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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 이벽(李擘)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    
G002+AKS+KSM-XE.1593.4717-20101008.B027a_041_00215_003
 
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 경제-매매·교역-노비매매명문
작성주체 발급: 권득룡(權得龍) /수취: 이벽(李擘)
작성지역 경상도 안동부    /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593년 / 만력21년10월15일   
형태사항 크기: 44×94 / 점련,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인장서명 1개(적색, 정방형)
서명(개) 착명:2
점련자료 1593년 소지(所志)
1593년 권득룡(權得龍) 소지(所志)
1593년 이벽(李擘) 사급입안(斜給立案)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주촌 진성이씨 경류정  / 현소장처 : 서울역사박물관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41 -안동 주촌 진성이씨편(Ⅰ)-』(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 본 이미지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제공한 것으로 저작권이 서울역사박물관에 있음.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41 / 4. 증빙류 / (1) 입안 / 입안3-2 / 411 ~쪽
 
1593년이벽이 권득룡으로부터 노비 3명을 사고 받은 거래 계약서.
   1593년(선조26)안동(安東)에 사는 유학(幼學) 이벽(李擘)전부장(前部將)권득룡(權得龍)으로부터 노비 3명을 사고 받은 거래 계약서이다. 권득룡은 원래 경기지방에 살던 자로 임진왜란을 당하여 온 가족이 왜적에게 붙잡혀 큰 고초를 겪었다. 몇은 죽고 몇은 살아 집을 잃고 떠돌다가 적을 피해 깊은 산중에 들어가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전쟁이 휴지기에 접어든 이해 가을에는 겨우 산에서 내려와 안동부(安東府) 북면(北面)에 사는 노비들을 인근 부잣집에 팔아 생계를 잇고자 하였다. 자신의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던 이 상속노비들을 용케 수소문하여 같은 고을에 사는 진성이씨(眞城李氏) 종갓집에 판 것이다. 전쟁 통에 상속문서도 잃어버렸기 때문에 안동부로부터 공증문서를 받아 주겠다고 본 계약서 말미에 약조하였다.
 
1593년(선조26)안동에 사는 유학 이벽이 전부장권득룡으로부터 노비 3구를 사고 받은 거래 계약서
   萬曆21년(1593) 10월 15일, 前部將權得龍安東에 사는 幼學 李擘에게 奴婢 3口를 放賣하면서 작성해준 奴婢賣買明文이다. 권득룡은 임란을 만나 一門이 倭敵에게 포획되어 몇은 살고 몇은 죽은 채 집을 잃고 流離하다가 산골로 깊이 들어가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였다. 그러던 중 이때 내려와 安東府 北面에 사는 祖上傳來奴婢를 인근 周村의 眞城李氏 宗家에 판 것이다. 본 문서 앞에 粘連된 所志로 보아 권득룡은 본디 京畿에 살던 자이다. 임란을 피해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다가 전쟁이 휴지기에 접어든 이때 소식을 듣고 내려와 소재가 파악된 노비들을 인근에 재력 있는 집에 팔아 생계방편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婢 莫今의 一所生婢 今從(23살)과 二所生奴 今福(20살), 그리고 금종의 첫딸 漢介(8살) 및 未産奴婢의 값은 楮貨 4천장으로 정해졌다. 壯奴婢 2구에 弱婢가 1구이니 법정가격으로 따지면 만장에 달한다. 비록 저화가 명목 밖에 없는 화폐이기는 하나 난중인 탓에 그 값조차 폭락한 것이다. 실제로 지불된 것은 木 26疋․單衣 하나․單天益 하나․白米 3斗․黃豆 3말․馬太 3말이다. 이 역시 난전과 비교하면 형편없어졌다.
   권득룡은 이 노비들을 상속받은 文記를 이미 亂初에 잃어버려 이제 이들을 팔려고 하니 相考할 舊文記가 없어 문제가 되었다. 목숨도 부지하기 힘든 형편이었으니 이런 문서들을 잘 챙기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이에 그는 노비들이 살고 있는 지방관아에서 立案을 발급받아 방매하겠다고 말미에 附記해 두었다. 실제로 그가 이러한 사정으로 입안을 요청하기 위해 安東大都護府에 올린 소지가 본 문서에 점련되어 있다.
   粘連文記에 포함되어 있는 본 문서는 말단이 결락되어 이하 입안과도 연결되어 있지 못하다. 그 사이 다른 문서가 있었을 수도 있다. 財主가 自筆로 작성한 것이므로 따로 筆執 기록은 없을 것이니 證保 이하로 결락된 한 줄의 내용을 알 수 없다. 증보와 상당히 간격을 두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다른 부기사항이 아닐까 추정된다.
「安東 周村의 眞城李氏家와 그 所藏古文書의 性格」, 문숙자, 『고문서집성41: 안동 주촌 진성이씨편(I)』,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권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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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曆貳拾壹年甲午拾月拾伍日安東居幼學李擘前明文
右明文爲臥乎事叱段遭亂以後一門被其倭賊所追或生或死
流離失巢艱難被▣(賊)▣(深)入山谷僅僅連命難保一家悶極之際適音
聞見下來爲乎矣安東府北面居生爲在祖上傳來婢莫今一所▣(生)
今從庚午生貳拾參同婢二所生奴今福甲戌生貳拾婢▣(今)
一所生婢漢介丙戌生及未産所生等幷以價折楮貨並只▣…(四)
千張價木貳拾陸疋半單衣壹單天益壹白米參斗黃豆▣…(參斗)
馬太參斗等乙交易依數捧上爲遣同奴婢等乙前後所生▣…(並以)
同前永永放賣爲▣(左)果祖上傳來文記段亂初倭賊被奪閪{門+失}乙仍
于各其所在居生奴婢等乙放賣爲良置文記相考似難奴婢等所
居官受立案以放賣爲去乎後次族類子孫等雜談爲去等
此文內乙用良告官辨正事
財主自筆前部將權得龍[着名]
證保孽族李仁恭[着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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