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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6년 이세득(李世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G002+AKS+KSM-XE.1756.4717-20101008.B001a_001_00340_XXX
 
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작성주체 발급: 금(琴) /수취: 이세득(李世得)
작성지역 예안현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작성시기 1756년 / 건륭21년 병자 11월 12일   
형태사항 크기: 35×53.8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서명(개) 착명:1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 현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비고 출판정보: 『고전자료총서 82-2 광산김씨 오천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본 번역문은 2014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1 / 10. 토지문기류 / 토지매매명문5 / 216 ~쪽
 
1756년 이세득이 금아무개로부터 토지를 사들인 매매계약서
   1756년금아무개이세득에게 밭을 팔아버리고 작성한 매매계약서이다. 이렇게 한 이유는 다른 전답을 사기 위함이었다.
 
1756년(영조32)금아무개가 이세득에게 전답을 파는 매매계약서.
내용 및 특징
   琴某李世得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土地賣買文記로 乾隆21년(1756) 11월 12일 작성되었다. 매매사유는 移買이며, 上平員에 있는 秋字田 9負 3斗落只를 23兩을 받고 팔았다. 土地 및 家屋 매매 시에는 해당 명문과 더불어 賣物의 권리내력과 관련된 舊文記를 인도하여야 하나, 이 明文에서는 本文記가 다른 田畓을 함께 기록하고 있으므로 許給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새롭게 작성한 新文記, 즉 이 明文만을 인도하여 後日의 憑考處로 삼도록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移買란 소유하던 토지를 방매하고 다른 곳의 토지를 구입한다는 의미이다. 秋字는 해당 토지를 千字文 순서로 매긴 字號를 말하며. 이 명문에서는 字號에 따른 地番은 기록되지 않았다. 仍于는 '지즈로', '지즈루' 등으로 읽으며 '말미암아' 라는 의미의 이두자이다. 負는 賦稅 부과를 위한 所出量에 따른 土地面積單位로, 우리말로는 '짐'으로 읽힌다. 斗落只는 마지기를 말하며, 한 말의 씨를 뿌릴 수 있는 면적을 말한다. 捧上은 '받자'라고 읽으며, '바치는 일'과 '받는 일' 어느 쪽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조선 초기 이두문에서는 대개 '받아내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筆執과 證保를 별도로 두지 않고 賣渡者가 自筆로 작성하고 着名하였다.
『광산김씨오천고문서』, 韓國精神文化硏究院,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2
            「朝鮮初期 5結字號의 成立過程」, 이영훈, 『古文書硏究』 12, 1997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韓國法制史攷』, 朴秉濠, 法文社, 1983
전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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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二十一年丙子十一月十二日李世得處明

明文爲臥乎事段切有移買處
上坪員伏在秋字田九負三斗落
庫乙價折錢文二十三兩乙依數
捧上爲遣右人處永永放賣
乎矣文記段他田畓幷付仍于
不得許給爲去乎後次如
有雜談是去等持此文
告官卞正事
自筆[着名]
금아무개가 이세득에게 전 3마지기를 전문 23냥에 팔며 작성한 매매문서

건륭 21년 병자년 11월 12일 이세득(李世得)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을 작성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긴히 필요하여 이매(移買)하려는 곳이 상평원(上坪員)에 소재한 추자(秋字) 밭으로 결부 수 9부이며 면적이 3마지기인 곳인데, 이곳을 전문 23냥으로 값을 정하여 수대로 정확히 받고 위 사람에게 영구히 방매하고 한다. 해당 전답과 관련된 본문기(本文記)에는1) 다른 전답도 함께 병기(倂記)되어 있으므로 부득이 넘겨주지 못한다. 만일 차후에 이의가 있다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청에 신고하여 바로잡을 일이다.
자필(自筆) 금(琴) (착명)

[주석]

1) 본문기(本文記)에는
거래 시 새롭게 생성되는 문서 즉 작성계약서인 그 명문을 신문기(新文記), 목적물과 관련한 기존의 권리증빙 문서를 구문기(舊文記) 혹은 본문기(本文記)라고 불렀다. 당시 관행상으로 신문기와 구문기를 모두 상대방에게 넘겨주는 이유는 넘겨주지 않은 문서를 이용하여 이중매매(二重賣買)등의 불법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목적에서였는데, 만약 다른 전답이나 재산이 구문기에 거래목적물과 함께 기록되어 있을 경우에는 새로 작성하는 명문 즉 신문기 상에 반드시 넘겨주지 못하는 사유를 기재하여야만 했다. 즉 거래대상뿐만 아니라 다른 전답이나 재산이 본문기에 함께 기록되어 있을 경우에는 이를 넘겨주게 되면 함께 기록된 다른 재산에 대한 권리증빙을 향후 방매인 측에서 할 수 없게 되는 폐단이 있다. 즉 여러 종류와 수량이 적힌 구문기에서 일부의 소유 재산을 떼어서 방매하는 경우 즉 할매(割賣)인 경우에는 구문기를 매득인 측에 넘겨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 경우에는 새로 작성하는 명문 즉 신문기 상에 본문기를 넘겨주지 못하는 사유를 ‘本文記段他田畓幷付乙仍于 不得許給(혹 許與, 出給)爲遣’ 식으로 반드시 명기하여 본문기를 넘겨주지 않고, 대신에 구문기의 전면(前面) 중에 기록되어 있는 매매대상인 토지 또는 가사, 노비 등의 표시처 상에 효주(爻周)를 하고 그 배면에는 배탈(背頉)사항을 기록하여 이를 관청에 신고하여 증명을 받는 것이 원칙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조선시대의 매매에 있어서 신문기의 작성과 구문기 기타의 증거서류를 매득인 측에 넘겨주는 것은 매매계약의 성립요건이며 매매사실의 사적 공시수단임과 동시에 그 증명수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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