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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년 시(詩)    
G002+AKS+KSM-XI.0000.0000-20101008.B001a_001_01295_XXX
 
분류 고문서-시문류-시 / 교육·문화-문학·저술-시
작성주체 발급: 감호 박지철(鑑湖 朴之喆) , 권학광(權學光) , 기진 김중발(基進 金仲發) , 김갑련(金甲鍊) , 김관진(金觀進) , 김성련(金星鍊) , 김양련(金良鍊) , 김홍교(金弘敎) , 낙유(洛儒) , 벽산자 김중현(碧山子 金重玹) , 수리암(數理菴) , 신한성(申翰成) , 아호 박종윤(鵝湖 朴宗潤) , 이명길(李命吉) /수취: 후조당(後凋堂)
작성시기 靑鼠3월상한, 갑자1월하한, 갑자10월중한
추정시기 갑자년
형태사항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 현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비고 출판정보: 『고전자료총서 82-2 광산김씨 오천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 본 이미지는 원본 소장처인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의 협조에 의해 촬영되었음. 본 번역문은 2014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1 / 21. 시문 / 시14 / 450 ~쪽
 
박지철 등이 지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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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宗君 得中州百日梅一株 登盆愛翫 敬次老先生後凋堂梅韻要
 ▣… 名勝遂忘拙續貂 以資一粲
 人說西湖蠟雪梅 移根東土爛盈開 氷姿自古吾家物 索笑巡簷願不頹
 疑是弄珠漢水梅 西來東蹈洛濱開 靑丘自有培根地 一脈王春賴不頹
 

        景輝稿
  
  後凋堂盆梅詩序
  後凋堂主人金夢賚戚君 求得盆梅一本於龜城人 藏之家甚愛玩之
 是謂中國百日梅也 花無十日紅 而是梅能支百日 信凌霜雪 而節益堅者也 嘗見錢牧齋有學集 以爲獨西山老梅尙無恙 嘖嘖稱不己 噫腥羶天地 能保釆薇之節者 亦植物中特立獨行而不羣者也 豈不異哉 今是梅也 移中國而來東土 又托根於後凋堂盆中者 實不偶然 安知是梅也 不爲錢翁所稱西山梅一種耶 嗚呼▣…▣花 主人爲之詩 以慰梅兄 且求和於予 遂續貂以寄
 安得中州百日梅 移來東土屋中開 淸香應厭腥塵▣ 植物猶知節不頹
 聞道丁寧胡地梅 誰敎一朶渡江開 氷魂亦解蹈東義 爲是海波尙未頹
 冉冉淸香三月梅 後凋堂裏滿枝開 主人爲愛凌霜節 漆齒卉罇未可頹椶櫚乃是日本卉植而並厠其盆於梅兄節花下故云未可頹耶
 如何臘雪樽中梅 五出踈英百日開 應是東君春剩借 不隨桃李片時頹
   靑鼠暮春上澣九十翁李命吉稿

  伏次後凋梅堂盆梅韻寄主人案下
 巖栖移本後凋梅 玉骨瘐形晩節開 爾是花中君子譜 肯隨桃李一般頹

  又
 一點皇春百日梅 明江落後復覩開 東人亦有匪泉感 培爾孤根願不頹
   碧山子金重玹稿

  敬次後凋堂盆梅韻
 玉堂當日憶盆梅 種得幽軒雪裏開 聊與寒松同晩節 後凋其實孰能頹
  鵝湖朴宗潤再拜謹呈
 歲暮襟期起訪梅 花中仙子雪中開 主人新得淸香味 食實孫枝世不頹
   鑑湖朴之喆拜伏呈
  甲子元月下澣

  謹次後凋堂盆梅韻
 陶先當年詠此梅 淸眞不改舊時開 主翁詩酒風流足 月露瓊葩案上頹
                     金良鍊
 辭祿曾同吳市梅 徵君信道古雕開 盆叢八世賢孫守 氈業瓊香兩不頹
                     金甲鍊
 亭亭玉立後凋梅 曾被陶山道顔開 遺腹至今人愛惜 古堂寒樹莫敎頹
                     金弘敎
 君子叢中舊植梅 歲寒瓊蘂爲誰開 癯容尙帶巖西色 留與孫枝枝不頹
                     金星鍊
 萬里孤根百日梅 淸眞獨伴後凋開 也知舊國腥塵暗 故避凡彙一例頹
                     金弘敎追次

  謹次百日梅詩
 中原萬事眼梅梅 百日寒香誰向開 避地巡簷相得意 主翁忘却暮齡頹
 梅遇主人主遇梅 雪鬢霜蘂對顔開 花香世美宜靑史 明代風流也不頹
 一脈王春一樹梅 爲君喬木有韓開 孤根願借新亭畔 免被兒孫志節頹
 吾先祖聲川公丙難後作新亭有感
 憤詩亭久廢而始新之故末句云爾
 

 歲甲子端陽月下浣申翰成謹稿

 天然古色一枝梅 君子里中雪裏開 獨葆淸香蹈海節 培根百世永無頹
  族弟洛儒拜稿

  謹呈烏川金院長梅字韻
 君子堂前處士梅 西湖物色海東開 寒香亦解後凋意 雪臘殘英節不頹
  權學光拜稿

  謹次百日梅韻奉呈 後凋堂案下
 後凋堂似壽春梅 向北廂簾久未開 萬里歸來同氣友 共君勁鐵不容頹
 花中名勝是寒梅 獨擅江南百日開 渡海逈無塵土涴 貞心肯許雪霜頹
 金基進仲發稿

 東來分別錦江梅 百日遐心爲孰開 遙托後凋高土宅 日親相制暮齡頹
 歲暮幽襟友以梅 靜中相對笑顔開 貞香與作庭松契 索共後凋永不頹
 期晩黃昏未知梅 栽培窮巷暗香開 巡簷日與論心事 喚作山妻相?玉頹
   下生金觀進再拜

  敬次後凋堂丈百日梅韻
 聞道昻藏百日梅 何心獨向後凋開 待他細入調羹手 枝葉蔥蘢永不頹
 主人性度愛寒梅 桃李牧丹不敢開 瀟酒廬前科影裏 後凋餘蔭與無頹
   侍生金宗璞拜稿

 君家誰送異邦梅 百草㫵中瀾漫開 臘月寒天香信早 正宜携酒玉山
 越海移來盆上梅 殊邦春柳耻爭開 三冬百日香先動 自笑衆芳雪裏頹
   甲子陽月中澣數理菴稿

(종군(宗君)이 중국의 백일매(百日梅) 한 그루를 얻어 화분에 심은 뒤 아끼며 감상했는데 노선생[退溪]께서 후조당(後彫堂)의 매화에게 주었던 1)에 차운하더니 나에게 화답을 요구했다. ■…■ 마침내 졸렬한 솜씨를 잊은 채 형편없는 시편으로 이음으로써 한 번 웃을 거리를 제공한다)

人說西湖蠟2)雪梅 사람들은 말하지. 서호에서 납설(臘雪)3) 맞던 매화가
移根東土爛盈開 우리나라로 뿌리를 옮기더니 흐드러지게 피었다고.
氷姿自古吾家物 얼음처럼 깨끗한 자태4)는 예부터 우리 집안의 가풍이 므로
索笑巡簷願不頹 함께 웃고자 처마 밑 서성대며 길이 쇠하지 않길 기원 하네.5)
疑是弄珠漢水梅 아마도 구슬 가지고 놀던 한수(漢水)의 매화일 텐데6)
西來東蹈洛濱開 동서로 왕래하다가 여기 낙동강 가에서 꽃을 피웠네.
靑丘自有培根地 우리나라에는 본래부터 뿌리 북돋아주는 땅 있으니
一脈王春賴不頹 왕춘(王春)7)의 계통이 그 덕에 사라지지 않은 게지.
경휘(景輝)가 쓰다.

(후조당분매시서(後凋堂盆梅詩序))
후조당주인 김몽뢰(金夢賚) 척군(戚君)이 분매(盆梅) 한 본(本)을 구성인(龜城人)에게 얻어 집에 보관했는데, 그것이 중국의 백일매(百日梅)라 여기면서 몹시 아끼며 감상했다. 꽃은 열흘 동안 붉게 피는 법이 없지만 이 매화는 백 일이나 거뜬히 지탱하니 진실로 눈서리를 능멸하면서 그 절개가 더욱 굳어지는 자이다. 언젠가 전목재(錢牧齋)8)의 󰡔유학집(有學集)󰡕을 본 적이 있는데 유독 서산(西山)9)의 늙은 매화만이 아직까지 무탈하다고 말하며 끊임없이 감탄하며 칭송했다. 아! 비린내와 누린내가 온 천지에 진동하는 때, 고사리 캐어 먹는 절의를 능히 보존한 자도 식물 가운에 우뚝 선 채 홀로 거닐며10) 무리에 섞이지 않은 자가 아니겠는가! 어찌 기이하지 않겠는가! 지금 이 매화가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옮겨 왔고 또한 후조당의 화분 속에 뿌리를 내린 것은 진실로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 매화가 전옹(錢翁 : 錢謙益)이 칭송했던 서산 매화의 한 가지 종류가 아니라는 것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아아! ■…■ 주인이 그 시를 지어 매형(梅兄)11)을 위로하고 나에게 화운을 요구하기에 형편없는 시편으로 이어 부치는 바이다)

安得中州百日梅 어떻게 중원의 백일매(百日梅)를 얻어
移來東土屋中開 우리나라로 옮겨 와 집안에 꽃을 피웠는지?
淸香應厭腥塵■12) 맑은 향기도 비린내에 물드는 걸 싫어하니
植物猶知節不頹 식물조차 오히려 절개 지킬 줄 아는구나.

聞道丁寧胡地梅 듣건대 정녕 오랑캐 땅 매화라 하던데
誰敎一朶渡江開 누가 한 송이 꽃을 강 건너 피게 했을까?
氷魂亦解蹈東義 얼음 같은 영혼13)도 동해로 뛰어드는 절의를 알기에14)
爲是海波尙未頹 이 때문에 바다파도에도 여전히 퇴락하지 않은 게지.

冉冉淸香三月梅 청아한 향기 은은한 3월의 매화가
後凋堂裏滿枝開 후조당(後凋堂) 안에 가지 가득 피었네.
主人爲愛凌霜節 눈서리 능멸하는 절개를 주인이 사랑하기 때문에
漆齒卉罇未可頹 일본산 화초도 퇴락하지 못하는구나.
【종려(椶櫚)는 바로 일본 화초인데 그 화분을 매화 아래에 함께 두었으므로 ‘퇴락하지 못하는구나[未可頹]’라 말한 것인가!】

如何臘雪樽中梅 어찌하여 납설(臘雪)의 화분 속 매화는
五出踈英百日開 성긴 꽃잎 다섯을 내어 백 일 동안 피는가?
應是東君春剩借 응당 동군(東君)15)에게 봄기운 넉넉히 빌렸기에
不隨桃李片時頹 잠시도 복사꽃, 오얏꽃 따라 지지 않는 게지.

청서(靑鼠)16) 3월 상순에 아흔 노인 이명길(李命吉)이 쓰다.

(후조당 매화 시에 삼가 차운하여 주인의 안하(案下)에 부치다)
巖栖移本後彫梅 암혈에 은거하다가 이곳으로 옮겨 온 후조당 매화가
玉骨瘐形晩節開 옥 같은 골격, 수척한 모습으로 늦은 계절에 피었네.
爾是花中君子譜 너는 꽃 가운데 군자의 계통이거늘
肯隨桃李一般頹 복사꽃, 오얏꽃 따라 똑같이 퇴락할리 있겠는가!

(또)
一點皇春百日梅 중화의 봄을 잠시나마 겪었던 백일매(百日梅)가
明江落後復覩開 명나라 강가에서 떨어진 뒤 여기서 다시 꽃피운 걸 보 다니.
東人亦有匪泉感 우리나라 사람도 비천(匪泉)의 감회가 있으므로17)
培爾孤根願不頹 네 외로운 뿌리 북돋으며 퇴락하지 않길 바라노라.

벽산자(碧山子) 김중현(金重玹)이 쓰다.

(후조당 매화 시에 공경히 차운하다)
玉堂當日憶盆梅 언젠가 옥당(玉堂)18)에서 분매(盆梅)를 생각했거늘
種得幽軒雪裏開 호젓한 집안에 심어 눈 내릴 때 꽃을 피웠구나.
聊與寒松同晩節 겨울 소나무와 만년의 절개 함께하려 하니
後凋其實孰能頹 실제로 뒤늦게 시듦을 그 누가 무너뜨릴까!

아호(鵝湖) 박종윤(朴宗潤)이 두 번 절하며 삼가 올리다.

歲暮襟期起訪梅 세밑에 몸을 일으켜 매화를 찾아갔더니
花中仙子雪中開 꽃 중의 신선이 눈 속에서 꽃을 피웠네.
主人料得淸香味 생각건대 주인은 맑은 향기 만끽할 것이요
食實孫枝世不頹 매실 먹은 자손도 대대로 퇴락하지 않으리.

감호(鑑湖) 박지철(朴之喆)이 절하며 삼가 올리다.
갑자(甲子, 1804년, 순조 4) 정월 하순.

(후조당 분매(盆梅) 시에 삼가 차운하다)
陶先當年詠此梅 퇴도(退陶) 선생께서 당시 이 매화를 읊조렸거늘
淸眞不改舊時開 맑고 참된 자태가 옛날 꽃 피던 때와 다름없구나.
主翁詩酒風流足 주인옹의 술 마시고 시 짓는 풍류가 넉넉한지라
月露瓊葩案上頹 이슬 내리는 달밤, 하얀 꽃이 책상 위에 소복하네.
김양련(金良鍊)

辭祿曾同吳市梅 작록을 버린 것은 오나라 저자의 매복(梅福)19)과 같고
徵君信道古雕開 그 옛날 칠조개(漆雕開)처럼 징사(徵士)로서 도를 믿 었지.20)
盆叢八世賢孫守 어진 자손들이 팔대에 걸쳐 화분 속 떨기를 지킨 덕택 에
氈業瓊香兩不頹 선대의 가업21)과 그윽한 향기가 모두 퇴락하지 않았구 나.
                      김갑련(金甲鍊)

亭亭玉立後凋梅 옥과 같은 자태로 우뚝 서 있는 후조당 매화
曾被陶山道顔開 일찍이 도산께서 활짝 웃었다고 말한 적 있지.
遺馥至今人愛惜 남겨진 그 향기를 지금까지 사람들이 아끼나니
古堂寒樹莫敎頹 옛 집의 매화로 하여금 퇴락하지 않게 할지어다.
                      김홍교(金弘敎)

君子叢中舊植梅 군자 떨기22) 가운데 옛날에 심었던 매화는
歲寒瓊蘂爲誰開 엄동설한에 누굴 위해 아름다운 꽃 피웠나?
癯客尙帶巖栖色 여윈 나그네가 여전히 은자의 낯빛 띠고 있으니
留與孫枝枝不頹 자손들에게 남겨 주어 퇴락하지 않게 할지어다.
                      김성련(金星鍊)

萬里孤根百日梅 만 리 멀리서 온 백일매(百日梅) 한 그루가
淸眞獨伴後凋開 맑고 참된 자태로 소나무와 짝하여 피었다네.
也知舊國腥塵暗 알겠구나. 고국이 비릿한 티끌로 자욱해지자
故避凡彙一例頹 무리들과 나란히 쇠퇴하는 걸 짐짓 피하려 했음을.
                      김홍교(金弘敎)가 나중에 차운하다.
(백일매 시에 삼가 차운하다)
中原萬事眼梅梅 중원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에 눈이 침침하거늘
百日寒香誰向開 백 일 간의 청량한 향기, 누구를 향해 피우리오!
避地巡簷相得意 재앙 피해 처마 밑 서성대며 서로의 뜻 이해하니
主翁忘却暮齡頹 주인옹은 늘그막의 퇴락함조차 까맣게 잊었다네.

梅遇主人主遇梅 주인을 만난 매화와 매화를 만난 주인
雪鬢霜蘂對顔開 허연 귀밑털과 서리 맞은 꽃송이가 반갑게 마주하네.
花香世美宜靑史 대대로 아름다운 향기는 청사(靑史)에 적을 만하니
明代風流也不頹 태평성대의 풍류가 또한 퇴락하지 않았구나!

一脈王春一樹梅 왕춘(王春)의 계통 잇는 한 그루 매화가
爲君喬木有韓開 그대 고향을 위해 삼한(三韓)에 피었구나.
孤根願借新亭畔 외로운 뿌리 빌려 신정(新亭) 가에 심는다면
免被兒孫志節頹 자손들의 지조와 절개가 퇴락함을 면할 텐데.
【우리 선조 성천공(聲川公)23)은 병자호란 후, 신정(新亭)을 짓고 나서 감분(感憤) 시를 지었는데, 누정이 오래되어 황폐해지자 새롭게 중건했다. 그러므로 말구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갑자(甲子) 5월 하순에 신한성(申翰成)이 삼가 쓰다.

天然古色一枝梅 자연스럽고 예스러운 한 가지 매화가
君子里中雪裏開 군자 마을에서 눈 속에 꽃을 피웠다네.
獨葆淸香蹈海節 맑은 향기 품은 채 동해로 뛰어든 절개를 홀로 지켰으니
培根百世願無頹 뿌리 북돋아 백세토록 퇴락하지 않길 바라노라.

족제(族弟) 낙유(洛儒)가 절하며 쓰다.

(매자(梅字) 운에 차운하여 오천(烏川)의 김원장(金院長)에게 바치다)
君子堂前處士梅 군자(君子) 집 앞의 처사(處士) 매화
西湖物色海東開 서호(西湖)24)의 풍광이 해동에 펼쳐졌구나.
寒香亦解後凋意 향기로운 매화 또한 늦게 시든다는 의미를 아는지
雪臘殘英節不頹 납설(臘雪)의 쇠잔한 꽃잎도 절의가 쇠하지 않았네.

권학광(權學光)이 절하며 쓰다.

(삼가 백일매(百日梅) 운에 차운하여 후조당(後彫堂) 안하(案下)에 바치다)
後凋堂似壽春梅 후조당은 수춘(壽春) 출신의 매복(梅福)과 같아25)
向北廂簾久未開 북쪽 향해 주렴 내린 채 오래도록 열지 않았지.
萬里歸來同氣友 만 리 길 돌아와 동기와 우애롭게 지내면서도
共君勁鐵不容頹 그대와 함께 담금질하며 퇴락함을 용납지 않네.

花中名勝是寒梅 꽃 중의 최고 명성은 바로 매화이러니
獨擅江南百日開 강남을 독점하며 백 일 동안 피었다네.
渡海逈無塵土涴 바다 건너와 더러운 흙먼지 조금도 없으니
貞心肯許雪霜頹 곧은 마음이 눈서리에 퇴락할리 있겠는가!

김기진(金基進) 중발(仲發)이 쓰다.

(후조당(後凋堂) 주인의 안하(案下)에 바치다)
東來分別錦江梅 동쪽으로 오며 금강(錦江)의 매화와 작별했으니
百日遐心爲孰開 백 일 동안 은둔하는 마음을 누구 위해 펼칠까?
遙托後凋高士宅 아득히 후조당의 고결한 선비 댁에 의탁하여
日親相制暮齡頹 나날이 가까이 지내며 노쇠함 서로 막는다네.

歲暮幽襟友以梅 세밑의 울적한 회포로 매화와 벗하면서
靜中相對笑顔開 고요히 서로 마주하니 환히 웃는 얼굴이네.
貞香與作庭松契 순정한 향기로 뜨락의 소나무와 약속하기를
索共後凋永不頹 늦게 시듦 함께 좇으며 길이 퇴락치 말자고.

期晩黃昏未和梅 노년에 만날 기약 늦어져 매화시에 화답치 못했거늘
栽培窮巷暗香開 궁벽한 골목에 심어 기르자 은은한 향기가 퍼졌다네.
巡簷日與論心事 처마 밑을 서성대며 날마다 심사를 함께 논하고
喚作山妻相玉頹 산골 마누라라 부르며 어여쁜 얼굴 시듦을 살핀다네.
하생(下生) 김관진(金觀進)이 두 번 절하다.

(후조당(後凋堂) 어르신의 백일매(百日梅) 시에 공경히 차운하다)
聞道昂藏百日梅 헌걸찬 기상 뽐내는 백일매라고 들었는데
何心獨向後凋開 어떠한 마음으로 홀로 후조당에 피었는가?
待他細入調羹手 훗날 섬세하게 국을 조미하는 솜씨 기다린다면26)
枝葉蔥蘢永不頹 무성한 줄기와 잎사귀는 영원히 쇠락하지 않으리.

主人性度愛寒梅 주인의 성품과 도량이 매화를 아끼는 탓에
桃李牧丹不敢開 복사꽃, 오얏꽃, 모란은 감히 꽃을 피우지 못하네.
瀟洒窓前斜影裏 맑고 깨끗한 창문 앞 비낀 그림자 속에서27)
後凋餘蔭與無頹 후조당의 음덕은 매화와 함께 퇴락치 않으리.

시생(侍生) 김종박(金宗璞)이 절하며 쓰다.

君家誰送異邦梅 누가 그대 집에 이국의 매화를 보냈을까?
百草㫵中瀾漫開 온갖 화초 떨어졌거늘 저 혼자 흐드러지게 피었구나.
臘月寒天香信早 섣달 겨울에 향기로운 소식 일찌감치 찾아왔으니
正宜携酒玉山頹 그야말로 술동이 끼고 흠뻑 취하기 안성맞춤이라네.

越海移來盆上梅 바다 넘어 옮겨 온 화분 속 매화는
殊邦春柳耻爭開 이국 봄버들이 다투어 핌을 부끄럽게 여기지.
三冬百日香先動 겨울 석 달, 백 일 내내 향기 먼저 풍기며
自笑衆芳雪裏頹 온갖 꽃들이 눈 속에 시듦을 비웃는다네.

갑자(甲子) 10월 중순에 수리암(數理菴)이 쓰다.

[주석]

1) 노선생께서 ∼ 매화에게 주었던 시
󰡔退溪集󰡕 권5, 「續內集」에 수록된 ‘庚午寒食 將往展先祖墓於安東 後凋主人金彦遇擬於其還 邀入賞梅 余固已諾之 臨發 適被召命之下 旣不敢赴 惶恐輟行 遂至愆期 爲之悵然有懷 得四絶句 若與後凋梅相贈答者 寄呈彦遇 發一笑也’를 가리킨다.
2) 蠟
‘臘’자의 誤記이다.
3) 臘雪
冬至 이후부터 立春 이전까지 내리는 눈을 지칭한다.
4) 얼음처럼 깨끗한 자태[氷姿]
통상 매화, 혹은 배꽃 등의 담박하고 우한한 자태를 형용한다. 蘇軾의 梅花詞에 “옥 같은 뼈가 어찌 장기 서린 안개를 근심하랴! 얼음 같은 자태는 절로 신선의 풍모를 지녔거늘.(玉骨那愁瘴霧, 冰姿自有仙風)”이 보인다.
5) 하네.
杜甫의 舍弟觀赴藍田取妻子到江陵喜寄에 “처마 밑 서성이며 매화와 함께 웃으려 하니, 성긴 가지 위 차가운 꽃술도 반나마 웃음을 금치 못하네.(巡簷索共梅花笑, 冷蘂疎枝半不禁)”가 보인다.
6) 텐데
王適의 ‘江濱梅’에 “추운 매화나무를 홀연 보니, 漢水 가에서 꽃을 피웠구나. 봄빛이 이렇게 일찍 찾아올 리 있겠는가! 아마도 구슬을 가지고 노는 사람일 터.(忽見寒梅樹, 花開漢水濱. 不知春色早, 疑是弄珠人)”가 보인다. 周代에 鄭交甫라는 자가 楚나라 漢臯의 누대 아래에서 두 여인을 만나 그들이 차고 있는 달걀만한 구슬을 달라고 요청하자 구슬을 풀어 주고 떠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확인해 보니 구슬도 사라지고 두 여인도 온데간데없었다고 한다.
7) 王春
中華의 명맥을 의미한다. 󰡔春秋󰡕 隱公 元年에 “원년 봄, 왕의 정월(元年春, 王正月)”이라는 표현이 보이는데, 󰡔春秋公羊傳󰡕에서 “봄이란 것은 무엇인가? 한 해의 시작이다. 왕이란 것은 누구를 말하는가? 문왕을 말한다. 어찌하여 왕을 먼저 말하고 정월을 나중에 말했나? 왕의 정월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왕의 정월이라 말했나? 하나의 대통이기 때문이다.(春者何? 歲之始也, 王者孰謂? 謂文王也, 曷爲先言王而後言正月? 王正月也. 何言乎王正月? 大一統也)”라 풀이했다.
8) 錢牧齋
錢謙益(1582∼1664). 淸나라 초기의 시인으로 자는 受之이고, 호는 牧齋·漁樵史·虞山宗伯이다. 1610년 進士試에 급제한 뒤 禮部尙書에 이르렀으나, 1645년 청나라 군대가 江南을 공략했을 때 청군에게 항복하여 禮部右侍郞이 되었다. 저서로 󰡔初學集󰡕·󰡔有學集󰡕 등이 있다.
9) 西山
伯夷·叔齊가 은거했던 首陽山을 가리킨다. 백이·숙제를 ‘西山餓夫’라고도 칭한다.
10) 우뚝 선 채 홀로 거닐며[特立獨行]
‘特立獨行’이란 뜻이 높고 행실이 고상하여 시속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韓愈의 ‘伯夷頌’에 “선비로서 우뚝 선 채 홀로 거닐며 오직 의로움에 맞을 따름이요, 다른 사람의 시비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모두 호걸스런 선비로서 도에 대한 믿음이 돈독하고 스스로 아는 것이 밝은 자이다.(士之特立獨行, 適於義而已, 不顧人之是非, 皆豪傑之士, 信道篤而自知明者也)”가 보인다.
11) 梅兄
매화의 雅稱이다. 宋나라 黃庭堅의 ‘王充道送水仙花五十枚 欣然會心爲之作詠’에 “향기 머금은 흰 꽃잎이 성을 기울일 듯하니, 산반화는 아우요 매화는 형이로다.(含香體素欲傾城, 山礬是弟梅是兄)”가 보인다.
12) ■
전후 의미를 고려할 때 ‘染’자가 분명하다.
13) 얼음 같은 혼백[氷魂]
매화와 연꽃 등의 순정한 바탕을 형용한다. 蘇軾의 ‘松風亭下梅花盛開’에 “나부산 자락 매화마을, 하얀 눈이 뼈가 되고 얼음이 영혼이 되었구나.(羅浮山下梅花村, 玉雪爲骨冰爲魂)”가 보인다.
14) 알기에
전국시대 齊나라 魯仲連은 절의가 높았는데, 魏나라의 변사 新垣衍이 진나라를 황제로 섬기자고 설득하자, 신원연에게 만약 진나라가 황제가 된다면 “나는 동해로 뛰어 들어 죽을지언정 차마 그 백성이 되지 않겠다.(蹈東海而死耳, 吾不忍爲之民)”라 말했다.
15) 東君
봄을 맡은 神이다. 東帝, 東皇, 靑皇, 靑帝라고도 한다.
16) 靑鼠
청색은 天干 가운데 ‘甲’과 ‘乙’에 해당하고, 쥐[鼠]는 地支 가운데 ‘子’에 해당하는 바, 甲子年을 가리킨다. 여기서의 갑자년은 1804년(순조 4)이다.
17) 있으므로
匪泉의 감회란 중화의 연원에 대한 강개한 느낌을 말한다. 󰡔詩經󰡕 「小雅, 小弁」에 “가장 높은 것이 산이 아니던가! 가장 깊은 것이 샘이 아니던가!(莫高匪山, 莫浚匪泉)”가 보인다.
18) 玉堂
弘文館의 이칭이다.
19) 매복(梅福)
漢나라 平帝 때의 은사 梅福은 王莽의 專政을 피해 妻子를 버리고 姓名을 바꾼 뒤 會稽에 은거하여 吳縣 저자의 門卒이 되었다.
20) 었지.
漆雕開는 孔子의 제자 72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漆雕는 姓이고 이름은 開이다. 공자가 그에게 벼슬을 권유했을 때 “저는 아직 벼슬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吾斯之未能信)”라 대답하자 공자가 기뻐했다. 󰡔論語󰡕 「公冶長」.
21) 선대 가업[氈業]
‘氈業’은 ‘靑氈故物’의 줄인 표현으로 사환가문에 대대로 전해지는 물건이나 사업을 뜻한다. 󰡔太平御覽󰡕 권708에 인용된 晉나라 裴啓의 󰡔語林󰡕에 “王子敬이 재실 안에 누워 있을 때, 도둑이 들어와 물건을 훔쳤다. 재실의 물건을 거의 다 훔칠 때까지 왕자경은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도둑이 마침내 평상에 올라 훔칠 물건을 더 찾으려 하자, 왕자경은 ‘백반으로 염색한 푸른 담요는 우리 가문의 옛 물건이니 특별히 남겨둘 수 없겠나?’라 소리쳤다. 이에 도둑들이 물건을 놓아둔 채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王子敬在齋中臥, 偷人取物, 一室之內略盡, 子敬臥而不動. 偷遂登榻, 欲有所覓, 子敬因呼曰, 石染青氈是我家舊物, 可特置否. 於是, 群偷置物驚走)”가 보인다.
22) 군자 떨기
대나무 숲을 지칭하는 듯하다. 蘇轍의 ‘林筍復生’에 “우연히 우레비가 일척이나 내린 것은, 남쪽 정원의 여러 군자 때문임을 알겠구나.(偶然雷雨一尺深, 知爲南園衆君子)”가 보인다.
23) 聲川公
申전(木+箋). 槐苑處士申公墓表(󰡔壺谷集󰡕 권11) 참조.
24) 西湖
宋나라 은자 林逋가 은거했던 곳이다.
25) 같아
漢나라 平帝 때의 은사 梅福은 九江 壽春 사람이다. 󰡔尙書󰡕와 󰡔春秋󰡕에 정통하여 郡文學이 되고 南昌尉에 임명되었는데 王莽이 국정을 전횡하자 처자를 버리고 會稽에 숨어서 성명을 바꾼 채 문지기 노릇을 하였다.
26) 기다린다면
󰡔書經󰡕 「商書, 說命下」에 “만약 여러 양념을 넣어 국을 끓인다면, 그대는 소금과 매실이 되어라.(若作和羹, 爾惟鹽梅)”가 보인다. 후손 중에 임금을 보좌하는 정승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표현이다.
27) 속에서
林逋의 山園小梅에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껴 있고, 은은한 향기는 황혼 달빛 아래 부유하며 움직이네.(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가 보인다. 성글고 비낀 그림자는 통상 매화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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