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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김연(金緣) 처 조씨(曺氏) 입안(立案)    
G002+AKS+KSM-XD.1517.4775-20101008.B001a_001_00313_004
 
분류 고문서-증빙류-입안 / 법제-소송·판결·공증-입안
작성주체 발급: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 /수취: 조씨(曺氏)
작성지역 경상도 청송도호부    / 경상북도 청송군   
작성시기 1517년 / 정덕12년정축9월초5일   
형태사항 크기: 51.4×572.8 / 점련, 10장 / 종이 / 한자, 이두
인장서명 34개(7.5×7.5, 적색, 정방형)
浪川吳氏 2개(5×5, 흑색, 정방형)
烏川鄭氏 3개(5×5, 흑색, 정방형)
서명(개) 착명:16 / 서압:14 / 착관:6
점련자료 1509년 김연(金緣) 소지(所志)
1508년 김효원(金孝源) 처 오씨(吳氏) 허여문기(許與文記)
1509년 김효원(金孝源) 처 오씨(吳氏) 함답(緘答)
1509년 김효원(金孝源) 초사(招辭)
1509년 이철주(李鉄柱) 등 초사
1509년 김연(金緣) 입안(立案)
1517년 이계세(李繼世) 처 정씨(鄭氏) 허여문기(許與文記)
1517년 이계세(李繼世) 처 정씨(鄭氏) 함답(緘答)
1517년 이적(李迪) 등 초사(招辭)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 현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비고 출판정보: 『고전자료총서 82-2 광산김씨 오천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1 / 9. 분재기류 / 라. 허여문기 / 입안25 / 208 ~쪽
 
1517년 청송부에서 김연 처 조씨에게 내린 재산공증문서
   1517년이계세의 부인 정씨는 남편의 오촌질녀인 조씨에게 노비 3명을 주었다. 이에 조씨는 이 노비 3명이 자기 재산임을 관에서 증명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관할 지방관인 청송부에서는 사실 확인 절차를 마친 후에, 조씩에게 사실증명서에 해당하는 본 입안을 발급해 주었다.
 
1517년청송부에서 김연의 처 창녕조씨가 외오촌숙부인 이계세의 처 오천정씨로부터 노비 3구를 상속받은 사실을 공증하는 내용으로 조씨에게 내려준 문서.
내용 및 특징
   1517년李繼世의 처 烏川鄭氏가 남편의 오촌질녀인 金緣의 처 昌寧曺氏에게 재산을 상속하였다. 노비 3구를 상속받은 조씨는 이에 대해 관에서 공증해 줄 것으로 요청하였다. 이를 접수한 靑松府에서는 사실확인을 거쳐 공증문서인 본 立案을 발급하였다. 이와 같은 재산변동사실에 대해 공증해주는 성격의 입안을 발급할 때에는 관련 문서를 모두 점련하여 입안신청자에게 내려주는 것이 당시 관례였다. 따라서 본 문서 또한 정씨조씨에게 재산을 상속한 분재기, 財主 정씨의 緘答, 증인과 필집의 招辭와 함께 점련되어 있다. 반면에 이러한 행정행위의 출발점이 되는 입안 신청 所志는 결락되어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분재기 또한 결락이 심하여 작성일자 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정씨의 함답이 정월 13일에, 초사가 16일에 작성된 것을 통해 소지가 정월 초에 청송부에 올려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헌데 본 입안은 9월에 발급되어 입안발급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입안 요청 소지의 존재는 입안 내 기록인 "奴玉斤所志"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致富나 山訟 등의 사안에 유학자인 양반이 관여하는 것을 꺼렸던 조선후기에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家奴 혹은 首奴가 관련 분쟁이나 매매를 대리하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노 옥근의 소지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아녀자인 조씨와 선비인 김연을 대신하여 올려진 것이다.
   입안의 내용은 상속사실보다 상속재산의 유래를 밝히는 데 더 치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弘治元年(1488)이계세의 아버지 李從允이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준 許與文記와 弘治十三年(1500)李從允 妻 叔夫人 金氏의 허여문기를 인용하고 있다. 두 문기에서 장자 이계세의 몫 가운데 해당 노비의 기록을 언급하여 이계세정씨가 나누어준 재산의 所從來를 명확히 하고 있다.
   본 점련문기는 현재 별건의 입안 점련문기와 함께 배접되어있다. 1508년오씨의 허여문기를 비롯한 점련문기가 그것이다. 후대에 배접을 하면서 함께 묶이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형태정보’는 점련된 전체 문서에 대해 기술하였다.
『韓國法制史攷』, 朴秉濠, 法文社, 1974
            「手決(花押)의 개념에 대한 연구 - 禮式으로서의 署名과 着押 - 」, 박준호, 『古文書硏究』20, 2002
            「朝鮮前期 財産相續」, 문숙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청구논문, 2000
            「光山金氏禮安派의 世系와 그 社會․經濟的 基盤 - 金緣家門의 古文書分析」, 이수건, 『역사교육논집』제1집 경북대학교사범대학역사과, 1980
권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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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德拾貳年丁丑玖月初伍日立案
右立案爲斜給節呈玉斤所志乙用良鄭氏
家翁五寸姪女生員金緣亦中奴婢傳係根因訂
筆取招爲置財主公緘答通是乎等用良相考
爲乎矣弘治元年正月初十日財主行高陽郡守
李從允亦子息等果成置白文許與內長子
舜佐衿奴五十同年十二丁酉慶賞奴金同
六十三乙亥是如施行他奴婢他衿幷付許與
是齊弘治十三年正月二十二日財主濟州牧使
李從允妻淑夫人金氏亦俱訂筆成置今更許
與內長子繼世衿奴內隱大年四丁巳是如
施行他奴婢他衿幷付許與是齊爲等如許
是乎等用良葉作粘連准退爲遺合行
立案者
行靑松都護府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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