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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상언시시도(上言時時到)    
G002+AKS+KSM-XG.1892.0000-20101008.B029a_044_00215_YYY
 
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시도기 / 종교·풍속-관혼상제-시도기
작성시기 1892년 / 임진8월   
형태사항 크기: 16×21 / 합철, 1책 7면 / 종이 /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수곡 전주유씨 무실 종가  / 현소장처 : 안동 수곡 전주유씨 무실 종가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44 -안동 전주유씨편Ⅰ(수곡종택)-』(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44 / 7. 치부기록류 / (5) 상언시시도 / 상언시시도1~1-5 / 476 ~478쪽
 
1892년(高宗 29) 柳復起의 贈職을 上言할 당시의 시도기이다.
 
주제
   전주유씨 안동파의 ‘起家之祖’인 유복기의 증직을 이조에 상언할 당시에 작성된 시도기이다. 전체 6면으로 구성된 성책고문서로 이에 참여한 27명의 명단과 상언과정에서 사용된 비용 및 내역을 기록하고 있다.

인물
   유복기(1555~1617)는 안동 입향 이후 전주유씨의 사회적 성장과 학문적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김성일(鶴峰)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이황의 학문을 계승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의병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는 영주•예안에 소재한 선영을 지성으로 관리하는 한편 기민 구호에 노력하였다. 그리고 성품이 근검•인후하여 동종과 향리 사이에 인망이 높았다. 다른 한편 만년에 자손들의 교육을 위해 鵝岐山 남쪽에 岐陽書堂을 건립하였다. 이 기양서당은 이후 전주유씨의 학문의 산실이 되었고, 유복기는 자손들로부터 가문을 일으킨 선조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비고
   안동 전주유씨(水谷宗宅)가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에는 당시 유복기의 증직상언과 관련된 ‘啓目’이 1건 존재한다. 이를 통해 보면 유복기는 ‘承旨’의 직을 증직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古文書集成』44(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허원영 / 작성일:200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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