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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일진회본부(一進會本部) 홍종규(洪鍾圭) 공함(公緘)    
G002+AKS+KSM-XD.1906.0000-20101008.B038a_058_00159_XXX
 
분류 고문서-증빙류-공함 / 법제-소송·판결·공증-공함
작성주체 발급: 일진회본부(一進會本部) /수취: 개천군(价川郡)
작성시기 1906년 / 광무10년12월13일   
형태사항 크기: 32×19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한글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산 부곡 진주유씨 경성당  / 현소장처 : 안산 부곡 진주유씨 경성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58 -안산 진주유씨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58 / 3. 첩관통보류 / (9) 공함 / 공함1 / 142 ~쪽
 
1906년(光武10) 12월에 一進會本部評議員 兼平南視察委員 洪鍾圭가 介川郡守 柳遠聲에게 徐基錫의 석방을 요구하여 보낸 공함.
 
주제
   1906년(光武10) 12월에 一進會本部評議員 兼平南視察委員 洪鍾圭가 介川郡守 柳遠聲에게 徐基錫의 석방을 요구하여 보낸 공함이다. 내용을 대략 다음과 같다. 德川에 사는 서기석이 이전에 올린 청원서에 따르면, 8월에 부랑자 김신규가 相律의 三寸 집에 머물다가 상률의 幕下人인 李德必의 처를 유인하여 도망하였으므로 상률과 덕필이 찾아 나섰는데, 殷山 鰲上里에서 어떤 여인에게서 康龍의 俠家에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상률이 덕필과 여인으로 하여금 데려오게 하였으나 강용의 협가가 세력을 위시하여 府에 소장을 올려 지령을 받고는 다시 官司에 보내니 관사에서는 덕필의 처를 강용의 협가에게 추급해 주기 위해 상률을 가두고 서기석에게는 벌금을 내게 하고는 김규신은 처벌하지 않았다. 이에 洪鍾圭가 개천군수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며 김신규를 가두고 서기석을 석방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공함을 올리게 되었다. 본 문서를 통해서는 서기석이 사건에 연루된 관계와 홍종규과 서기석의 관계는 알 수 없다. 다만 홍종규가 일진회 간부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서기석 또한 일진회 관련 인물이 아닌가 추측된다.

용어
   公函은 민간인 혹은 단체가 공무와 관련하여 주고받은 편지이다. 일정한 서식은 없으나 편지 형식을 띄고 있는 것이 많으며, 지금의 민원 청구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一進會(1904~1910)는 대한제국 말에 일본의 한국 倂呑政策에 적극 호응하여 그 실현에 앞장선 친일단체로, 1910년 8월 22일 조약이 체결된 후에 9월 26일 친일적 소임을 다하고 해체되었다.

인물
   柳遠成(1851~1945)은 경기도 安山 釜谷에서 아버지 유방과 어머니 고령신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㡌山이다. 1874년에 曾廣 會試에 생원으로 입격하고, 1900년 明成皇后 山陵都監 朗廳으로 출사하여, 1906년 평안도 价川郡守· 兼官德川郡守·兼官孟山郡守 등을 지냈고, 1910년 안산에 칩거하며 관직에 나아가지 않다가 1945년 세상을 떠났다.

지명
   价川은 평안남도 북단에 있는 군으로, 동쪽은 모일령(母日嶺)을 경계로 덕천군과 접하고, 서쪽은 안주군, 남쪽은 순천군, 북쪽은 청천강을 경계로 평안북도 영변군과 접하고 있다. 德川은 평안남도 북부에 있는 군으로, 동쪽은 영원군, 서쪽은 개천군, 남쪽은 맹산군·순천군, 북쪽은 묘향산맥을 경계로 평안북도 영변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經國大典』. 『大明律直解』. 안승준, 「安山 釜谷 晉州柳氏家(竟成堂)所藏 古文書의 내용과 성격」. 『古文書集成』58-安山 晋州柳氏篇, 韓國精神文化硏究院, 2002.
장을연 / 작성일:200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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