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자료센터

  • Open API
  • 사이트맵
  • 이용안내
  • 열린마당

한국고문서자료관

통합검색

  • 상세검색
  • 문자입력기

디렉토리분류

닫기

1566년 김연(金緣) 남매 화회문기(和會文記)    
G002+AKS+KSM-XE.1566.4717-20101008.B001a_001_00301_XXX
 
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 경제-상속·증여-분재기
작성주체 발급: 감사댁(監司宅) , 생원댁(生員宅) , 용궁댁(龍宮宅) , 훈도댁(訓導宅)
작성지역 경상도 예안현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작성시기 1566년 / 가정45년병인 10월 초2일   
형태사항 크기: 43.5×61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 현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비고 본 번역문은 2014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1 / 9. 분재기류 / 다. 화회문기 / 깃급문기13 / 178 ~쪽
 
김연 남매가 미처 나누지 못했던 노비를 그 자녀 대에 함께 모여 나누어 가진 문서
   1566년김연 형제자매들이 미처 나누어 가지지 못한 종들을 그 자식대에서 나눈 내용을 담은 문서이다. 김연의 어머니 이씨의 3년상이 끝난 1550년경김연의 형제자매들은 한 자리에 모여 부모 소유의 논밭과 집, 종들을 나누어 가졌다. 당시 멀리 함경도에 있던 종들은 그 수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나누지 못하고 후일을 기약하였는데, 16년이 지난 후에야 이와 같이 각자의 몫으로 나눈 것이다. 이미 사망한 김연 부부처럼 죽거나 매우 늙은 경우가 많아 그 자식들이 이 재산분할을 주도하였다.
 
1566년(명종21)김연 남매가 미처 분재하지 못했던 함경도 노비를 그 자녀대에 사촌들이 함께 모여 나누어 가진 문서.
내용 및 특징
   嘉靖45년(1566) 10월 초2일에 金緣 남매의 자녀들이 함께 모여 부모 대에 미처 分執하지 못한 함경도 奴婢들을 나누어 가진다는 내용의 문서이다. 김연 4남매는 어머니 李氏의 3년상을 마친 1550년경에 그 부모 소유의 노비와 전답을 나누어 가지는 和會文記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1566년이 되어서야 당시에 미처 분재하지 못한 함경도 노비를 나누고 있다. 1550년경에는 함경도 노비의 수가 제대로 파악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16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사이 김연의 형제자매들은 사망하거나 연로하여, 본 화회문기의 작성자는 그 자녀들이다. 문서의 뒷부분이 결락되어 작성자 및 증인들의 성명 기록이 전하지 않아 그 자녀 가운데 누가 이 문서의 작성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본문에 등장하는 “四寸”이라는 표현을 통해 김연의 형제자매의 자녀들이 함께 모여 분재하였음을 파악할 수 있다.
   “監司宅”은 江原道觀察使를 지낸 김연을 말한다. “生員宅”은 생원을 지낸 金綏를 말한다. “龍宮宅”은 용궁현감을 지낸 사위 金雨를 말한다. “訓導宅”은 訓導를 지낸 琴榟를 가리킨다.
   본문에 “以壯弱分揀執籌分衿”이라는 기록을 통해 노비의 노소를 분간하여 철저하게 均分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용궁댁 몫의 凡伊는 7세에 불과해 다른 집에 준 30세 春代나 10세의 五十同에 비해 심히 迷弱하므로 나이든 凡石(55세)을 추가로 용궁댁에 준다는 내용이 서문에 기록되었다. 철저한 平均 분배 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물 제1018호 광산김씨예안파종가소장고문서
「朝鮮時代 相續制에 關한 硏究-分財記 分析에 의한 接近」, 崔在錫, 『歷史學報』53∙54 합집, 1972
            「光山金氏禮安派의 세계와 그 사회∙경제적 기반」, 이수건, 『역사교육논집』,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과, 1980
            『조선전기고문서집성』, 정구복 외, 국사편찬위원회, 1997
            「手決(花押)의 개념에 대한 연구 - 禮式으로서의 署名과 着押 - 」, 박준호, 『古文書硏究』 20, 2002
            『조선전기의 재산상속』, 문숙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0
1차 집필자 : 김건우, 2차 집필자 : 권오정
 
자료로딩...
닫기



嘉靖肆拾伍年丙寅十月初二日成文爲臥乎事段 父母主同
和會分財時咸鏡道奴婢等乙生産未知乙仍于分衿不得敎
是如乎花名導良四寸等 叔母主敎令以壯弱分揀執籌
爲在果同道他邑奴婢及花名漏落人等乙良更良分衿
乎矣龍宮宅衿內凡伊段他宅春代五十同石乙辰執籌
尤甚迷弱乙仍于年老爲在凡龍〔石〕乙加給爲可乎後次子孫等雜
爲去乙等文記相考辨正爲乎事
監司宅
定平 婢今莊一所生奴凡龍年五十八
咸興 婢三月一所生婢億今年三十七
咸興 同婢二所生奴石乙伊年二十六
婢凡壽三所生婢石乙非年二十二
咸興 婢眞珠一所生婢春代年三十
定平 婢終今一所生婢今年生
生員宅
定平 婢今莊三所生婢凡時年五十二
婢凡時一所生奴石乙屎年三十
奴莫同一所生奴末乙驗伊年三十六
婢眞珠伊所生奴加知同年二十四
咸興 婢三月四所生奴五十同年十
婢凡時四所生奴石乙終年十一
龍宮宅
咸興 奴介叱同一所生婢三月年五十六
定平 奴老赤一所生奴命長年三十七
奴莫同三所生奴終伊年三十二
咸興上同 奴老赤二所生婢制飛年二十五
定平下同 婢今莊二所生奴凡石年五十五
奴凡石一所生婢凡伊年七
奴終伊一所生奴莫孫年二
訓導宅
婢今代一所生奴姜孫年五十七
奴介叱同二所生奴無金伊年四十三

1566년(명종 21) 10월 2일 문서를 작성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부모님 형제가 화회(和會)하여 재산을 나눌 때, 함경도(咸鏡道)의 노비들은 자식을 낳은 상황을 알지 못하여 몫을 나누지 못했다고 하셨다. 이름에 따라서 사촌(四寸) 등과 숙모님께서 장(壯)·약(弱)을 구분하고 집주(執籌)하여 몫을 나누었다. 같은 도(道), 다른 고을의 노비와 이름이 누락된 사람 등을 다시 나누었는데, 용궁댁(龍宮宅)의 몫 중, 범이(凡伊)는 다른 댁의 춘대(春代), 오십동(五十同), 돌진[石乙辰] 등을 집주할 때 너무 미약했기 때문에 늙은 범돌[凡石乙]을 추가로 지급하였다. 나중에 자손들이 잡담(雜談)을 하거든 이 문기(文記)를 살펴서 바로잡을 일이다.
감사댁(監司宅, 金緣)의 몫
정평(定平), 비(婢) 금장(今莊)의 첫째 노(奴) 범룡(凡龍), 58세.
함흥(咸興), 비 삼월(三月)의 첫째 비 억음(億今), 37세.
함흥, 이 비(삼월)의 둘째 노 돌이[石乙伊], 26세.
비 범시(凡時)의 셋째 비 돌비[石乙非], 22세.
함흥, 비 진주(眞珠)의 첫째 비 춘대, 30세.
정평, 비 종금(終今)의 첫째 비, 금년생(今年生).

생원댁(生員宅, 金綏)의 몫
정평, 비 금장의 셋째 비 범시, 52세.
비 범시의 첫째 노 돌시[石乙屎], 30세.
노 막동(莫同)의 첫째 노 말험이[末乙驗伊], 36세.
비 진주의 둘째 노 가지동(加知同), 24세.
함흥, 비 삼월의 넷째 노 오십동, 10세.
비 범시의 넷째 노 돌종[石乙終], 11세.

용궁댁(龍宮宅, 金雨)의 몫
함흥, 노 개똥[介叱同]의 첫째 비 삼월, 56세.
정평, 노 노치(老赤)의 첫째 노 명장(命長), 37세.
노 막동의 셋째 노 종이(終伊), 32세.
함흥(上同), 노 노치의 둘째 비 제비(制飛), 25세.
정평(下同), 비 금장의 둘째 노 범석(凡石), 55세.
노 범석의 첫째 비 범이, 7세.
노 종이의 첫째 노 막손(莫孫), 2세.

훈도댁(訓導宅, 琴榟)의 몫
비 금대(今代)의 첫째 노 강손(姜孫), 57세.
노 개똥의 둘째 노 무쇠이[無金伊], 43세.
…(원문 결락)…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소

역대인물정보보기
인물관계정보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