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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6년 김해(金垓) 제문    
G002+AKS+KSM-XI.1596.4700-20101008.B001a_001_01189_XXX
 
분류 고문서-시문류-제문 / 종교·풍속-관혼상제-제문
작성주체 발급: 박성(朴惺)   /수취: 김해(金垓)  
작성지역 경상도 / 경상북도   
작성시기 1596년 / 만력24년세차병신10월갑자삭7일경오   
형태사항 크기: 57.5×24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 현소장처 : 안동 오천 광산김씨 후조당  
비고 출판정보: 『고전자료총서 82-2 광산김씨 오천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본 번역문은 2014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1 / 18. 제문·애사·축문 / 제문1 / 412 ~쪽
 
외사촌 박성이 김해(1555~1593)의 무덤에 찾아와 고한 제문
   1596년통덕랑 전공조정랑박성한림김해의 묘에 올린 제문이다. 박성의 아버지 박사눌김해의 조부김연의 사위이므로, 두 사람은 외사촌형제 사이다.
 
1596년 외형 통덕랑 전공조정랑박성이 한림김해의 묘에 올린 제문.
내용 및 특징
   무덤에 나무와 풀이 잘 자라 바람과 서리에도 견뎌낼 만한데, 어찌하여 영혼이 구만리를 헤매어 나로 하여금 생을 슬퍼하게 하고 우리 도를 적적하게 하는가라고 장탄식한 글이다.
『光山金氏禮安派譜』, 光山金氏禮安派譜刊行編輯委員會, 회상사, 1993
            『古典資料叢書 82-2 光山金氏 烏川古文書』, 韓國精神文化硏究院,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2
1차 집필자: 문순요, 2차 집필자: 권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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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曆二十四年歲次丙申十月甲子朔七日庚午外兄通德郞前工曹正郞朴惺敢以酒果
奠于
內弟翰林公之墓櫲樟挺秀風何爲乎拔之蘭蕙峻茂霜胡爲乎折之紫霄扶搖忽
墜九萬之翮長途方騖竟歛千里之跡生必有死孰能使余而悲傷以斯人而嗇齡爲吾
道而沾裳心期寥落獨踽踽其▣▣
君今在世吾豈舍禮而于松▣…▣其一觴誰與交修我必悲兮一何長尙

만력(萬曆) 24년(1596, 선조29) 병신(丙申) 10월 갑자삭(甲子朔)1) 7일 경오(庚午)에 외형(外兄) 통덕랑(通德郞) 전 공조 정랑(工曹正郞) 박성(朴惺)2)은 감히 술과 과일로써 내제(內弟) 한림(翰林)3) 김공(金公)의 무덤에 드리면서 고하네.
예장(櫲樟)나무가 우뚝이 빼어났는데 櫲樟挻秀
바람이 어찌하여 뽑아버렸으며 風何爲乎拔之
난초 혜초가 무성하게 자랐는데 蘭蕙峻茂
서리는 어찌하여 꺾어버렸는가 霜何爲乎折之
고공(高空)에 날아오르다가 紫霄扶搖
홀연히 구만리 아래로 떨어졌네 忽墜九萬之翮
장도(長途)에 바야흐로 나아가는데 長途方騖
마침내 천리의 자취를 거두어버렸네 竟斂千里之跡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이 있나니 生必有死
누가 나로 하여금 슬프게 한단 말인가 孰能使余而悲傷
이 사람처럼 훌륭한 사람에게 장수를 아낀다면 以斯人而嗇齡
우리 유도(儒道)를 위해 눈물 흘리리 爲吾道而沾裳
마음으로 죽을 때까지 기약했는데 心期寥落
나 홀로 “…(원문 결락)…” 외롭게 지내네 獨踽踽其□…□
그대가 지금 세상에 살아 있다면 君今在世
내가 어찌 예를 버리고 吾豈舍禮而于松
“…(원문 결락)…” □…□其一觴
누구와 서로 주고받겠으며 誰與交修
내 마음 슬픔이 한결같이 이다지도 심하단 말인가 我心悲兮一何長
삼가 흠향하기 바라네 尙饗

[주석]

1) 갑자삭(甲子朔)
10월 초하루의 간지(干支)가 갑자(甲子)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2) 박성(朴惺)
1549년(명종4)~1607년(선조40). 본관은 밀양(密陽), 자(字)는 덕응(德凝), 호는 대암(大菴), 시호는 문간(文簡), 사눌(思訥)의 아들. 대구 ․ 청송 ․ 현풍에 거주함. 한강(寒岡) 정구(鄭逑) ․ 낙천(洛川) 배신(裵紳)의 문인. 공조정랑 ․ 청송부사(靑松府使) 등을 제수받았으나 부임하지 않음. 『대암집(大菴集)』이 전한다. 아버지 사눌(思訥)이 김해의 아버지 부의(富儀) 공의 사위이니, 박성(朴惺)의 외사촌이 근시재(近始齋) 김해(金垓)이다.
3) 한림(翰林)
예문관(藝文館)의 별칭. 김해는 1588년(선조2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을 지냈으므로 한림이라 부른다. 1555년(명종10)~1593(선조26). 자는 달원(達遠), 호는 근시재(近始齋), 본관은 광산(光山), 관찰사(觀察使) 연(緣)의 손자, 참봉 부의(富儀)의 아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병을 일으켜 영남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안동 ․ 의성 ․ 군위 등지에서 분전했다. 평양 탈환전에서 수십 명의 적을 살해하고, 계속 남하(南下)하여 밀양에서 군사를 정비하여 경주로 이동한 후 진중에서 전사했다. 이황의 문인. 저서로는 『향병일기(鄕兵日記)』 ․ 『서행일기(西行日記)』 ․ 『행군수지(行軍須知)』 ․ 『근시재집(近始齋集)』 등이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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