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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김효로(金孝盧) 안동부입안(安東府立案)    
G002+AKS+KSM-XD.1517.4717-20101008.B001a_001_00091_XXX
 
분류 고문서-증빙류-입안 / 법제-소송·판결·공증-입안
작성주체 발급: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수취: 김효로(金孝盧)  
작성지역 안동부    /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517년 / 정덕12년1월   
형태사항 크기: 24.4×93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 현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비고 출판정보: 『고전자료총서 82-2 광산김씨 오천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본 번역문은 2014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1 / 4. 입안(계후·노비·토지) / 안동부입안5 / 16 ~쪽
 
안동부에서 김효로에게 발급한 공증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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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二年正月 日安東府立案
右立案爲決折事 節到付禮安生員金孝
所志 連次決議送合執的只去等 秋分
官作財主平均分給向事議送是齊
志內 繼後黃氏收養女安東▣▣▣參奉
處崐
金氏繼後金孝盧▣▣來義
▣▣奴洪萬矣良妻幷産末▣▣▣音德
▣▣▣幷九口乙 合執使用爲去乙分執爲結說
爲良置物物謀避 至爲不當爲▣▣厼 官作財主
▣▣分給爲白只爲行下向事所志是齊爲等如議
送及所志是乎等用良推考丁丑正月二十九日 元告生員金孝盧 年六十二 隻 前參奉
處崐
年五十八等 白等矣徒等亦 奴婢相爭事以當
日爲始 立訟爲白在果元隻中無故不就訟
白去等 依大典施行敎味白齊 同日金孝盧
▣▣▣白等繼後黃氏敎是庚子年分 家
▣▣▣傳來奴洪萬良妻幷産一所生婢訥叱
▣▣ 收養女 前參奉南處崐妻同奴二所生
▣▣▣三乙良矣身爲等如許給文記成置 經官
▣▣後三所生婢今音德段 遺漏 義城出居
▣所生▣▣歧等如産長爲白去乙他矣
▣婢所生南處崐合執使用乙仍于 受議
到付告爭爲白去乎 眞僞乙良傳係文記 推納
相考施行敎味白齊 同日 南處崐更推 白等
孝盧
告爭婢今音德所生奴婢 執持根因段
孝之
黃氏敎是 無子息乙仍于 矣妻金氏
▣三歲時 懷抱長養 去庚子年分 田民傳係
自矣家翁邊傳來 義城接奴洪萬矣良妻
幷産一所生婢納叱乙良
矣妻二所生奴禾三乙良
繼後生員金孝盧爲等如許給文記成置 經官
傳係後 去壬寅年分 別世敎是去乙 同奴洪萬
三所生婢今音德 漏落爲有如可 同婢亦 遺漏
根因詳知 同縣南面下川里接 私奴李孫交嫁所▣
孫所生幷十二口産長隱接居爲去乙 年號不記
退計七八年間推尋 捉來使用爲白去乎乙良
文記 推納相考施行敎味白齊 同日 元告金孝
南處崐等更推 白等元告金孝盧現納
德四年
十二月日 財主前朝奉大夫典醫少監
名署 俱證筆 子息和會成置白文許與內 子息
孫子等亦中 都許與成給爲白乎事矣身亦 老病爲乎
等用良 父母邊奴婢及外祖母處 傳得婢等乙用良
老壯弱和會先可三十二口式以平均分給
戊戌年分 汝等徒各衿良中 奴婢幷十口式以
爲良爲旀給分是白遣 許與成給不冬爲有如乎
等用良 右奴婢等乙 幷錄爲乎矣使用已久爲乎等
用良 各後所生乙良 得後以施行許與爲去乎在亦
遺漏奴婢等乙 萬分生前分給不得爲良置汝等徒
同腹等 奴婢老壯弱分揀 並只執籌以 平均分
爲有如可 後現爲去等分執后所生乙良 各其本
主使用爲遣分執所生乙良公反婢是遣 在
遺漏奴婢分執時 口數不等分執有去等 右奴婢
乙用良 長子作財主 充給爲遣 有余爲而叱上項
執籌分執爲 后所生幷以 子孫傳持鎭長使用
爲乎矣 後次 別爲所乙用良望隅有去等文字
內事意乙用良 告官辨正爲乎喩乃 吾曾祖
景公金▣▣
遺書內 後子孫等 以一己之無子 不顧
大義 ▣▣情慾 螟蛉子 養以爲子 骨肉至
親 視如路人 祖業相傳之奴婢乙 一朝經與他
人 且慕利祿以 奴婢賄賂於權勢之門者 如或
有之 孝順子孫 告狀於官 奪其奴婢 永絶屬籍
爲良如敎遺書是乎等用良 爲子孫者 不可不遵
幷書卷末以示于後 凡吾子孫 幸有無子者 則
宜服膺而勿失祖宗之遺訓 幸甚幸甚 後末子
孝之衿 母邊傳來婢室倍所生奴洪萬年二十七
是如施行 他衿他奴婢幷付許與是白置有良厼
相考施行敎味白齊 同日 金孝盧南處崐等更
白等矣徒相爭奴婢乙良 兩邊侤音相考 依式
施行敎味白齊 爲等如 元隻侤音是乎等用良
爲乎矣元告金孝盧亦 婢今音德繼後
金孝之邊傳來奴洪萬良妻幷産三所生
以 遺漏爲有去乙孝之黃氏養女夫
處崐
亦 同婢所生奴婢等乙合執使用是如爲旀
南處崐▣置 同奴洪萬矣良妻幷産一二所生
乙良 黃▣亦 矣妻及金孝盧等亦中 各一口
經官傳係後 同奴三所生婢今音德段義城
居生隱漏爲有去乙 同婢所生婢等乙 執捉使用
爲臥乎所 無辭納段哛不喩宣德己酉年財
名署 成置白文許與內 末子孝之衿 奴洪萬
年二十七是如施行爲有如乎是如中今音德
洪萬矣三所生以 庚子年許與成置時 遺漏
▣▣去乙南處崐獨亦使用明白爲乎等用良
同婢今音德所生奴婢乙元隻等亦中執籌
分給爲遣 奴婢花名年歲各衿 立案後錄合
▣▣案者
▣▣▣大都護府使(押)    行判官
  後
 元告生員金孝盧
  婢今音德二所生奴石同年二十五
  同奴良妻幷産一所生奴石斤年二
  五所生婢申今年七
  婢鶴非一所生婢粉伊年十二
  三所生奴漢孫年六
  五所生婢漢非年一
 ▣前參奉南處崐
  奴洪萬良妻幷産三所生婢今音德年四十九
  同婢一所生婢鶴非年三十三
  三所生婢乭非年十八
  四所生奴石孫年十二
  ▣▣生婢申德年四
  婢鶴非二所生奴戒孫年七
  四所生奴㐙彦年三
            (官印, 方8㎝ 一個)

이 입안은 결절(決折)1)에 관한 일이다. 이번에 도부(到付)2)한 예안(禮安)에 사는 생원 김효로(金孝盧)의 소지에 대해 연이어 판단한 의송(議送)3)에는 “합집4)한 것이 확실하므로 추분(秋分) 후에 관(官)이 재주(財主)가 되어 공평하게 나누라는 일”이라고 하였다. 소지에는 “계후모(繼後母) 황씨의 수양녀인 안동에 사는 …(원문 결락)… 참봉 남처곤(南處崐)의 처 김씨가 계후부 김효지(金孝之)로부터 전래한 의성(義城)에 살았던 죽은 노 홍만(洪萬)의 양처병산(良妻幷産)5)인 …(원문 결락)… [막내 비]6) 음덕(音德) 등 모두 9구를 합집(合執)하여 부리거늘 나누어 가지고자 설득하여도 갖가지로 피하려고 꾀하니 매우 부당합니다. 관이 재주가 되어 …(원문 결락)… 나누도록 명령할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상과 같은 의송과 소지이므로 추고하고자 [부르니] 정축년(1517, 중종 12) 정월 29일 원고 생원 김효로 나이 62세, 피고 전 참봉 남처곤 나이 58세 등이 아뢰었다. “저희들이 노비를 다투는 일로 오늘부터 소송을 시작하거니와, 원고 와 피고 가운데 이유 없이 소송에 나오지 않거든 『경국대전』에 따라 시행할 일입니다.” 같은 날 김효로를 …(원문 결락)… [다시 추고하니]7) 아뢰었다. “계후모 황씨께서 지난 경자년(1480년, 성종 11)쯤에 남편 쪽에서 전래된 노 홍만의 양처의 1소생 비 눌비(訥叱非)는 수양녀인 전 참봉 남처곤의 처에게, 같은 노의 2소생 노 화삼(禾三)은 저에게 모두 나누어주는 문기를 작성하여 관(官)의 입안을 거쳐 물려주었습니다. 그 후 3소생 비 금음덕(今音德)은 나눌 때 빠진 것으로 의성(義城)에 나가 사는 …(원문 결락)… 소생 노 돌기(乭歧) 등이 낳아서 키웠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상속에서) 빠진 비의 소생을 남처곤이 합집하여 부렸으므로 도착한 의송을 받아서 고하고 다툰 것이니, 그 진위는 상속문서를 바치게 해서 상고하여 시행하실 일입니다.” 같은 날 남처곤을 다시 추고하니 아뢰었다. “김효로가 고하여 다투게 된 비 금음덕의 소생 노비를 차지하게 된 근본원인은 김효지의 처 황씨께서 자식이 없으므로 저의 처 김씨를 세 살 때 거두어 오래 동안 길렀습니다. 지난 경자년 쯤에 토지와 종을 물려 줄 때에 그녀의 남편 쪽에서 전래한 의성에 사는 노 홍만의 양인인 처의 1소생 비 눌비는 저의 처에게, 2소생 노 화삼은 계후자인 생원 김효로에게 모두 물려주면서 문기를 작성하고 관의 입안을 거쳐 물려주었습니다. 그 후 지난 임인년(1482년, 성종 13) 쯤에 별세하셨거늘 같은 노 홍만의 3소생 비 금음덕은 빠졌습니다. 같은 비가 빠진 근본원인은 잘 아시듯이 같은 현(縣) 남면(南面) 하천리(下川里)에 사는 사노(私奴) 이손(李孫)에게 시집가서 낳은 후손 소생 12구가 성장하여 숨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연호(年號)를 기록하지 않고 받아서 모두 7, 8년 간 찾아 잡아와서 부렸으니, 진실은 전계문기(傳係文記)를 받아들여 서로 조사하여 시행할 일입니다.” 같은 날 원고 김효로, 피고 남처곤 등을 다시 추고하니 아뢰었다. “원고 김효로가 제출한 (선덕(宣德) 4년(1429년, 세종 11) 12월 일 재주 아버지 전 조봉대부(朝奉大夫) 전의소감(典醫少監) 김 아무개가 착명착압하고 증인과 필집을 갖추어 자식들이 나눈 백문(白文)8) 허여문기))에 ‘자식 손자들에게 모두 나누어주는 일은 다음과 같다. 이 몸이 늙고 병들었기 때문에 부모 쪽의 노비와 외조모로부터 물려받은 노비 등을 노(老)․장(壯)․약(弱)으로 공평하게 나누어 먼저 32구씩 똑같이 나눈다. 그 안에 「지난 무술년(1418년, 태종 18) 쯤 너희들 각 몫에 노비 모두 10구씩 알맞게 나누고는 허여문기를 작성하지 못하였기에 이 노비들을 모두 기록한다.」하였다. 부린지 이미 오래 되었기 때문에 각각의 후소생(後所生)은 물려받은 이후의 몫으로 인정해서 주는 것으로 하고, 누락된 노비들은 만약 생전에 나누어주지 못하였더라도 너희들 동복(同腹)들이 노비를 노․장․약으로 분간하여 함께 집주(執籌)9)하여 공평하게 나누어 차지하라. 도망노비도 노비를 나누기 전에 집주하여 나누어 가지고 있다가 뒤에 더 나타나거든, 나누어 가지기 전의 소생들은 각각 그 원래의 주인이 부리고 나누어 가진 뒤의 소생은 공평하게 나누어야 할 노비들이다. 누락된 노비를 나눌 때에 노비수가 같지 않은 몫이 있거든 이 노비들은 장자가 재주가 되어 채워 주고, 남는 노비가 있으면 위의 예로 추첨하여 나누어 가진다. 후소생은 모두 자손들에게 주어 오래도록 부리게 하되, 만일 이의가 있어 다투게 된다면 이 문자의 내용을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다. 우리 증조고이신 정경공(貞景公) …(원문 결락)… [김사원(金士元)]10)의 유서(遺書)에 「나중에 자손들이 자기에게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대의를 돌아보지 않고 구차하게 정욕을 쫓아 남의 자식을 길러 아들로 삼고 골육지친을 길거리의 사람으로 보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노비를 하루아침에 남에게 가볍게 주고, 게다가 재물과 벼슬을 바래서 노비를 권문세가에 뇌물로 바치는 자가 만약 혹 있으면 효성스러운 자손은 관에 소장을 제출하여 그 노비를 빼앗고 속적(屬籍)에서 영원히 뺄지어다.」라고 하셨다. 자손이 된 자가 따르지 않을 수 없어 그것도 아울러 권말에 써서 후손들에게 보인다. 무릇 우리 자손들 중에 행여 자식이 없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마음속에 두고 잊지 말아 조상의 유훈을 어기지 않으면 매우 다행일 것이다. 뒤의 막내 효지 몫은 어머니 쪽에서 전해온 비 보배(室倍) 소생 노 홍만(나이 27세)이다.’ 하였습니다. 다른 몫의 다른 노비도 허여문기에 들어있으니 서로 살펴 시행하실 일입니다.” 같은 날 김효로와 남처곤 등을 다시 추고하니 아뢰었다. “저희들이 서로 다투는 노비는 양쪽의 다짐을 살펴 법에 따라 시행할 일입니다.” 모두 원고와 피고의 다짐이니 상고한다. 원고 김효로는 ‘비 금음덕은 계후부 김효지쪽로부터 전해온 노 홍만의 양인인 처의 3소생으로 누락된 것이거 늘 김효지의 처 황씨의 양녀 남편 남처곤이 같은 비 소생의 노비 등을 합집하여 부렸다’고 한다. 남처곤도 노 홍만의 양인인 처의 1, 2소생은 황씨가 자신의 처와 김효로 등에게 각각 1구씩을 관의 입안을 거쳐 물려주었고 후에 같은 노의 3소생 비 금음덕은 의성에 나가 살아서 누락되었거늘 같은 비의 소생 노비 등을 잡아다가 부리고 있으면서 그 사연을 제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선덕 기유년(1429년, 세종 11) 재주 김 아무개가 착명착압하고 작성한 백문허여문기) 내에 ‘막내 효지 몫은 노 홍만(나이 27세)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비 금음덕은 노 홍만의 3소생으로 경자년 재산을 나누어 주고 문기를 작성할 때에 누락된 것이거늘, 남처곤이 독자적으로 부린 것이 명백하므로 같은 비 금음덕의 소생 노비들은 원고와 피고들에게 똑같이 계산하여 나누어주고 노비의 이름과 나이를 각 몫의 입안 뒤에 기록한다. 이에 마땅히 입안한다.
안동도호부사【착압】

원고 생원 김효로 몫 : 비 금음덕 2소생 노 석동(石同) 나이 25세, 같은 노의 양인인 처의 1소생 노 석근(石) 나이 2세, 5소생 비 신금(申今) 나이 7세, 비 학비(鶴非)의 1소생 비 분이(粉伊) 나이 12세, 3소생 노 한손(漢孫) 나이 6세, 5소생 비 한비(漢非) 나이 1세.
피고 전 참봉 남처곤 몫 : 노 홍만의 양인인 처의 3소생 비 금음덕 나이 49세, 같은 비의 1소생 비 학비(鶴非) 나이 33세, 3소생 비 돌비(乭非) 나이 18세, 4소생 노 석손(石孫) 나이 12세, 5소생 비 신덕(申德) 나이 4세, 비 학비 2소생 노 계손(戒孫) 나이 7세, 4소생 노 둘언(㐙彦) 나이 3세

[주석]

1) 결절(決折)
재판. 판결. 소송을 판결하는 것.[정의:국어대사전/특수용어용례사전.]
2) 도부(到付)
공문서나 공식 지령이 도달되어 받다.[정의:국어대사전/특수용어용례사전.]
3) 의송(議送)
조선시대 사인이 관찰사·순찰사 등에게 올리는 민원서. 대개 수령(守令)에게 소지를 올렸다가 관철이 되지 못하면 관찰사에게 의송을 올리는데 때로는 수령이 사사(私事)로써 호노(戶奴)를 통하여 관찰사에게 올리는 경우도 있다. 양반이 의송을 올릴 때에는 직접 하지 않고 그 집의 노의 이름으로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송도 다른 민원서류와 같이 관찰사로부터 의송의 좌편하단 여백에 처분(판결)을 받게 되는데, 이를 제사(題辭)라고 한다. 제사를 받은 의송은 그것을 올린 사람에게 다시 돌려주며, 이것은 관찰사의 처분·판결을 받은 근거자료로서 소중히 보존되었다.[정의: 고문헌용어용례사전]
4) 합집(合執)
부모의 유산(遺産)을 규정대로 분배하지 아니하고 장자(長子)인 자가 독점(獨占)하는 것.[정의:특수용어용례사전.]
5) 양처병산(良妻幷産)
노(奴)가 양인을 처로 삼아서 낳은 자식이다.
6) 막내 비
입안의 본문에 같은 내용이 반복되므로 유추하여 번역하였다.
7) 다시 추고하니
같은 날 남처곤에게 추고한 사실이 있으므로 유추하여 번역하였다.
8) 백문(白文)
입안(立案)을 받지 않은 문서를 말한다.
9) 집주(執籌)
제비를 뽑는다는 것으로, 공평한 상속을 위해 상속재산을 가능한 한 균등하게 분배하여 추첨을 통해 상속인에게 주는 것이다.
10) 김사원(金士元)
1257∼1319. 평양윤(平壤尹),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상의회의도감사(商議會議都監事),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를 지냈다. 시호는 경정(景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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