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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윤종협(尹鍾浹) 외(外) 문회소완의(門會所完議)    
G002+AKS+KSM-XD.1890.0000-20101008.B003a_003_01293_XXX
 
분류 고문서-증빙류-완의 / 사회-조직·운영-완의
작성주체 발급: 윤종협(尹鍾浹) /수취: 윤관하(尹觀夏)  
작성시기 1890년 / 경인10월27일   
형태사항 크기: 65×41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 현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3 -해남윤씨편 정서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본 번역문은 2016년-2017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3 / 22. 화해문서 / 화해문서1 / 452 ~453쪽
 
1890년(고종27) 윤관하가 8대조 전적공의 묘소를 선영에 이장하면서 발생한 분쟁을 해결하면서 작성한 문서
 
주제
   1890년(고종27) 10월 27일 尹觀夏가 8대조 典籍公의 묘소를 선영에 移葬하였다가 문제가 발생하여 윤씨 집안의 친족들이 모여 화해하고 작성한 문서이다. 參議公의 묘소 아래에 윤관하(1841~1926)가 8대조 典籍公의 묘소를 移葬하였기 때문에 四派 쪽에서 연명으로 소송을 시작하였다. 법정에서 대질하여 移葬하겠다는 侤音을 받는 등 같은 친족간에 서로 선조를 위하는 일로, 반목이 생겨 화목을 해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하여 일제히 모여 화해하면서 이 문서를 작성하였다. 원래 典籍公의 묘소는 경기 과천에 있었는데 제사를 지내기가 어려워 경인년(1890) 3월에 康津 德井洞으로 이장하였다. 하지만, 또다시 분쟁이 일어나 1893년 1월 윤관하 등이 이 사안에 대해 等狀을 올렸다.
/ 작성일:200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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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寅十月二十七日 門會所
惟我參議公墓下 第五波尹觀夏緬襄 其八代祖典籍公山故 自吾四派聚訟對質之場 至捧遷移之侤矣 反揆事機 事竟至極 則失和傷誼出於爲先之事 反有忝先之端 故齊會之席 群議僉同 永相和睦之意 如是成籍 則諸宗一遵幸甚
尹鍾浹四派
尹昌一三派
尹鍾學四派
尹鵬植一派
尹錫秉二派
尹柱彦二派
尹廷高三派
尹廷八三派
尹若浩五派

尹錫龍二派
尹柱鐵一派
尹三夏一派
尹鍾玄一派
尹寅夏一派
尹庠夏一派
尹永夏一派
尹大夏一派
尹勉欽三派
尹昌夏三波
尹柱英四派
尹圭夏三派
尹柱宣二派
尹廷泰三派
尹纘夏二派
尹廷虁三派
尹鍾臣二波
尹柱殷三波
尹錫璜一波
尹圭浩一波
尹柱龍五波
尹龍淳二波
尹柱德一波
尹基夏一波

경인년(1890) 10월 27일 문회소(門會所)1)
우리 참의공의 묘소 아래에 제5파의 윤관하(尹觀夏: 1841~1926)2)가 그의 8대조인 전부공(典簿公)3)의 묘소를 이장[緬襄]4)하였기 때문에 우리 4파가 법정에 모여 대질하여 묘소를 옮기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일의 기미를 돌이켜 헤아려보건대, 일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화목함을 잃고 마땅함을 헤치게 되었다. 모두 선조를 위하는 뜻에서 나온 일이거늘 도리어 조상을 욕되게 하는 단서가 되었다. 그러므로 일제히 모인 자리에서 많은 이들이 의논하여 모두가 동의하였으니 영구히 화목하게 지낼 뜻으로 이와 같이 문서를 작성하니 모든 종원들이 한결같이 따르기를 바란다.
○ 윤종협(尹鍾浹) 사파(四派)
○ 윤종학(尹鍾學) 사파(四派)
○ 윤붕식(尹鵬植) 일파(一派)
○ 윤석병(尹錫秉) 이파(二派)
○ 윤주언(尹柱彦) 이파(二派)
○ 윤정고(尹廷高) 삼파(三派)
○ 윤정팔(尹廷八) 삼파(三派)
○ 윤약호(尹若浩) 오파(五派)
○ 윤석룡(尹錫龍) 이파(二派)
○ 윤주철(尹柱鐵) 일파(一派)
○ 윤삼하(尹三夏) 일파(一派)
○ 윤정태(尹廷泰) 삼파(三派)
○ 윤찬하(尹纘夏) 이파(二派)
○ 윤정기(尹廷虁) 삼파(三派)
○ 윤종신(尹鍾臣) 이파(二派)
○ 윤주은(尹柱殷) 삼파(三派)
○ 윤석황(尹錫璜) 일파(一派)
○ 윤규호(尹圭浩) 일파(一派)
○ 윤창일(尹昌一) 삼파(三派)
○ 윤종현(尹鍾玄) 일파(一派)
○ 윤인하(尹寅夏) 일파(一派)
○ 윤상하(尹庠夏) 일파(一派)
○ 윤영하(尹永夏) 일파(一派)
○ 윤대하(尹大夏) 일파(一派)
○ 윤면흠(尹勉欽) 삼파(三派)
○ 윤창하(尹昌夏) 삼파(三派)
○ 윤주영(尹柱英) 사파(四派)
○ 윤규하(尹圭夏) 삼파(三派)
○ 윤주선(尹柱宣) 이파(二派)
○ 윤주룡(尹柱龍) 오파(五派)
○ 윤룡순(尹龍淳) 이파(二派)
○ 윤주덕(尹柱德) 일파(一派)
○ 윤기하(尹基夏) 일파(一派)

[주석]

1) 문회소(門會所)
문회(門會)는 종회(宗會)라고도 불리며, 이 기구를 통하여 문중의 중요한 안건들이 결정, 처리된다. 정기총회로서의 문회는 일 년에 한 번 열리며, 그 밖의 급한 사항이 생기면 문장(門長)에 의하여 수시로 소집될 수 있다. 회의는 문장·종손·유사(有司) 및 문중어른에 의하여 진행된다. 문회는 시향제(時享祭)를 마친 뒤 문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일 때나, 정초에 열린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윤관하(尹觀夏)
자는 성유(聖遊), 호는 연파(蓮坡), 아버지는 윤주흥(尹柱興), 부인은 해주최씨(海州崔氏).
3) 전부공(典簿公)
윤이석(尹爾錫: 1626~1694). 자는 거경(擧卿), 아버지는 윤인미(尹仁美), 부인은 청송심씨(靑松沈氏). 1678년(숙종4) 종친부 전부(宗親府典簿)에 제수되고 이산 현감(尼山縣監)을 지냈음.
4) 면양(緬襄)
묘소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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