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자료센터

  • Open API
  • 사이트맵
  • 이용안내
  • 열린마당

한국고문서자료관

통합검색

  • 상세검색
  • 문자입력기

디렉토리분류

닫기

1773년 박송악(朴松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G002+AKS+KSM-XE.1773.4717-20101008.B001a_001_00346_XXX
 
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작성주체 발급: 강찬봉(姜贊奉) /수취: 신응성(申應成) , 박송악(朴松岳)
작성지역 예안현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작성시기 1773년 / ▣(건)륭38년 계사 11월 27일   
형태사항 크기: 43×45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서명(개) 착명:3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 현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비고 출판정보: 『고전자료총서 82-2 광산김씨 오천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본 번역문은 2014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1 / 10. 토지문기류 / 토지매매명문11 / 217 ~쪽
 
1773년 박송악이 강찬봉으로부터 토지를 사들인 매매계약서
   1773년강찬봉박송악에게 논밭을 팔아버리고 본 매매계약서를 작성하였다. 이를 산 박송악은 관에 소속된 종 신분이었다. 비록 종이라고는 할지라도 자기 소유의 전답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1773년(영조49)강찬봉이 박송악에게 전답을 파는 매매계약서.
내용 및 특징
   田畓主인 姜贊奉이 官奴 朴松岳에게 전답을 방매하는 土地賣買文記이다. 매매대상인 土地는 邑內面 南山員 秋字 47田 14負 4束과 上平員 秋字 46畓 9負 등 모두 7斗落只이다. 매매가격은 85兩이며, 해당 토지의 權利來歷과 관련된 牌旨 1장과 本文記 3장을 함께 방매하였다. 田主인 姜贊奉과 證人인 官奴 尹進岩, 筆執 申應成이 성명을 쓰고 着名하였다.
   牌旨란 신분이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주는 일종의 委任狀이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 토지를 매매할 경우 직접 거래에 관여하지 않고, 奴婢의 名號로 賣渡, 買受하는 관행이 있었는데 이럴 때 노비에게 牌旨를 주어 賣買의 일을 委任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賤人들이 결재할 경우 着名이 아니라, 手寸이나 手掌을 하는데, 이 明文에서 官奴 進岩은 岩자를 변형시킨 着名을 하였다. 着名, 手寸, 手章 등의 쓰임이 신분에 따라 구별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能文善寫' 여부에 따른 것이다. 실제 양반가의 일원이라 하더라도 글을 모르는 경우는 手寸이나 手掌을 한 예가 있다.
   이 문서에서 말하는 本文記 3장과 牌旨 1장은 光山金氏 禮安派 소장 古文書 明文類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해당 문서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매매대상이 된 토지 중 烏川 上平員 秋字 田 9負 3斗落只와 관련된 문서는 모두 2장으로 1756년(英祖32) 琴某가 李世得에게 23兩을 받고 賣買한 明文과 1760년(英祖36) 다시 李世得姜贊奉에게 25兩을 받고 賣買한 明文이 있다. 또 邑內面 南山員 秋字 47田 14卜 4束 4斗落只의 토지 관련 문서는 私奴 介男이 1759년(英祖35) 상전을 대신하는 牌旨를 받고, 姜贊奉에게 33兩에 매매한 明文이 있다. 정리하면 姜贊奉1760년, 1759년에 모두 58兩을 주고 사들인 토지 두 곳을 1773년 85兩을 받고 판매한 셈이 된다. 本文記 3장은 이와 같은 토지의 소유내력을 증명하는 1756년, 1760년, 1759년의 명문이고, 牌旨 一張은 1759년 奴 介男이 상전에게 받은 牌旨를 말한다. 이 明文에서 보다시피 해당 明文들이 모두 土地와 함께 官奴 朴松岳에게 건네졌다. 光山金氏 가문에서 소장하게 된 내력은 1790년(正祖14) 田主 朴松岳이 烏川 金生員에게 80兩과 禾穀 8石의 가격으로 本文記 5장-이 明文과 前述한 3장의 明文, 1장의 牌旨-과 함께 전답을 판 明文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광산김씨오천고문서』, 韓國精神文化硏究院,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2
            「朝鮮初期 5結字號의 成立過程」, 이영훈, 『古文書硏究』 12, 1997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韓國法制史攷』, 朴秉濠, 法文社, 1983
전영근
 
자료로딩...
닫기



▣(乾)隆三十八年癸巳十一月二十七日官奴朴松岳明文
▣…▣爲臥乎事矣亦切有緊用處自己
買得是在邑內面南山員秋字四十七田拾肆
負肆束上坪員秋字四十六畓玖負七斗落只等庫
捧價錢捌拾伍兩後牌旨壹張本文記參張
幷以右人處永永放賣爲去乎日後良中
子孫族屬中幸有雜談是去等持此文告
官卞正事
田主驛吏姜贊奉[着名]
證官奴尹進岩[着名]
筆執書員申應成[着名]
강찬봉이 박송악에게 전답 7마지기를 전 85냥에 팔며 작성한 매매문서

건륭 38년 계사년 11월 27일 관노(官奴) 박송악(朴松岳)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은 작성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내가 긴히 필요한 곳이 있어서, 내가 스스로 직접 매득(買得)한 전답 중에서 읍내면(邑內面) 남산원(南山員)에 소재한 추자(秋字) 47번 밭으로 결부수가 14부 4속인 곳, 상평원(上坪員) 추자 46번 논으로 결부수가 9부인 곳 등 합계 면적이 7마지기의 곳들을 전문 85냥으로 값을 정해 받은 후 배지 1장과 본문기 3장을 첨부하여 위 사람에게 영구히 방매한다. 차후에 자손족속(子孫族屬) 중에 행여나 이의를 제기하거든 이 문서를 가지고 관청에 신고하여 바로잡을 일이다.
전주(田主) 역리(驛吏) 강찬봉(姜贊奉) (착명)
증인(證人) 관노(官奴) 윤진암(尹進岩) (착명)
필집지원(筆執之員) 신응성(申應成) (착명)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소

역대인물정보보기
인물관계정보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