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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 사노(私奴) 석동(石同)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    
G002+AKS+KSM-XE.1593.4282-20101008.B027a_041_00216_002
 
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 경제-매매·교역-노비매매명문
작성주체 발급: 박대경(朴大慶) /수취: 석동(石同)
작성지역 강원도 고성군    / 강원도 고성군   
작성시기 1593년 / 만력21년계사 12월 초10일   
형태사항 크기: 49×207 / 점련,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인장서명 1개(적색, 정방형)
서명(개) 착명:3
점련자료 1593년 사노(私奴) 석동(石同) 소지(所志)
1593년 비주(婢主) 박대경(朴大慶) 초사(招辭)
1593년 증인(證人) 정열(鄭烈), 정방영(鄭邦榮) 초사(招辭)
1593년 사노(私奴) 석동(石同) 사급입안(斜給立案)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주촌 진성이씨 경류정  / 현소장처 : 안동 주촌 진성이씨 경류정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41 -안동 주촌 진성이씨편(Ⅰ)-』(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41 / 4. 증빙류 / (1) 입안 / 입안4-1 / 414 ~쪽
 
1593년 사내종 석동이 박대경으로부터 계집종 2명을 사고 받은 거래 계약서.
   1593년(선조26) 사내종 석동(石同)박대경(朴大慶)으로부터 계집종 2명을 사고 받은 거래 계약서이다. 서자인 박대경은 적모(嫡母) 이씨(李氏)의 제사를 모시라고 상속 받은 종 2명을 이번에 팔았다. 임진왜란 중이다 보니 생계가 막막한 탓이었다. 본 문서가 안동(安東)주촌(周村) 마을 에 터를 잡은 진성이씨(眞城李氏) 종가(宗家)에 전하니, 석동은 상전을 대신하여 거래에 나선 것이다. 종손인 이정회(李庭檜: 1542∼1613)가 당시 강원도횡성현감(橫城縣監에 재직중이었으니 종을 시켜 고성군의 노비를 사들인 것이다.
 
1593년(선조26) 사노 석동이 충찬위박대경으로부터 노비 2구를 사고 받은 거래 계약서.
   萬曆21년(1593) 12월 초10일, 忠贊衛朴大慶이 私奴 石同에게 婢 2口를 放賣하면서 작성해준 奴婢賣買明文이다. 박대경은 임란을 만나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嫡母 李氏의 奉祀條로 衿得하여 使喚하던 奴 仲山의 良妻幷産 1所生婢 夫田과 그 첫 번째 딸 注巨里를 판 것이다. 각기 32살과 9살 모녀이니 법정가격인 楮貨 7천장으로 가격이 정해졌다. 저화는 명목화폐에 불과하므로 실제로는 곡식과 포목, 牛馬 등이 지불되었을 터이나 이러한 내용은 본문에 나타나있지 않다.
   증인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박대경 처의 嫡娚이다. 박대경 夫妻는 庶子․庶女끼리 혼인한 사례인 것이다.
   본 문서는 安東 周村 眞城李氏 宗家에서 家傳되어온 것이다. 따라서 석동은 이씨가의 종으로 상전을 대신하여 본 거래에 나선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당시 宗孫 李庭檜(1542∼1613)가 橫城縣監으로 재직중이었으니 종을 시켜 강원도 지방의 노비를 사들인 것으로 보인다.
「安東 周村의 眞城李氏家와 그 所藏古文書의 性格」, 문숙자, 『고문서집성41: 안동 주촌 진성이씨편(I)』,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권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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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曆二十▣(一)年癸巳十二月初十日私奴石同處成文
右成文爲臥乎事叱段亂離之中飢死將迫乙
仍于嫡母李氏奉祀條以衿得使喚爲如乎
奴▣▣(仲山)良妻幷産一所生婢夫田壬戌生同婢一所
生婢注巨里乙酉生身貳口良中價折楮貨七
千張依數捧上爲遣後所生幷以永永放賣爲
乎矣本文記段他奴婢田畓幷付乙仍于許與不
得爲去乎後次良中別爲所有去等此文記以告官
卞正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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