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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 윤남미(尹南美) 불망기(不忘記)    
G002+AKS+KSM-XG.1714.4682-20101008.B003a_003_01287_XXX
 
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비망기 / 개인-생활-비망기
작성주체 발급: 윤남미(尹南美) , 윤선적(尹善積) , 윤이송(尹爾松) /수취: 종중(宗中)
작성지역 백련동    / 전라남도 해남군   
작성시기 1714년 / 갑오10월15일   
형태사항 크기: 37.5×92.3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 현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3 -해남윤씨편 정서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본 번역문은 2016년-2017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3 / 20. 불망기 / 불망기3 / 449 ~쪽
 
1714년(숙종40)에 윤선적 등이 선조 어초은 공의 묘소를 보호하기 위해 그 아래에 있는 경작지로부터 침경(侵耕)하여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기로 결정한 불망기.
 
주제
   1714년(肅宗40)에 윤선적 등이 백련동(白蓮洞)에 있는 선조(先祖) 어초은(漁樵隱) 윤효정(尹孝貞)의 묘소를 보호하기 위해, 윤이순(尹爾循)의 구가(舊家) 터 경작지로부터 산기슭까지 침경(侵耕)하여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기로 의논한 불망기이다. 침경의 바탕이 되는 경작지는 ① 백일홍(百日紅)을 심은 田 5되지기 ② 동변(東邊) 길 아래의 개천 남쪽 田 1마지기 ③ 개천 북쪽 田 3되지기 등이다. 이 경작지의 전주(田主)는 윤이순이고, 불망기의 필집은 윤덕희(尹德熙)인데, 각각 착명서압(着名署押)하였다. 이 의논에 참여한 사람은 윤선적∙尹南美∙尹爾松∙尹爾保∙尹世憲∙尹爾弼 등으로, 역시 모두 착명서압하였다. 말미에는 尹斗緖가 침경(侵耕)∙침입(侵入)의 폐단을 막기로 의논한 일을 재차 확인하고 착명서압하였다. 이 불망기의 발급연대는 갑오년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윤두서의 생몰 연대를 참고하면 1714년(肅宗40)임을 알 수 있다.

용어
   어초은(漁樵隱)윤효정의 호(號)이다.

인물
   윤효정(尹孝貞 1476~1543)은 26세 때 생원시에 합격한 후 벼슬길을 포기하고 후진 교육에 힘써 해남(海南) 지방의 문풍(文風)을 진작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그의 처가인 해남정씨(海南鄭氏) 집안으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음으로써 해남윤씨(海南尹氏) 집안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여 실질적으로 집안을 일으켰다. 윤덕희(允德熙)윤두서의 아들이다.

참고문헌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知識産業社, 1989. 檀國大學校 東洋學硏究所, 『韓國漢字語辭典』, 檀國大學校出版部, 1996. 장지영∙장세경, 『이두사전』, 정음사, 1983.
/ 작성일:200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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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午十月十五日 宗中僉會前不忘記
右文爲白蓮洞
先祖漁樵隱公墓所 故平地元田之外▣山脚以上 無非樹木長養之地 己▣▣百年 而爾循家舊在立岩下 故家舍廢棄 空基耕作之後 且値宗▣在遠 一年二年漸次侵耕 則固爲不當爲之事 今此僉會時 自顧▣廢 以杜後日無窮之獘事
百日紅樹田五升落
東邊路下磵南片田三段一斗落
磵北田三升落
田主 尹爾循(手決)
筆執 尹德熙(手決)
尹善積(手決) 今此爾循之田 其侵耕與否 無甚損益 而當此四
尹南美(手決) 山 日就濯濯之日 此而置之 則此後或因田畔
尹爾松(手決) 或因家後 不無稍漸侵入之獘 故今此諸宗僉會
尹爾保(手決) 時 同立此文 以杜後日無窮之獘
尹世憲(手決)
尹爾鼎(手決)
甲午十月十五日尹斗緖(手決)

갑오년(1714) 10월 15일 종중(宗中) 모임 전에 작성한 불망기.
이 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련동(白蓮洞)은 선조(先祖) 어초은공(漁樵隱公) 윤효정(尹孝貞)1)의 묘소이기 때문에 평지에 있는 원래의 전지 이외에 ▣산(▣山)기슭까지 모두 수목이 잘 자란 지역으로 이미 수백 년이 되었다. 그런데 윤이순(尹爾循)의 집이 예전에 입암(立岩)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집이 없어지고 빈터에 경작을 한 후, 그리고 종중이 멀리 있어서 1년, 2년 하면서 점차 땅을 침범하여 경작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였다. 이제 이렇게 종중이 모였을 때에 본인이 자원하여 그만두어서 훗날의 끝없는 폐해를 막도록 할 것이다.

백일홍(百日紅)을 심은 밭 5되지기
동변(東邊) 길 아래의 개천 남쪽 편전(片田) 3단(三段) 1마지기
개천 북쪽 밭 3되지기

전주(田主) 윤이순(尹爾循) [착명]
필집(筆執) 윤덕희(尹德熙) [착명]

윤선적(尹善積) [착명]
윤남미(尹南美) [착명]
윤이송(尹爾松) [착명]
윤이보(尹爾保) [착명]
윤세헌(尹世憲) [착명]
윤이정(尹爾鼎) [착명]

지금 윤이순의 밭이 침경(侵耕)하고 안하고는 크게 손익(損益)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방 산이 날마다 반질반질해지니2) 이를 그냥 둔다면 이 이후에 밭두둑이나 인가로 인하여 뒷날 점차 침입(侵入)하는 폐단이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 종중 사람들이 모였을 때에 함께 이 문서를 작성하여 훗날 있을 끝없는 폐단을 막고자 한다.

갑오년(1714) 10월 15일 윤두서(尹斗緖) [착명]

[주석]

1) 윤효정(尹孝貞: 1476~1543)
어초은(漁樵隱)은 윤효정의 호이다. 윤효정은 26세 때 생원시에 합격한 후 벼슬길을 포기하고 후진 교육에 힘써 해남(海南) 지방의 문풍(文風)을 진작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그의 처가인 해남정씨(海南鄭氏) 집안으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음으로써 해남윤씨(海南尹氏) 집안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여 실질적으로 집안을 일으켰다.
2) 반질반질해지니
원문의 ‘탁탁(濯濯)’은 소와 양이 초목을 해쳐서 온 산이 반질반질한 모양이다. 󰡔맹자󰡕「고자 상(告子上)」에 보인다. “우산(牛山)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다웠는데, 대국(大國)의 교외(郊外)이기 때문에 도끼와 자귀로 매일 나무를 베어 가니, 아름답게 될 수 있겠는가. 그 밤낮으로 자라나는 바와 우로(雨露)가 적셔 주는 바에 싹이 나오는 것이 없지 않건마는, 소와 양이 또 따라서 방목되므로 이 때문에 저와 같이 탁탁하게 되었다.(牛山之木, 嘗美矣, 以其郊於大國也, 斧斤伐之, 可以爲美乎! 是其日夜之所息, 雨露之所潤, 非無萌蘖之生焉, 牛羊又從而牧之, 是以若彼濯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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