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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0년 윤이산댁 노 홍렬(洪烈) 가사매매명문(家舍賣買明文)    
G002+AKS+KSM-XE.1680.4682-20101008.B003a_003_01068_XXX
 
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 경제-매매·교역-가사매매명문
작성주체 발급: 강천백(姜千白) /수취: 홍렬(洪烈)
작성지역 전라도 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작성시기 1680년 / 강희19년경신8월22일   
형태사항 크기: 52.3×48 / 낱장, 1장 / 종이 / 한자,이두
서명(개) 수촌:3 / 착명:1
소장정보 원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 현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3 -해남윤씨편 정서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본 번역문은 2016년-2017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3 / 9. 문권류 / 나. 가옥매매명문 / 가옥매매명문2 / 367 ~쪽
 
1680년(숙종6) 강천백(姜千白)이 윤니산댁 노 홍렬(洪烈)에게 자신 소유의 전답과 와가(瓦家)를 윤니산댁에서 경작하고 있자 이를 윤니산댁에 판매하면서 작성해 준 명문
   1680년 8월 22일, 강천백이 해남윤씨 윤니산댁의 노(奴)인 홍렬에게 기와집과 전답을 판 거래 문서이다. 거래대상은 현내일도면 죽정원에 있는 논 9마지기와 백련동에 있는 기와집 10칸이다. 그 재산은원래 강천백 소유였었는데, 찾아보니 윤니산댁에서 갈아먹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그것을 빼앗아 버릴 수 없어 판다고 하고 있다. 매매대금으로 포목 60필을 받았다.
 
1680년수군강천백이 윤니산댁 노 홍렬에게 기와집과 전답을 파는 매매명문
내용 및 특징
   1680년 8월 22일, 水軍姜千白尹尼山宅 奴 洪烈에게 기와집과 전답을 팔면서 작성해준 매매명문이다. 토지의 유래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몫으로 받은 것이라 밝히고 있다. 매매대상은 縣內 一道面 竹井員이 있는 玉字 字號의 논 9마지기(負數:25부4속)와 白蓮洞에 있는 기와집 10칸이다. 이 집과 땅은 원래 강천백 소유였는데 수소문하여 찾아 내어 보니, 윤니산댁에서 갈아먹고 있었다. 사대부가 여러해 동안 사용하던 것을 하루 아침에 빼앗을 수 없어서 그에게 파는 것이라고 방매사유를 말하고 있다. 매매대금으로 步木 60필을 받았다. 本文記는 해당 토지와 가옥이 형제들이 재산을 나눈 都文記에 적혀 있기 때문에 줄 수 없으므로, 도문기중의 거래된 재산 부분에 증인과 필집을 갖추어 수촌을 하고 爻周(동그랗게 표기하고 가위표를 함)하여 증명으로 삼는다고 하고 있다. 증인으로 사노 용이가, 증보로 사노 애안이, 필집으로 사노 만리가 문서작성에 참여하고 있다.

자료적 가치
   17세기 후반 해남지역의 가사와 전답을 거래한 사례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古文書集成 3 : 海南尹氏篇 影印本』,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3
            『古文書集成 3 : 海南尹氏篇 正書本』,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6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韓國法制史攷』, 박병호, 법문사, 1974
1차 집필자 : 김건우, 2차 집필자 : 명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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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熙十九年庚申八月貳拾貳日尹尼山宅奴洪烈明文
明文爲臥乎事段矣父衿得爲在海南縣內一道竹井員伏在
玉字畓玖斗落負數貳拾伍卜肆束庫及白蓮洞瓦家拾間乙
聞見推尋爲乎矣丙子年始叱同人上典宅執耕是乎所士夫家積
年收用之物乙一朝推尋爲難乙仍于畓庫及瓦家幷步木陸拾
捧上爲遣同人處永永放賣爲乎矣本文記段矣父同生分衿
文記
是乎等以許給不得都文記良中俱證筆手寸爻周爲去乎
此後矣身及子孫族類中更生謀計雜談則將此文告官卞
正事
畓家舍主水軍姜千白[左寸]
證人 私奴 龍伊[左寸]
證保 私奴 愛案[左寸]
筆執 私奴 萬里[着名]

강희 19년 경신 8월 22일 윤니산댁 노 홍렬(洪烈)에게 주는 명문
이 문서를 작성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아버지에게서 얻은 해남현(海南縣) 일도면(一道面) 죽정원(竹井員)에 있는 자호가 옥자(玉字)인 논 9마지기, 결부수가 15복[卜] 4속(束)인 곳과 백련동(白蓮洞)에 있는 와가(瓦家) 10칸(間)을 수소문하여 찾아내었는데, 병자년부터 위 사람의 상전댁에서 갈아먹고 있었다. 사부가(士夫家)에서 여러 해 거두어 들여 쓴 것을 하루아침에 찾아내어 가져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논과 와가를 모두 보목(步木) 60필을 받고 위 사람에게 영구히 방매(放賣)하되 본문기(本文記)는 우리 형제가 몫을 나눈 도문기(都文記)1)이기 때문에 내어주지 못하고, 도문기에 증인과 필집이 수촌을 찍고 말소하였으니, 이후 나와 내 자손 족류 가운데 다시 꾀를 내어 쓸데없는 말을 낸다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을 일이다.
답가사주(畓家舍主) 수군(水軍) 강천백(姜千白) [좌촌]
증인(證人) 사노(私奴) 룡이(龍伊) [좌촌]
증보(證保) 사노(私奴) 애안(愛案) [좌촌]
필집(筆執) 사노(私奴) 만리(萬里) [착명]

[주석]

1) 도문기(都文記)
도문서(都文書)라고도 한다. 도문기는 분재를 통해 생성된 문서 혹은 대지주 등이 자신의 재산을 한꺼번에 하나의 문서에 병합·열기하여 작성해둔 문서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도문기와 관련하여 일제의 구관습조사서에서는 ‘도문(都文)’이라고 지칭하고 있으며, ‘대지주로서 명문을 많이 갖고 있는 자가 화재, 수해 또는 기타 도난 때문에 망실하고 혹은 자손 중에 낭비자가 휴대하고 도망한 경우에는 첫째, 그 소유권을 증명하기 위하여 둘째, 장차 같은 재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종래의 수 매 또는 수 십 매의 명문을 종합하여 1개의 문서로 하여 다수의 전답을 병기 또는 열기하는 것이 있다. 이를 특히 ‘도문(都文)’이라고 한다. 이 도문으로 종합한 토지의 일부를 타인에게 매매, 양여하는 경우에는 구문기에 해당하는 도문을 신문기에 첨부하여 교부할 수 없으므로 매매한 토지의 면적 결수를 말살하고 효주(爻周)한다.’라고 하였다.(󰡔토지조사참고서』, 탁지부 편,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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