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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장(行狀)-선고행적(先考行蹟)    
G002+AKS+KSM-XI.0000.0000-20101008.B027a_042_00364_XXX
 
분류 고문서-시문류-행장 / 개인-전기-행장
형태사항 크기: 51×43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주촌 진성이씨 경류정  / 현소장처 : 서울역사박물관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41 -안동 주촌 진성이씨편(Ⅰ)-』(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 본 이미지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제공한 것으로 저작권이 서울역사박물관에 있음.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42 / 8. 시문류 / (2) 행장 / 행장2 / 567 ~쪽
 
이증효가 지은 아버지 李擘(1568∼1609)의 行狀.
 
개요
   아들 李曾孝(1594∼1674)가 지은 李擘의 行蹟이다. 先考行蹟이라는 명칭에서 찬자가 이증효임을 알 수 있다. 문서의 형태와 내용으로 보아 家狀 草本의 성격이 강하며 다른 행장류와 마찬가지로 世系, 行蹟, 山所位置, 子孫關係가 서술되어 있다. 후일 李爾松이 지은 李擘의 墓碣銘은 이 행장을 바탕으로 지어졌음이 분명하다.

용어
   行蹟은 한 개인의 이력을 적은 가장 기초적인 기록으로서 遺事, 行錄, 家狀, 行狀과 통용될 수 있으며, 墓碣銘, 墓誌銘, 神道碑銘 등의 저본이 된다.

인물
   李擘의 字는 巨卿, 본관은 眞城이다.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庭檜이며, 어머니는 牙山蔣氏 胤宗의 딸이다. 1606년(선조 39)에 진사시에 입격하였고, 1608년(선조 41)에는 성균관에 유학하며 문과에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는 못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형제 중에 가난한 자가 있으면 자신의 재산을 지급할 정도로 우애도 돈독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일찍이 부모를 여읜 從妹를 데려다 함께 생활하는 한편 직접 혼수를 마련하여 시집을 보내기도 하였다. 1609년(광해 1) 성균관에 유학하다 근친을 위해 환향하였다가 腫患에 걸려 그해 6월 19일에 사망하였다. 산소는 安東 可倉山 癸坐에 있다.

특징
   李擘의 이름과 字는 ‘某’字를 써서 諱하였고, 그의 처부 鄭元建의 경우는 鄭○○로 기록하여 표기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 작성일:2000.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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