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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유치호(柳致皓) 기양서당중건상량문(岐陽書堂重建上樑文)    
G002+AKS+KSM-XI.1860.4717-20101008.B029a_044_00281_XXX
 
분류 고문서-시문류-상량문 / 경제-토목·건축-상량문
작성주체 발급: 유치호(柳致皓)
작성지역 기양서당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537-1   
작성시기 1860년 / 경신윤3월24일   
형태사항 크기: 104×62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수곡 전주유씨 무실 종가  / 현소장처 : 안동 수곡 전주유씨 무실 종가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44 -안동 전주유씨편Ⅰ(수곡종택)-』(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44 / 8. 시문류 / (6) 상량문 / 상량문5 / 789 ~쪽
 
1860년(哲宗 11)에 柳致皜가 찬한 岐陽書堂 重建 上樑文.
 
주제
   1860년(庚申) 윤3월 24일에 유치호가 찬한 기양서당 중건 상량문이다.

용어
   기양서당은 전주 유씨 수곡파조[引儀 柳潤善]의 후손들이 조상에 대하여 추원보본(追遠報本)하는 聖地다. 이 곳은 岐奉 柳復起(1555∼1617)와 會軒 柳義孫(1398∼1450)의 위패(位牌)를 봉안(奉安)하고 제향(祭享)하는 곳이다. 처음에는 기봉 선생이 후손들의 修學을 위하여 서당으로 세웠던 것을 후에 후손들이 書院으로 바꾼 것이다. 회헌 유의손은 조선 초기의 학자로 세종 때 吏曹參判 · 禮曹參判을 지냈으며, 기봉 선생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으로 활약하였고, 禮賓寺正을 지낸 바 있다. 이 건물은 원래 무실 남쪽 채양 산록에 위치하였으나, 임하댐 수몰로 인하여 안동군에서 이 곳 광산 북록 수곡이주단지 남쪽에 이건 보수하였다. 이때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1716년에 서재를 서당으로 중창하였는데, 상량문은 호와 유현시가 찬하였고 유봉시가 글을 썼다. 이때 도감은 유이재, 유화시였고, 유사는 유영시, 유덕재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1860년에 강당을 중수했는데, 당시 동림 유치호가 찬한 ‘기양서당 중건 상량문’과 서파 유필영이 찬한 ‘기양서당 중수 상량문’이 현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古文書集成』44(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김봉좌 / 작성일:200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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