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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유지호(柳止鎬) 추원사중건상량문(追遠祠重建上樑文)    
G002+AKS+KSM-XI.1860.4717-20101008.B029a_044_00280_XXX
 
분류 고문서-시문류-상량문 / 경제-토목·건축-상량문
작성주체 발급: 유지호(柳止鎬)
작성지역 기양서당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537-1   
작성시기 1860년   
형태사항 크기: 61×119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수곡 전주유씨 무실 종가  / 현소장처 : 안동 수곡 전주유씨 무실 종가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44 -안동 전주유씨편Ⅰ(수곡종택)-』(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44 / 8. 시문류 / (6) 상량문 / 상량문4 / 788 ~쪽
 
1860년(哲宗 11)에 柳止鎬가 지은 追遠祠 重建 上樑文.
 
주제
   1860년에 유지호가 지은 상량문으로, 추원사를 중건할 때 쓴 것이다. 사당인 추원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건물이며 강당인 亦樂堂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이다. 원래는 임동면 수곡동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그곳이 수몰됨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용어
   上樑文은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친 내력, 까닭과 工役한 날짜, 시간 등을 적은 글이다. 내용에 따라 창건상량문, 중수상량문, 중건상량문 등으로 나뉜다. 원래 상량대에 간략하게 붓글씨로 썼지만 궁실, 관아, 학교, 사원 등에서는 써야 할 내용이 많아 따로 상량문을 써서 상량대에 홈을 파고 넣어 두었다. 종이 대신 비단에 적기도 하며 대나무나 나무·구리 통 등에 넣는데, 통의 위아래에는 다음 중수 때 보태 쓰라는 의미로 패물이나 부적을 함께 넣었다. 일반 집에서는 장혀 배바닥에 먹글씨로 써서 마루에서 올려다 볼 수 있게 하지만, 공공건물에서는 마루도리 배바닥이나 받침장혀의 등덜미에 써서 結構하면 가려져 보이지 않게 하였다. 공공건물에서는 造營 사실과 집지은 뒤 좋은 일이 있기를 비는 讚文, 공역에 관계한 사람들의 이름과 글을 쓴 시기를 적어 둔다. 일반 집에서는 집의 좌향과 開基, 입주, 상량날짜와 시각을 한 줄로 내려 쓰고 그 아래 두 줄로 기원 내용을 적는다. 때로는 집주인의 芳名을 적어 두기도 하였다. 선비들은 자신의 문집에 자기가 지은 상량문이나 당대 명문장의 상량문을 싣기도 하였다. 상량을 올리는 날에는 성대한 상량고사를 지냈으며 이를 상량식이라고도 하였다.

참고문헌
   『古文書集成』44(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김봉좌 / 작성일:200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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