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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0년 예조(禮曺) 계후입안(繼後立案)    
G002+AKS+KSM-XD.1660.1111-20101008.B001a_001_00090_XXX
 
분류 고문서-증빙류-입후성문 / 사회-가족·친족-양자문서
작성주체 발급: 예조(禮曹) /수취: 김렴(金{石+廉})
작성지역 한양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작성시기 1660년 / 순치17년7월28일   
형태사항 크기: 106.5×69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 현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비고 출판정보: 『고전자료총서 82-2 광산김씨 오천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본 번역문은 2014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1 / 4. 입안(계후·노비·토지) / 계후입안4 / 16 ~쪽
 
예조에서 김렴의 처 이씨에게 발급한 공증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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順治十七年 月 日禮曹立案
右立案爲繼後事 曹 啓目節呈學生金{石+廉}李氏所志內 家翁嫡妾俱無子身死 家翁同生
金{石+先}純剛 欲爲繼後 兩家同議呈狀 依他立後事所志幼學金{石+先}所志同生金{石+廉}
嫡妾俱無子身死 矣子純剛 欲爲繼後 兩家同議呈狀 依他立後事所志 李氏緘辭內 家翁嫡
妾俱無子身死 家翁同生金{石+先}純剛 欲爲繼後 兩家同議呈狀的實金{石+先}條目同生金{石+廉}
嫡妾俱無子身死 矣子純剛欲爲繼後 兩家同議呈狀的實金{石+廉}同姓三寸叔生員金光輔
{石+先}
同生幼學金礪條目金{石+廉}嫡妾俱無子身死 其妻李氏亦 家翁同生金{石+先}
純剛欲爲繼後 兩家同議呈狀的實所志緘辭條目相考 則大典立後條 嫡妾俱無子
者 告官立同宗支子爲後 註 兩家父同命立之 父歿則母告官事載錄 向前金純剛
{石+廉}
繼後何如 順治十七年七月二十八日 同副承旨洪處尹次知 啓依允敎事是去有等以
行立案者
                正郞佐郞
行判書(押) 參判參議  正郞佐郞
                正郞佐郞
           (禮曹之印, 方9cm 七個)

이 입안은 계후에 관한 일이다. 예조에서 이번에 계목을 올렸는데, “고 학생(學生) 김렴(金{石+廉})의 처 이씨(李氏)가 소지를 올려 ‘남편이 적처와 첩에게 모두 아들을 두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남편의 동복제인 김선(金{石+先})의 아들 순강(純剛)을 계후하고자 양가가 동의하여 소지를 올리니 다른 예에 따라 후사로 세워주십시오..’ 하였습니다. 이씨의 함사(緘辭)1) 내에, ‘남편이 적처와 첩에게 모두 아들을 두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남편의 동복제인 김선의 아들 순강을 계후하고자 양가가 동의하여 소지를 올린 것이 확실합니다.’ 하였고, 김선의 金{石+先}의 조목 내에, ‘동복형 김렴이 적처와 첩에게 모두 아들을 두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저의 아들 순강을 계후하고자 양가가 동의하여 소지를 올린 것이 확실합니다.’ 하였으며, 김렴의 3촌 숙부인 생원(生員) 김광보(金光輔)와 김선의 동복형 유학 김려(金礪) 등이 조목 내에, ‘김렴이 적처와 첩에게 모두 아들을 두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그 처인 이씨가 그 남편의 동복제인 김선의 아들 순강을 계후하고자 양가가 동의하여 소지를 올린 것이 확실합니다.’ 하였습니다. 위의 소지와 함사, 조목에 근거하여 상고하니, 『경국대전(經國大典)』 입후조(立後條)에, ‘적처와 첩에게 모두 아들이 없는 자는 관청에 고하여 동종의 지자(支子)를 세워 후사로 삼는다.’고 하였는데, 그 주석에 ‘양쪽의 아비가 함께 명하여 후사를 세우되 아비가 없으면 어미가 관청에 고한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앞의 김순강을 김렴의 후사로 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는 내용이었다. 순치 17년 7월 28일에 동부승지 신 홍처윤(洪處尹)2)이 담당하여 임금에게 보고하였는데 아뢴 대로 윤허한다고 하였다. 수교(受敎)하신 대로 계후시키고 이에 입안한다.
행판서【착압】
참 판
참 의
정 랑 정 랑 정 랑
좌 랑 좌 랑 좌 랑

[주석]

1) 함사(緘辭)
관원이 공무상 중대한 과오를 범한 경우에 그 사실을 서면(書面)으로 진술하여 올리는 봉서(封書). 부인의 초사는 집에서 작성하여 봉함하여 제출하였음.[정의:국어대사전/특수용어용례사전.] 그러나 중대한 과실을 범하지 않은 경우라도 관에서 사실 확인을 위해 필요한 경우 질문하면 답변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2) 홍처윤(洪處尹)
1607∼1663.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지임(之任), 호는 안분재(安分齋)이다. 경기관찰사 명원(命元)의 아들이다. 1639년(인조 17)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640년 예문관검열, 1641년 감찰, 1643년 홍산현감(鴻山縣監) 등을 지냈다. 1646년에는 시관(試官)이 되었으나 과거에 부정이 있어 파방(罷榜) 되자 삭직되었다. 1648년 복직되어 정언·수찬 등을 역임하고, 1650년(효종 1) 응교로 춘추관편수관이 되어 『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금성 군수(錦城郡守), 종부시 정, 동부승지, 형조 참의, 황해도 관찰사, 예조 참의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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