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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경차후조당백일매운(敬次後凋堂百日梅韻)    
G002+AKS+KSM-XI.0000.0000-20101008.B001a_001_01296_XXX
 
분류 고문서-시문류-시 / 교육·문화-문학·저술-시
작성주체 발급: 권형(權炯) , 신동제(申東濟)
추정시기 조선후기
형태사항 크기: 83.5×35.8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 현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비고 출판정보: 『고전자료총서 82-2 광산김씨 오천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본 번역문은 2014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1 / 21. 시문 / 시15 / 452 ~쪽
 
권형과 신동제가 백일매 시를 차운하여 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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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敬次後凋堂百日梅韻
 南土移裁上國梅 大明花事一般開 應緣中夏王春暮 避地吾東節不頹
 君子村中百日梅 慇懃爲向主人開 聞道孤根鴨水渡 蹈東淸節不應頹
   權炯謹稿
 百日天香上國梅 後凋堂裏雪中開 知應避地來東土 蹈海高風永不頹
 雪坡何用百株梅 我愛君家獨樹開 爲是中華好物色 王春一脉賴無頹
  申東濟謹稿

후조당(後凋堂)의 백일매(百日梅) 시에 공경히 차운하다
南土移栽上國梅 남쪽 지방에 옮겨 심은 상국(上國)의 매화가
大明花事一般開 명나라 때와 매한가지로 꽃을 피우는구나.
應緣中夏王春暮 응당 중화(中華)의 왕춘(王春)이 저물었기 때문이니
避地吾東節不頹 재앙 피해 우리나라 왔어도 절의는 스러지지 않았네.

君子村中百日梅 군자 고을의 백일매(百日梅)가
慇懃爲向主人開 애틋하게 주인을 향해 꽃을 피웠도다.
聞道孤根鴨水渡 혈혈단신으로 압록강 건넜다고 들었는데
蹈東淸節不應頹 동해로 뛰어든 맑은 절개 의당 스러지지 않으리.1)
권형(權炯)이 삼가 쓰다.

百日天香上國梅 백 일 동안 향기롭던 상국(上國)의 매화가
後凋堂裏雪中開 후조당(後凋堂) 안에서 눈 속에 꽃을 피웠네.
知應避地來東土 재앙 피해 우리나라로 찾아온 것이니
蹈海高風永不頹 바다로 뛰어든 고상한 기풍 길이 스러지지 않으리.

雪坡何用百株梅 무엇 때문에 설파(雪坡)에 백 그루 매화를 심었나!2)
我愛君家獨樹開 나는 그대 집안에 홀로 핀 한 그루를 사랑한다네.
爲是中華好物色 이것은 중화(中華)의 아름다운 풍광이니
王春一脉賴無頹 왕춘(王春)의 명맥이 덕분에 사라지지 않았네.
  신동제(申東濟)3)가 삼가 쓰다.

[주석]

1) 않으리.
魯仲連은 전국시대 齊나라 사람으로 절개가 매우 높았다. 당시 趙나라가 秦나라의 공격을 받아 사태가 위급하자, 魏나라에서 新垣衍이란 辯士를 조나라로 보내어, 진나라를 황제로 섬겨 秦軍이 스스로 철수하도록 설득했다. 이 말을 들은 노중련은 신원연에게 만약 진나라가 황제가 된다면 “나는 동해로 뛰어 들어 죽을지언정 차마 그 백성이 되지 않겠다.(蹈東海而死耳, 吾不忍爲之民)”라 결연하게 말했다.
2) 심었나!
南宋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范成大(1126∼1193)가 만년에 江蘇省 蘇州 서남쪽에 있는 石湖에 은거하자, 孝宗이 ‘석호’ 두 글자를 친히 써서 하사했다. 이 때부터 ‘석호거사’로 自號했는데, 당시 범성대는 석호의 雪坡에 매화 백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3) 申東濟
逋軒 權德秀(1672∼1759)의 장남인 權夢揆의 넷째 사위이다. 󰡔逋軒集󰡕 권5, 附錄, 行狀(李象靖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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