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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7년 윤별좌댁 노 애순(愛順) 가사매매명문(家舍賣買明文)    
G002+AKS+KSM-XE.1657.4682-20101008.B003a_003_01067_XXX
 
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 경제-매매·교역-가사매매명문
작성주체 발급: 최곤망(崔坤望) /수취: 애순(愛順)
작성지역 전라도 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작성시기 1657년 / 순치14년정유정월21일   
형태사항 크기: 44.7×36.7 / 낱장, 1장 / 종이 / 한자,이두
서명(개) 착명:3
소장정보 원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 현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3 -해남윤씨편 정서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본 번역문은 2016년-2017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3 / 9. 문권류 / 나. 가옥매매명문 / 가옥매매명문1 / 367 ~쪽
 
1657년(효종8) 최곤망(崔坤望)이 윤별좌댁 노 애순에게 백련동(白蓮洞)의 와가(瓦家)와 빈터, 집터 및 보리심은 밭을 팔면서 작성해 준 명문
   1657년 1월 21일에 유학 최곤망윤별좌댁 노 애순에게 기와집과 그에 딸린 텃밭을 파는 문서이다. 기와집은 백련동에 있으며 텃밭은 2마지기이다. 매매대금은 총 포목 100필을 지급하였다.
 
1657년 유학 최곤망이 윤별좌댁 노 애순에게 기와집과 텃밭을 파는 내용의 매매 문서
내용 및 특징
   1657년 1월 21일, 幼學 최곤망尹別坐宅 奴 愛順에게 기와집과 텃밭을 파는 매매명문이다. 尹別坐尹仁美의 택호로서 실질적인 매득자이다. 방매사유는 '요긴하게 쓰려고'라고만 언급하였고, 재산의 유래는 '母邊에서 매득하여 전래해 준'것이라 밝히고 있다. 白蓮洞에 있는 기와집 5칸, 빈 집터, 보리 심은 밭 2마지기를 木 2同(1同=50필)에 팔고 있다. 本文記에 관한 사항으로는,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을 때의 분재기는 다른 노비와 전답이 같이 기록되어 있어 줄 수 없고, 어머니가 처음에 매득할때의 本文記만 준다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본문기를 줄 수 없는 경우에는 해당문기중에 파는 재산에 해당하는 부분의 뒷면에 표시를 하고 서명을 하여 대신 증명으로 삼았다. 관의 공증을 받아 그곳에 관인을 찍기도 하는데 이를 背頉이라고 한다. 증인은 前司果尹順吉, 증보는 幼學 尹時夏가 필집으로는 幼學 尹善兼이 문서 작성에 참여하고 있다.

자료적 가치
   17세기 중반 해남지역의 가사 및 텃밭 매매 관련 사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古文書集成 3 : 海南尹氏篇 影印本』,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3
            『古文書集成 3 : 海南尹氏篇 正書本』,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6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韓國法制史攷』, 박병호, 법문사, 1974
1차 집필자 : 김건우, 2차 집필자 : 명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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順治十四年丁酉正月二十一日尹別坐宅奴愛順明文
明文事段要用所致以母邊買得傳來白蓮洞伏瓦
家五間及空基家基幷牟種貳斗落庫良中價木
貳同捧上爲遣同人上典宅良中永永放賣爲乎矣同生
和會衿分明文叚他田民幷付乙仍于許與不得爲旀當
初母邊買得本文記哛許與爲去乎後次雜談隅有去等
將此文告官卞正事
財主幼學崔坤望[着名]
證人前司果尹順吉
證保幼學尹時夏[着名]
筆執幼學尹善兼[着名]

순치 14년 정유 정월 21일 윤별좌댁 노 애순(愛順)에게 주는 명문
이 문서를 작성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긴요하게 쓸 일이 있어1) 어머니 측에서 매득하여 물려받은2)백련동(白蓮洞)3)에 소재한 와가(瓦家) 5칸(間) 및 빈터[空基], 집터(家基)와 보리를 심은 밭 2마지기를 목면 2동(同)을 받고 위 사람의 상전댁에 영구히 방매하되 동생들과 합의하여 나누어 가진 몫[衿分]4)을 기록한 명문(明文)에는 여타 전답과 노비들을 모두 기록해 두었기 때문에 넘겨 줄 수 없고, 당초 어머니 측에서 매득할 때 작성한 본문기(本文記)만을 넘겨준다. 이후에 쓸데없는 말이 생기거든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다.
재주(財主) 유학(幼學) 최곤망(崔坤望) [착명]
증인(證人) 전사과(前司果) 윤순길(尹順吉)
증보(證保) 유학(幼學) 윤시하(尹時夏) [착명]
필집(筆執) 유학(幼學) 윤선겸(尹善兼) [착명]


[주석]

1) 요용소치(要用所致)
‘긴요하게 쓸 곳이 있다’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명문에서 방매 이유로 사용하는 투식어이다. 조선후기로 오면서 정확한 거래 사유가 아닌 ‘요용소치(要用所致)’, ‘간난소치(艱難所致)’,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의 투식어를 사용하였다.
2) 모변매득전래(母邊買得傳來)
어머니쪽에서 구입하여 자신에게 물려준 몫.
3) 백련동(白蓮洞)
해남군 해남읍 백련동.
4) 깃분(衿分)
조선시대 상속이라는 특별한 용어는 없으며, 부모쪽에서 표현하여 나누어 준다[分給 또는 分與, 혹은 與]고 하고, 자녀 쪽에서는 나누어 가진다[分執], 깃을 나눈다[分衿] 또는 깃을 얻는다[衿得]라고 표현하여 상속받은 몫을 깃분[衿分]이라고 하였다. (박병호,『한국의 법』,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2,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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