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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이종태(李鍾泰) 회와기(晦窩記)    
G002+AKS+KSM-XI.1848.0000-20101008.B032a_049_00314_XXX
 
분류 고문서-시문류-악장 / 교육·문화-문학·저술-기
작성주체 발급: 이종태(李鍾泰)
작성시기 1848년 / 무신9월회일   
형태사항 크기: 23×44.5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법흥 고성이씨 임청각  / 현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비고 출판정보: 『고문서집성 49 -안동 법흥 고성이씨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49 / 8. 시문류 / (3) 기·서·발 / 기·서·발13 / 870 ~쪽
 
개요
   原題는 〈晦窩記〉이다. 記文의 찬자는 李鍾泰이며, 작성 시기는 1848년(憲宗 14) 9월 그믐인데, 이는「晦」자의 의미를 의식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晦窩는 李鍾泰가 평소에 거처하던 곳이므로 固城李氏 대종택 臨淸閣 내의 한 房室임을 알 수 있다. 찬자는 記文의 모두에서 晦窩의 소재지, 즉 臨淸閣의 주변 경관을 묘사한 다음 본론으로 돌입하여 周易・周詩 그리고 朱子의 故事를 인용하여 「晦」자의 의미를 부연하고 회와로 편액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劉屛山이 朱子에게 써 준 字說 중에서 「木晦於根 春容燁敷 人晦於身 神明內腴」이라는 구절에 감화되어 君子로서의 處身의 요결을 삼기 위해 자신의 室居를 晦窩로 명명하게 되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臨淸閣의 정침이 君子亭인데, 찬자가 記文에서 君子로서의 處身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晦窩는 군자정에 딸린 작은 夾室일 것으로 생각된다.

인물
   〈劉屛山〉〈朱子〉 중국 송대(宋代)의 유학자. 자 원회(元晦)・중회(仲晦). 호 회암(晦庵)・ 회옹(晦翁)・운곡산인(雲谷山人)・창주병수(滄洲病)・둔옹(遯翁). 이름 희(熹). 푸젠성[福建省] 우계(尤溪) 출생. 호적계(胡籍溪)・유백수(劉白水)・유병산(劉屛山)에게 사사하면서 불교와 노자의 학문에도 흥미를 가졌으나, 24세 때 이연평(李延平)을 만나 사숙(私淑)하면서 유학에 복귀하여 그의 정통을 계승하게 되었다. 그의 강우(講友)로는 장남헌(張南軒)・여동래(呂東萊)가 있으며, 또 논적(論敵)으로는 육상산(陸象山)이 있어 이들과 상호 절차탁마(切琢磨)하면서 주자의 학문은 비약적으로 발전 심화하여 중국사상 공전(空前)의 사변철학(思辨哲學)과 실천윤리(實踐倫理)의 체계를 확립하였다. 그후 그의 학문이 인정되어 시호가 내리고 다시 태사(太師)・휘국공(徽國公)이 추증(追贈)되었다.
/ 작성일:2000.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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