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자료센터

  • Open API
  • 사이트맵
  • 이용안내
  • 열린마당

한국고문서자료관

통합검색

  • 상세검색
  • 문자입력기

디렉토리분류

닫기

1487년 김효로(金孝盧)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점련문기    
G002+AKS+KSM-XE.1487.0000-20101008.B001a_001_00336_XXX
 
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작성주체 발급: 우령(禹▣) /수취: 김효로(金孝盧)  
작성시기 1487년 / 성화23년정미1월초9일   
형태사항 크기: 38.7×168 / 점련, 5장 / 종이 / 한자, 이두
점련자료 1487년 김효로(金孝盧) 소지(所志)
1487년 김효로(金孝盧)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487년 우령(禹令) 초사(招辭)
1487년 신종례(申從禮) 등 초사(招辭)
1487년 김효로(金孝盧) 입안(立案)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 현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비고 출판정보: 『고전자료총서 82-2 광산김씨 오천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본 번역문은 2014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1 / 10. 토지문기류 / 토지매매명문1 / 215 ~쪽
 
   1487년김효로(金孝盧)예안현(禮安縣)으로부터 받은 새로 산 토지에 대한 관의 공증문서이다. 이 공증문서는 김효로의 신청서, 매매계약서, 땅을 판 사람과 증인들의 사실확인서 등 4점의 문서가 첨부되어있다. 조선시대에는 토지나 노비의 매매나 상속과 같은 소유권 변동 사건이 발생하면, 관으로부터 공증을 받아 새로운 소유권을 보호받는 제도가 있었다. 김효로 역시 새로 산 땅에 대한 소유권을 명확히 하고자, 땅을 사자마자 관할 지방관청인 예안현에 이를 보고하고 관련서류를 제출하여 본 공증문서를 받아둔 것이다.
 
1487년김효로가 구입한 토지에 대해 예안현으로부터 발급받은 소유권 공증에 관한 일련문서.
   1487년金孝盧가 토지를 사들인 후 이에 대한 관의 공증문서인 斜給立案의 발급을 요청하여 禮安縣으로부터 발급받은 입안 점련문기이다. 결락이 심하나 점련된 다른 문서를 통해 그 내용을 추측할 수 있다.
   점련된 문서를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487년김효로예안현에 올린 입안 요청 所志가 첫머리에 나온다. 정월 초8일에 예안현 戶房에서 이를 접수하였고, 그 다음날인 9일에 입안을 成給하라는 처분이 내려졌다. 다음으로는 같은 해 김효로禹令으로부터 논 31卜을 산 土地賣買明文이 이어진다. 논을 판 우령이 정월 초9일에 이 매매사실을 확인하는 招辭를 예안현에 올렸고, 같은 날 매매명문 작성시에 증인과 필집으로 참여한 이들도 초사를 올렸다. 두 초사가 순서대로 매매명문 다음에 점련되었다. 마지막 문서가 바로 예안현에서 김효로에게 논의 매득사실을 공증하는 입안이다. 초사가 올려진 당일 발급되었다. 입안 이전의 문기들은 실상 모두 이 입안의 첨부문서인 것이다. 관련문서를 입안에 점련하여 신청자에게 내려주는 것은 麗末부터 나타나는 사급입안의 일반적 관행이었다.
   문서를 통해 나타난 사건을 시간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모두 서기로 1487년成化23년에 발생한 일이다. 정월 초6일 김효로우령으로부터 논을 사들였고, 이 논에 대한 소유권 공증을 위해 예안현에 사급입안의 발급을 요청하는 소지를 올렸다. 이 소지를 예안현에서 접수한 것이 8일이고, 9일에는 입안을 성급하라는 수령의 처분이 내려졌다. 논을 판 우령과 매매에 참여하였던 증인과 필집이 사실확인을 위해 초사를 올린 것도 같은 9일의 일이었다. 관련 문건을 검토하여 예안현에서 입안을 성급한 것도 같은 날이다. 매우 신속하게 사급입안이 발급되었음을 통해 알 수 있다.
권오정
 
자료로딩...
닫기




▣…▣
  初八日
  戶
  初九日 立案
  ▣…▣志
  ▣…▣ 
初六日金生員成文
▣…▣騎船價本積納不得乙仍于
卜畓三庫合參拾壹卜庫乙折木
永永放賣爲去乎 子孫傳持鎭長
▣▣爲所有去等文字內皃如告官

      畓主船軍(手決)
      訂保學生(手決)
      訂保學生(手決)
      筆執學生(手決)
丁未五月初九日
船軍令年四十七

節呈生員金孝盧所志
用良推考白等矣身亦
難所致以 騎船價本積納
不得衿記付避丁下畓三
庫合參拾壹卜庫乙 狀員處折木
綿拾貳匹捧上爲遣
放賣爲白臥乎事是厼
科科以相考施行敎事
       (手決)
官(押)

丁未正月初九日
學生 卞從禮年卄七
學生安思驛年六十一
學生金貴孫年四十七
節呈生員金孝盧所志乙用良
白等船軍禹令亦艱難所致以 騎
船當券價本不得其矣衿記
丁畓參庫合參拾壹卜庫乙 狀員
折木綿拾貳疋捧上爲遣 永永放
賣時卞從禮段筆執 金貴孫安士
驛段等訂保爲等如使內白乎事
是厼 科科以相考施行敎事
       白(手決)
       白(手決)
       白(手決)
官(押)
成化貳拾參年丁未正月初九日
立案
右立案連次所志乙用
畓主及訂筆進此
侤音捧上葉作
粘連退向事合行
立案者
行禮安縣監(押)   (禮安縣印, 方 7㎝ 17個)
김효로가 구입한 토지에 대해 예안현으로부터 발급받은 소유권 공증에 관한 일련문서

(입안신청소지)
…(원문 결락)… 초 8일
…(원문 결락)… 호방(戶房)이 담당함
…(원문 결락)… 초 9일 입안(立案)을 (발급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 결락)… 소지(所志)

(명문)
…(원문 결락)… 초 6일 김생원(金生員)에게1) 주는 명문(明文)
…(원문 결락)… 해당 관청에 납부하여야 할 밀린 기선가(騎船價)2)를 납부하기 불가하므로3) …(원문 결락)… 복인 논까지 총 3군데로 합계 결부수가 31복(卜)인4) 곳을 목면(木綿)으로5) 값을 정하고 영구히 방매한다. (차후에) 자손대대로 전하여 지니고 오래도록 지키도록 할 것이며 …(원문 결락)… (만약에 분쟁하는) 일이 생긴다면 이 문서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관청에 고하여 …(원문 결락)… 바로잡을 일이다.
답주(畓主) 선군(船軍) 우(禹) (착명)
증보(訂保) 학생(學生) 안(安) (착명)
증보(訂保) 학생(學生) 김(金) (착명)
필집(筆執) 학생(學生) 신(申) (착명)
(초사(招辭))
정미년 1월 초 9일
선군 우령(禹令). 나이 47세
(이하는) 이번에 생원(生員) 김효로(金孝盧)가 제출한 소지(所志)의 내용에 근거하여 (선군 우씨를) 심문하여 받은 진술 내용이다. “아룁니다. 제가 가난하고 어려운 까닭으로 밀려있는 기선가(騎船價)를 납부하기가 어려워서, 깃기[衿記] 장부의 기록상에 피자정(避字丁) 중에 아래에 있는 논 3군데로서 결부 수는 합계 31복인 곳에 대해 장원(狀員)인 김효로에게 목면(木綿) 12필(匹)로 값을 정해 받고자 하고 영구히 방매하였던 일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조목조목 살펴 검토하시어 업무를 시행하실 일입니다.”
삽(白) (착명)
관(官) (착압)

(초사(招辭))
정미년 1월 초 9일
학생 변종례(卞從禮) 나이 27세
학생 안사역(安思驛) 나이 61세
학생 김귀손(金貴孫) 나이 47세
(이하는) 이번에 생원 김효로가 제출한 소지의 내용에 근거하여 (위 3인에 대해) 심문하여 받은 진술 내용이다. “(아룁니다) 선군(船軍) 우씨가 가난하고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기선(騎船) 당번가(當番價)를 납부하지 못하여 그의 깃기에 기재된 피자정의 논 3군데로 결부수 합계가 31복인 곳을 장원(狀員)인 김효로에게 목면 20필로 값을 정해 받고 영구히 방매하였는데, 그 때에 변종례는 필집으로, 김귀손과 안사역은 증보로서 거래에 참여하였던 일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조목조목 살펴 검토하시어 업무를 시행하실 일입니다.”
삽(白) (착명)
삽(白) (착명)
삽(白) (착명)
관(官) (착압)

(입안(立案))
성화 23년(1487, 성종18) 정미년 1월 초 9일 입안
이 입안을 발급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앞에) 연결되어 있는 소지의 내용에 근거하여 답주(畓主) 및 증필(證筆)들이 출두(出頭)하여 진술한 다짐[侤音]6)을 접수하고, 낱장에 문서들을 점연(粘連)하여 돌려준다. (위 사항들은) 입안을 발급·시행하기에 합당하다.
행 예안현감(行 禮安縣監)7) (착압)

[주석]

1) ~전(前)
일반적으로 ‘~에게’라는 뜻으로 쓰인 ‘전(前)’은 주로 방매인보다 높은 신분이나 지위의 사람에게 쓰는 존대(尊待)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간혹 ‘처(處)는 그 반대의 경우로 하대(下待)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기선가(騎船價)
원문에는 ‘기선가본(騎船價本)’으로 되어 있다.
3) 불가하므로
거래이유에도 가계가 어렵거나, 빚을 갚거나, 이매(이매, 移買, 거래의 이유가 다른 곳의 토지구입을 위한 것임) 등등의 여러 가지가 있다. 한편 거래이유로 조선후기에 자주 기재한 ‘요용소치(要用所致)’는 긴히 쓸 곳이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원래 조선 초기에 과전법(科田法) 체제하에서 토지매매를 제한적으로나마 허용한 시기에는 대명률(大明律)에 정해진 세계과할(稅契過割)이라는 일련의 공증절차를 거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토지방매사유를 정확하게 밝혀야만했다. 그러나 조선 중후기로 오면 정확한 방매사유를 적기보다는 ‘요용소치(要用所致)’, ‘간난소치(艱難所致)’ 또는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대략적으로 방매사유를 밝히고 거래하는 관행이 증가하였다.
4) 31복(卜)인
거래대상이 토지일 경우 그 소재지, 자호(字號), 지번, 면적, 결부수, 구획(배미), 사표(四標) 등을 기재한다. 자호란 양전(量田, 토지측량)시에 매긴 천자문 순번으로 토지측량의 결부가 5결(結, 100짐의 곡식을 수확할 수 있는 면적을 1결로 봄, 1짐負․卜=10속束임.) 일 경우 한 자(字)가 다음으로 넘어가게 된다. 군현단위로 실시된 양전사업의 결과 산출된 천자문 자호는 해당 군현 또는 도(道), 전국의 총 결수, 즉 결총(結總)을 가늠할 수 있는 용이한 방안이 되었고, 또한 지번(地番)과 함께 특정 필지의 토지가 양안상 등재되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주는 명문상의 필수 기재요소가 되었다. 지번은 자호 다음의 측량구분단위로 지금의 필지, 즉 구획의 순번과 같은 기능을 한다. 면적은 주로 파종량 또는 일경(日耕)으로 하는데 전자를 마지기지(斗落只, 즉 ‘마지기’는 파종량을 기준으로 한 전답면적의 단위로서 한 말의 씨앗을 파종할 수 있는 면적), 후자를 ~갈이(一日耕은 하루갈이, 五日耕은 닷새갈이 따위)라고 한다. 결부 수는 해당토지에서 산출되는 곡식의 부피를 말하는 것으로 조세수취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배미(夜味)는 한 구획 내, 즉 지번 내에서 다시 구획이 나뉠 경우 이를 구분한 것이다. 야미(夜味)는 토지구획의 단위이며, 예컨대 이야미(二夜味, 이배미)라고 했을 경우 ‘두 군데, 두 곳’ 정도의 뜻이 된다. 삼작(三作)은 세 군데, 세 구획의 의미로 쓰였다. ‘작(作)’이라는 용어는 양전(量田)시 양전사목(量田事目)에서 정해놓은 어떠한 형태에도 해당 토지의 모양이 부합되지 않아 양안에 기재할 수 없을 경우에 예외적 형태에 대한 표시용어이다. 그러므로 이작(二作), 삼작(三作)이라는 말은 그처럼 양전사목에서 정해놓은 기본 모양에 해당하지 않는 토지가 두 군데, 또는 세 군데라는 것을 표시해주는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사표는 해당 토지의 동서남북에 있는 지형 및 토지의 소유주 등을 가리킨다.
5) 목면(木綿)으로
명문상에서 거래 시 가격을 치르는 화폐에는 면포(綿布), 저화(楮貨), 은자(銀子), 우마(牛馬) 등의 여러 가지 화폐가 있었으나 󰡔경국대전(經國大典)󰡕 「호전(戶典)」 국폐조(國幣條)에서는 포화(布貨)와 저화(楮貨)로서 통용하게 하다가, 이후 여러 논의를 거치면서 저화는 점점 사라지게 되고 포화(布貨)와 전문(錢文)이 혼용되는 시기를 거쳐, 결국에는 전문으로 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영조22년(1746)에 시행된 속대전(續大典)에서는 국폐(國幣)를 동전(銅錢)을 사용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목면(木綿, 혹은 木)은 무명베이고, 동(同)은 피륙의 묶음을 세는 단위이며, 대개 50필(疋)을 1동으로 치고 1필의 길이는 35척(尺)에 해당한다. 간혹 나오는 정목(正木)이란 곧 󰡔경국대전(經國大典)󰡕 「호전(戶典)」 국폐조(國幣條)에 의하면, 5승목의 국가정격의 무명베를 말한다. 󰡔대전속록(大典續錄)󰡕 「호전(戶典)」 잡령조(雜令條)에는 공사용면포(公私用綿布)인 정목(正木)의 정확한 규격을 승수(升數) 5승(升), 길이 35척(尺), 너비 7촌(寸)이상이라고 규정해 놓았다. 원래 木은 木棉에서 생장하는 목화를 통해 얻게 되는 무명베를 말하며, 布는 麻에서 얻어지는 삼베를 말하는 것이었다. 승(升)이란 피륙의 올수를 나타내는 말로서 1升이 실 80가닥을 통상 말하는 것으로 오승목은 400가닥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단위 너비에 들어가는 실 가닥의 올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즉 승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양질의 布木이며 낮을수록 이른바 추포(麤布)라는 저질(低質)의 포목이 되는 것이다.
6) 다짐[侤音]
‘고음(侤音)’이라고 쓰고 ‘다짐’이라고 읽는다. 지금의 각서, 확약서, 확인서 등의 의미이다.
7) 禮安縣監)
여기서의 ‘행(行’)은 조선시대 관직명을 기재하는 방식 중 하나인 ‘행수법(行守法)’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현임 관할수령이 시행한다.’의 의미를 가진 말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소

역대인물정보보기
인물관계정보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