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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1년 부안현(扶安縣) 문계완의(門稧完議)    
G002+AKS+KSM-XD.1721.0000-20101008.B002a_002_00398_XXX
 
분류 고문서-증빙류-완의 / 사회-조직·운영-완의
작성주체 발급: 부안현(扶安縣)
작성시기 1721년 / 병술1월   
형태사항 크기: 37×60 / 합철, 1책 10면 / 종이 /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 부안 우반 부안김씨  / 현소장처 : 부안 우반 부안김씨  
비고 출판정보 : 영인본: 『고문서집성 2 -부안 부안김씨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 정서본: 『고전자료총서 83-3 부안김씨 우반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3) 역주본: 『고문서역주총서 2: 부안 부안김씨 우반고문서』(한국학중앙연구원, 2017)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2 / 4. 증빙류 / (6) 입의 / 입의1 / 546 ~550쪽
 
, 본문546~50면, 정서본: 立議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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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門稧完冊
 丙戌正月 日

02)
 立義
 右立義事段 夫性爲感於思
 齊之義 而設立門稧 以爲
 經用者 擧世族姓通行之
 美事 然爲吾氏壹派
 三四員 獨無是議 豈非
 慨惜乎 玆當是歲 發
 謀出辭則咸庸歸臨
 得如鄙意 故每員 03)
 鳩聚之者 各齎文
 壹串半貳斗 而繞計
 則厥數與伍兩拾斗
 也 是爲行遠之邇 性
 氏諸從兄弟叔伯氏
 勿以物些 歸還輕易
 仰慕乃祖 鉛以所重 而
 壹心桔椐 永爲報 04)
 本之地 幸甚幸甚
 丙戌正月日 佑相謹立條約
 一. 奉先之事 不可歇後 若爲不勤擧行 從所失論罰事
 一. 恒存張氏百忍之誼 而或達越今人嘆笑之地
 一. 財谷收時日 官以春冬擇定 以爲講信之地 05)
 一. 財谷至於數多之地 則諸百事應用 從公議區處
 門長
 載相 任錢有司
 禧相收錢有司
1826년(순조26) 부안 김씨 집안에서 문계를 설립한 뒤 작성한 합의 문서
병술년 정월 일
문계안책(門稧案冊)

입의(立義)1)
이 입의(立義)를 작성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사람은 본성 상 그리워하고 재계하는 의로움에서 감동을 받으니, 문계(門稧)를 설립하여 경영하여 쓰는 것은 온 세상의 종족과 성씨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실행하는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 성씨 일파인 3~4원(員)만은 유독 이런 의논이 없었으니 어찌 슬프고 한탄스럽지 않겠는가? 그런데 올해에 이르러서 모의하여 의견을 내니 모두 내 의견을 따라서 모두 함께 내 뜻과 같이 할 수 있었으므로 매 원(員)마다 재물을 모으는 것은 각각 돈 1꾸러미, 쌀 2말인데, 얽어서 내면 그 수가 5냥과 10두이다. 이것은 갈 길이 먼 곳에서 한 발짝이니 성씨의 여러 종형제 숙씨(叔氏)와 백씨(伯氏)들은 약간의 물자라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조상을 우러러 사모하고 소중한 것으로 마음에 새겨 한 마음으로 재물을 모아 자신의 근본에 영원히 보답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매우 다행스럽고, 매우 다행스럽다.

병술년 정월 일, 우상(佑相)2)이 삼가 조약(條約)을 세운다.
일. 선조를 받드는 일은 소홀히 할 수 없으니 만일 열심히 거행하지 않는다면 잘못한 것에 따라서 벌을 의논할 것임.
일. 장씨(張氏)가 보여준 것과 같이 마땅히 백번 참는 생활 태도를 항상 보존하고,3) 혹 다른 지방에 가서 사는 사람들도 웃도록 해야 할 것임.
일. 재물을 모으는 날을 봄과 겨울로 골라서 정하여 우의와 신의를 닦도록 할 것임.
일. 재물이 많게 되면 갖가지 일에 응하여 쓰는 것은 공의에 의거하여 처리할 것임.

문장(門長)
재상(載相:1784~1868)4) 임전유사(任錢有司)5)
희상(禧相:1798~?)6)
수전유사(收錢有司)7)

[주석]

1) 입의(立議)
종중(宗中)·가문(家門)·동중(洞中)·계 등에서 제사·묘위(墓位)·동중사(洞中事)·계 등에 관하여 의논하고 그 합의된 내용을 적어 서로 지킬 것을 약속하는 문서이다. 완의(完議)라고도 한다.
2) 김우상(金佑相)
1805~1833. 따라서 본 문서의 작성연대인 병술(丙戌)은 1826년으로 판단된다.
3) 장씨(張氏)가 …… 항상 보존하고
여기서 장씨는 장공예(張公藝)를 말하는데, 장공예는 당(唐) 나라 수장(壽張) 사람으로 9세(世)의 친족을 한 집안에서 거느리며 생활하였다. 이에 고종(高宗)이 직접 그 집을 방문하여 그 비결을 물었는데, 그가 지필(紙筆)을 청한 뒤 단지 참을 인(忍) 자만 백여 차례 쓰자 고종이 눈물을 흘리며 비단을 하사하였다 한다.(《구당서(舊唐書)》 권188)
4) 김채상(金彩相:1784~1868)
김준기(金俊起:1758~1815)의 둘째 아들이다. 초명은 재상(載相)이며, 효자로 정려(旌閭)를 내려 받았다. 김우상(金佑相)은 그의 막내 동생이다.
5) 임전유사(任錢有司)
돈을 맡아 보관하는 것을 담당하는 유사임
6) 희상(禧相:1798~?)
김희상(金希相:1798~?)은 김채상(金彩相:1784~1868)의 아우이자 김우상(金佑相:1805~1833)의 형이다.
7) 수전유사(收錢有司)
돈을 거두는 것을 담당하는 유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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