. 고 현감(縣監) 김회의 처 노씨(盧氏)가 소지를 올려 ‘남편의 동성 3촌 숙부인 김효지가 적처와 첩에게 모두 …(원문 결락)… [아들이 없기]5) 때문에 생전에 처음부터 저에게 저의 차자 효로를 계후하고자 한다고 말하였는데, 미처 계후하지 못하고 일찍 죽었습니다. 효지의 처 황씨가 남편의 바람대로 계후시키고자 간절히 말하므로, 저의 차자 효로를 계후시키니, 다른 계후의 예대로 분부를 내려주십시오.’ 라고 청하였습니다. 공문(公文)을 보내어 추고(推考)6)하고 올린 경상도 관찰사의 관문(關文)7)에 안동도호부사 박시형(朴始亨)8)첩정(牒呈)9)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추고 …(원문 결락)… 5월 23일 고 별시위(別侍衛)10) 김효지의 처 황씨의 공함(公緘)11) 답통(答通)에, 「남편이 적처와 첩에게 모두 아들이 없기 때문에 병을 얻어 임종할 때에 저에게 □□[4촌]12) 손자 효로를 계후하고자 한다고 하다가 계후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남편의 바람대로 효로를 계후하고자 예조에 소지를 올렸습니다.」하였습니다. 고 현감 김회의 처 노씨의 공함 답통에, 「남편의 동성 3촌 숙부인 김효지의 처 황씨가 저에게, 남편이 병을 얻어 임종할 때에 적처와 첩에게 모두 아들이 없으니 4촌 손자인 효로를 계후하고자 한다고 하다가 미처 계후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효로를 남편의 후사로 삼자고 청하였습니다. 이에 저의 차자 효로를 양자로 보내고자 예조에 소지를 올렸습니다.」하였습니다.’ 이러한 모든 소지 및 공함 답통, 첩정이 올라왔습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입후조(立後條)에, ‘적처와 첩에게 모두 아들이 없는 자는 관청에 고하여 동종의 지자(支子)13)를 세워 후사로 삼는다.’고 하였는데, 그 주석에 ‘양쪽의 아비가 함께 명하여 후사를 세우되 아비가 없으면 어미가 관청에 고한다.’고 하였습니다. 앞의 김효지에게 후사를 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는 내용이었다. 성화 16년 3월 25일에 우부승지 신 노공필(盧公弼)14)이 담당하여 임금에게 보고하였는데 아뢴 대로 윤허한다고 하였다. 수교(受敎)하신 대로 계후시키고 이에 입안한다.
판 서【착압】
참 판【착압】
참 의【착압】
행정랑 행정랑【착압】 행정랑
행좌랑【착압】 좌 랑 좌 랑【착압】

[주석]

1) 성화(成化)
중국 명(明)나라의 제8대 황제인 헌종(憲宗, 1447~1487)의 연호이다.
2) 계목(啓目)
조선시대 중앙의 관부에서 국왕에게 올리는 문서양식을 말한다. 중대한 일을 계(啓)할 때는 계본(啓本)의 서식을 썼고, 작은 일을 계할 때는 계목을 사용하였다.[정의:韓國古文書硏究.]
3) 사는 …… 황씨(黃氏)가
이 부분은 이어지는 소지 내용을 유추하여 번역하였다.
4) 계후
입안의 본문에 같은 내용이 반복되므로 유추하여 번역하였다.
5) 아들이 없기
입안의 본문에 같은 내용이 반복되므로 유추하여 번역하였다.
6) 추고(推考)
죄과(罪過)있는 관원을 신문하여 그 죄상을 고찰함. 관원에 대한 징계(懲戒)로도 사용됨.[정의:국어대사전/특수용어용례사전.]
7) 관문(關文)
상급 관청에서 하급 관청에 대하여 발하는 공문.[정의:국어대사전/특수용어용례사전.]
8) 박시형(朴始亨)
본관은 강릉이고 자는 조겸(祖謙)이다. 아버지는 박중신(朴中信)이고, 어머니는 김지(金祉)의 딸이다. 1456년(세조 2)에 생원·진사시에 동시에 합격하였고, 1459년에 발영시(拔英試)에 급제하여 사헌부 장령, 호조 좌랑, 홍문관 박사·교리, 동부승지, 안동 부사, 예문관 직제학을 역임했다.[정의:향토문화전자대전]
9) 첩정(牒呈)
첩(牒)은 관사(官司)의 문안(文案)을 뜻하고[『광재물보(廣才物譜)』신도부(臣道部) 첩(牒)], 정(呈)은 높은 사람에게 뜻을 전달한다는 뜻이니, 첩정(牒呈)은 하사(下司)에서 상사(上司)에 올리는 공문서(公文書)를 의미한다.[정의: 경국대전, 고문헌용어용례사전]
10) 별시위(別侍衛)
조선 시대에, 오위 가운데 용양위(龍驤衛)에 속한 장교 부대. 내금위(內禁衛)의 취재(取才)에 뽑힌 사람과 무과(武科) 복시(覆試)에서 화살 여섯 대 이상을 맞힌 사람을 뽑아서 편성하였다.[정의:국어대사전.]
11) 공함(公緘)
조선 시대에, 높은 벼슬아치들이 죄를 짓거나 어떤 사건에 관계된 경우에 편지를 보내어 신문하거나 질문하던 일. 또는 그 편지.[정의:국어대사전.]
12) 4촌
입안의 본문에 같은 내용이 반복되므로 유추하여 번역하였다.
13) 지자(支子)
맏아들 이외의 아들을 말한다.
14) 노공필(盧公弼)
1445∼1516. 본관은 교하(交河). 자는 희량(希亮), 호는 국일재(菊逸齋)이다. 영의정 사신(思愼)의 아들이다. 1462년(세조 8)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466년(세조 12) 문과에 급제하였다. 병조·이조·예조의 참의와 도승지․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489년에 공조판서가 된 데 이어 6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였으며, 외직으로는 경기도 관찰사를 지냈다. 1500년 교성군(交城君)에 봉해졌다.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좌되어 무장(茂長)으로 장배(杖配)되었다가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풀려나왔으며, 명(明)나라에 가서 중종 즉위의 경위를 설명하고 명나라 왕으로부터 권서국사(權署國事)의 칙지를 받아 귀국하여 그 공로로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고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에 올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소

역대인물정보보기
인물관계정보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