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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유필영(柳必永) 기양서당중수상량文(岐陽書堂重修上樑文)    
G002+AKS+KSM-XI.1860.4717-20101008.B029a_044_00282_XXX
 
분류 고문서-시문류-상량문 / 경제-토목·건축-상량문
작성주체 발급: 유필영(柳必永)
작성지역 기양서당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537-1   
작성시기 1860년 / 경신3월하순   
형태사항 크기: 62×60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수곡 전주유씨 무실 종가  / 현소장처 : 안동 수곡 전주유씨 무실 종가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44 -안동 전주유씨편Ⅰ(수곡종택)-』(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44 / 8. 시문류 / (6) 상량문 / 상량문6 / 790 ~쪽
 
1860년(哲宗 11)에 柳必永이 찬한 岐陽書堂 重修 上樑文.
 
주제
   1860년(庚申)에 유치호가 찬한 기양서당 중수 상량문이다.

인물
   유필영(1841-1924)은 한말의 학자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그는 자가 景達이고, 호는 西坡로, 안동에서 세거하였다. 아버지는 柳定鎭이며, 어머니는 醴泉權氏로 權敎相의 딸이다. 柳致明의 문인이고, 權璉夏 · 李晩慤 · 金興洛 · 金道和 등과 교유하였다. 집안에 전하여지는 학문의 전통을 이어받아 14, 15세의 나이로 사서삼경은 물론 諸子書에까지도 박통하여 영남의 문맥을 이어받았다는 칭예를 받았다. 후일 유치명에게 수학하고 돌아와서 朱書를 탐독하고는 학문의 심오한 경지를 터득하였다. 또한, 고조부인 柳正源으로부터 전해져오는 易學을 계승, 발전시켰으며, 《시경》에도 조예가 깊어 새로운 주석을 시도하였다. 스승 유치명의 《定齋集》 원집과 속집을 편집하였다. 1919년 파리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열리자 영남을 주축으로 한 한국 유림은 독립청원서를 보냈는데, 이때 파리장서에 서명하여 항일 의지를 확고히 밝혔다. 이 거사를 전후해서 남도에는 郭鍾錫이요, 북도에는 유필영이라 하여 ‘南郭北柳’라고 불렸다. 그는 西坡精舍에 몰려드는 후진을 양성하는 방법으로, 먼저 詩로써 마음을 發揚시키고, 다음에 禮로써 律己하도록 하였다. 경술국치 이후에는 戶庭의 출입도 삼갔다. 또한 기미년 만세사건에 연루되어 성주에까지 연행되기도 하였다. 저서로 《서파문집》26권 13책이 있다.

참고문헌
   『古文書集成』44(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김봉좌 / 작성일:200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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