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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3년 김득문(金得文) 문복록(問卜錄)    
G002+AKS+KSM-XG.1763.4580-20101008.B002a_002_00639_XXX
 
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문복록 / 종교·풍속-민간신앙-점복자료
작성주체 발급: 김득문(金得文)
작성지역 전라도 부안현 입하면 우반리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작성시기 1763년 / 계미6월정해삭초6일임진   
형태사항 크기: 31×43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 부안 우반 부안김씨  / 현소장처 : 부안 우반 부안김씨  
비고 출판정보 : 영인본: 『고문서집성 2 -부안 부안김씨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 정서본: 『고전자료총서 83-3 부안김씨 우반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3) / 본 이미지는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제공한 것으로 저작권이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있음. 역주본: 『고문서역주총서 2: 부안 부안김씨 우반고문서』(한국학중앙연구원, 2017)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2 / 8. 시문류 / (2) 문복록 / 문복록14 / 915 ~쪽
 
1763년(영조39) 김득문(金得文)이 초가집을 새로 짓고 새집의 신령에게 올리는 축문(祝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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維歲次癸未六月丁亥朔初六日壬辰 主人金得文 虔誠
焚香端拜 謹告于新成草屋名偉齋之
神曰 經營十載 始成于今 財力備辦 雖不甚夥 量入爲
出 經儲于玆 舊舍保守 豈煩爲此 隻身殘質 病入
四末 幸賴先靈 有叔伯仲 純乎孝友慈惠過予 心懸
宗廟 夙夜孜孜 感刻骨髓 死亦難報 唯知祖先 積
善有慶年當二毛 尙無嗣續 一善無稱 純德暇論 故
一以養病 資珍餘生 一以看書 須尋舊路 賴天之靈 庶幾
變化 不負爲生 令終可期 搆成四間 仁義禮智 東窓北
戶 明月淸風 南牖西軒 昭融而高 察邇眺遠 俯仰
上下 材仍舊貫 不甚費力 砌不庸石 何嫌於儉 于茅
而覆 索陶而羃 山之幽兮 溪澗浹流好鳥來馴 銀
鱗遊淵 籩豆靜嘉 奠品馨新
神其來格 伏惟尙
유세차(維歲次) 계미년(癸未年) 6월 정해삭(丁亥朔) 초6일 임진(壬辰)에, 주인 김득문(金得文: 1732~67)은 정성껏 향을 피우고 단정하게 절하며 새로 지은 초가집인 위재(偉齋)의 신령께 삼가 고합니다.
10년 동안 집을 지어 이번에야 비로소 완성을 하였습니다. 재력을 마련할 것이 비록 그다지 많지는 않았지만 수입을 계산하여 지출을 하고 그 돈을 여기에 쏟았습니다. 옛 집을 보수하는데 어찌 이렇게나 번거롭게 하였겠습니까? 홀몸에 약한 체질로 사지 끝까지 병이 들었는데, 다행히 선조의 영령 덕분에 숙씨(叔氏) 형제가 순수한 효성과 우애로 인자하고 은혜롭게 저를 찾아왔습니다. 종묘(宗廟)를 그리워하여 밤낮으로 부지런히 애쓰고 골수까지 감사한 마음을 새기니 죽어도 보답하기 어렵습니다. 오직 아는 것이라고는 조상이 적선하면 경사가 있다는 것인데 이모(二毛)의 나이1)가 되도록 아직까지 후사가 없으니, 하나의 선행이 맞지 않는데 순수한 덕을 논할 겨를이 있겠습니까? 그 때문에 한편으로는 병든 몸을 요양하면서 여생을 소중하게 보내고, 한편으로는 책을 보면서 옛 길을 찾아야 합니다. 천신의 도움으로 거의 변화하여 헛되지 않게 살아 좋은 끝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4칸의 집을 지으니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뜻하며, 동쪽으로 창을 내고 북쪽으로 문을 내니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들어올 것이며, 남쪽으로 창을 내고 서쪽으로 처마를 내니 밝게 트여 높게 날아오릅니다. 가까운 곳을 자세히 살피고 먼 곳까지 조망하며 우러러 위를 보고 아래를 굽어볼 수 있습니다. 재목은 옛 것을 그대로 써서 그다지 비용이 들지 않았고 돌계단에 돌을 쓰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한 것에 혐의쩍겠습니까. 이엉을 엮어 지붕을 덮고 새끼를 꼬아 지붕에 얹었습니다. 그윽한 산속에 계곡물이 흐르니 고운 새가 와서 지저귀고 은빛 물고기가 연못에서 노닙니다. 제기는 정갈하고 아름다우며 제수는 향기롭고 신선하니 신은 이르시어 흠향하소서.

[주석]

1) 이모(二毛)의 나이
32세의 나이를 말한다. 진(晉) 나라 반악(潘岳)의 추흥부(秋興賦) 서(序)에 “서른 두 살 먹었을 적에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余春秋三十有二 始見二毛]”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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