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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9년경 김부필(金富弼) 남매 화회문기(和會文記)    
G002+AKS+KSM-XE.1559.4717-20101008.B001a_001_00300_001
 
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 경제-상속·증여-분재기
작성주체 발급: 김난종(金蘭宗) , 이용(李容)   , 김부필(金富弼) , 김씨(金氏) , 김부의(金富儀)
작성지역 경상도 예안현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작성시기 1559년   
형태사항 크기: 31.6×217.8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인장서명 朴恩訥妻金氏 1개(5×5, 흑색, 정방형)
서명(개) 착명:4 / 서압:4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 현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비고 출판정보: 『고전자료총서 82-2 광산김씨 오천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본 번역문은 2014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1 / 9. 분재기류 / 다. 화회문기 / 화회문기12 / 176 ~쪽
 
김부필 5남매가 돌아가신 부모님의 재산 중 논밭을 나누어 가진 문서
   1559년경김부필의 5남매가 함께 모여 부모 소유의 땅을 나누어 갖고, 각자의 몫을 기록한 문서이다. 이 자료에는 맏아들 김부필과 둘째아들인 김부의의 몫만을 기록해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3년상까지 마친 후에 자식들이 부모님의 재산을 나누어 갖는 경우가 많았다. 이 문서 역시 그러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5남매 모두의 몫을 기록한 문서를 먼저 만들고, 그 다음 각자의 몫을 기록한 문서를 만들어 나누어 가졌을 것이다. 특이하게 이 자료는 두 아들의 몫을 함께 기록해두었다. 아마도 이것은 김부필이 자식이 없어 동생 김부의의 외아들 김해가 그 재산을 물려받은 사정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1559년(명종14)김부필 남매가 함께 모여 부모 소유의 논밭을 나누어가진 문서.
내용 및 특징
   金富弼 5娚妹가 부모 소유 田畓을 和會하여 分執한 文記이다. 서문은 전하지 않고, 長子 김부필과 次子 金富儀의 몫만이 기록되었다. 문서의 말미에는 본 분재에 참여한 다섯 남매의 관직, 성명, 서명기록이 남아있다. 남자형제와 사위는 着名 및 署押을 하였고, 남편이 사망한 朴思訥 처는 인장을 날인하였다.
   본 자료와 같은 화회문기나 부모 생전에 재산을 나누어 주는 分衿文記는 전체 내용을 기록한 都文記와 각자의 몫만을 기록한 文記로 나누어 작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분재 내역이 많은 경우 문서 전체를 자녀 수만큼 작성하는 데에 노력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 자료는 도문기가 아니라 김부필김부의의 몫만을 기록한 문서로 보인다. 의문인 점은 왜 두 사람 몫을 한 문서에 기록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김부필은 無後하여 동생 金富儀의 외아들 金垓가 두 사람 모두를 계승하게 되었으므로, 김부필의 재산 또한 김해에게로 전계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부필 몫을 담은 문기와 김부의의 문기가 함께 전해지면서 현재의 모양으로 재가공되었을 수 있다. 혹은 문기 작성 당시에 이미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두 사람 몫을 함께 기록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김부필은 44세로 이미 중년의 나이였기 때문이다.
   서문 부분이 완전히 결락되어 작성연대 기록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1559년에 부모소유의 노비를 화회 분집하는 문기가 전하고 있어, 같은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산김씨가의 분재기 자료는 16세기까지는 노비와 전답을 나누어 작성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通訓大夫는 정3품 문관의 품계이고, 朝散大夫는 종4품 문관의 품계이다. 承重은 원래 아버지보다 아들이 먼저 죽었을 때 長孫이 祖父로부터 조상의 제사를 승계하여 奉祀者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조선조에서는 조상의 제사를 승계하여 奉祀者가 되는 것을 말한다.
   둘째 사위로 기록된 李容安東의 固城李氏로, 李肱의 아들이다. 號는 漁隱이며, 厚陵參奉을 지낸 退溪門人이다. 이용은 光山金氏 金緣의 딸과 혼인하였고, 豊山柳氏 謙菴柳雲龍 을 사위로 맞이하였다.
보물 제1018호 광산김씨예안파종가소장고문서
「朝鮮時代 相續制에 關한 硏究-分財記 分析에 의한 接近」, 崔在錫, 『歷史學報』53∙54 합집, 1972
            『조선전기의 재산상속』, 문숙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0
            「手決(花押)의 개념에 대한 연구 - 禮式으로서의 署名과 着押 - 」, 박준호, 『古文書硏究』 20, 2002
1차 집필자 : 김건우, 2차 집필자 : 권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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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子生員富弼
禮安
造麻老畓一石
權莫同畓一石
龍元田一石
井谷田十二斗
氷庫前田九斗
又田八斗
今山入畓三斗
廣峴畓五斗
希景家前田一石
上坪禹書房田一石
南彌畓三石五斗
花林畓八斗
居仁梨田畓四斗
麻田五斗
豐山
山伊作介畓六斗

栗木田四斗
瓦洞田五斗
道乃田七斗
奉孫田三斗
鄭都致田六斗
柿木田二斗
勿金作介畓十斗
臨河
川前田上次十斗
業入畓十八斗
安德
蘆谷畓十六斗
成卜田中邊十三斗
後坪田二石
公州
大棗木本畓九斗
三莫只田七斗
坪田五斗
居仁墓前伏瓦家一坐代田幷
奉祀
禮安瓦家一坐代田幷
芮崇田卄五斗
權書房田五斗
地境畓九斗
居仁拜掃位
梨田鄭達誠畓九斗
居仁權介同畓六斗
豐山舊家舍代田本
禮安承重代田伏小家村瓦
禮安上坪權書房田卄斗

장자(長子) 생원(生員) 부필(富弼)의 몫
예안(禮安)
조마로(造麻老)의 논 1섬[石].
권막동(權莫同)의 논 1섬.
용원(龍元)의 밭 1섬.
정곡(井谷)의 논 12말[斗].
빙고(氷庫) 앞의 밭 9말.
또, 밭 8말.
금산(今山)의 입답(入畓) 3말.
광현(廣峴)의 논 5말.
희경(希景) 집 앞의 밭 1섬.
상평(上坪) 우 서방(禹書房)의 밭 1섬.
남며(南旀)의 논 3섬 5말.
화림(花林)의 논 8말.
거인(居仁) 이전(梨田)의 논 4말.
삼밭[麻田] 5말.

풍산(豊山)
산이(山伊)가 작개(作介)하는 논 6말.
율목(栗木)의 밭 4말.
와동(瓦洞)의 밭 5말.
도내(道乃)의 밭 7말.
봉손(奉孫)의 밭 3말.
정도치(鄭都致)의 밭 6말.
시목(柿木)의 밭 2말.
물금(勿金)이 작개하는 밭 10말.

임하(臨河)
천전(川前)의 밭 상차(上次) 10말.
업입(業入)의 논 18말.

안덕(安德)1)
노곡(蘆谷)의 논 16말.
성복(成卜)의 밭 가운데 13말.
후평(後坪)의 밭 2섬.

공주(公州)
대조목(大棗木) 본답(本畓) 9말.
삼막지(三莫只)의 밭 7말.
평전(坪田) 5말.
거인의 묘(墓) 앞에 있는 기와집[瓦家] 1좌(坐)와 텃밭 모두.

봉사(奉祀)
예안의 기와집 1좌와 텃밭 모두.
예숭(芮崇)의 밭 25말.
권 서방(權書房)의 밭 5말.
지경(地境)의 논 9말.
거인 배소위(拜掃位)2)
이전 정달성(鄭達誠)의 논 9말.
거인 권개동(權介同)의 논 6말.

풍산의 옛 집과 텃밭 대신.
예안의 승중(承重)의 텃밭에 있는 작은 집 촌와(村瓦).
예안 상평 권 서방의 밭 20말.

차자(次子) 생원(生員) 부의(富儀)의 몫
예안
고로동(古老洞)의 논 1섬.
양청(凉廳) 앞의 밭 1섬.
운천(云川)의 논 7말.
귀덕(貴德)의 밭 6말.
금산이 작개하는 논 10말.

풍산
어동(於同)이 작개하는 논 8말.
후동(後洞)의 논 13말.
원산(元山)의 밭 1섬 5말.
마산포(馬山浦) 바깥쪽의 밭 13말.
김덕형(金德亨)의 밭 1섬.
구수(仇水)의 밭 10말.
임언(林彦)의 논 5말.
자방곡(者方谷)의 산이가 작개하는 논 위쪽 4말.
막동(莫同) 집 남쪽 밭 5말.
권막종(權莫終)의 논 6말.
명이(命伊)의 밭 4말.
지하(池下)의 논 7말.
김덕형의 밭 6말.
은복(銀卜)이 작개하는 논 10말.
옥련(玉連)의 입답(入畓) 10말.

임하
천전의 밭 상차차(上次次) 10말.
박 서방(朴西房)의 밭 16말.

안덕
감사(甘寺)의 논 6말.
두현(豆峴)의 논 8말.
의현(衣峴)의 논 3말.
두지(豆之)의 밭 13말.
두현의 밭 1섬.
덕현(德峴)의 밭 두 곳, 모두 10말.

영천
임하동(臨河洞)의 논 5말.
집 앞의 번전(反田)3) 10말.
풍산에 있는 기와집 1좌와 텃밭 모두.
안덕에 있는 기와집 1좌와 텃밭 모두.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진위현령(行振威縣令) 김난종(金蘭宗) (착명)(착압)
조산대부(朝散大夫) 전 행후릉참봉(前行厚陵參奉) 이용(李容) (착명)(착압)
성균생원(成均生員) 김부필 (착명)(착압)
고 성균생원 박사눌(朴思訥) 처(妻) 김씨(金氏) (도서)
필집(筆執) 성균생원 김부의 (착명)(착압)

[주석]

1) 안덕(安德):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옛 지명을 이른다. [정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안덕조]
2) 배소위(拜掃位)
배소위(拜掃位): 성묘와 무덤 관리 등을 위한 논밭을 이른다.
3) 번전(反田)
번전(反田): 논을 밭으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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